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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에서 살아남은 미국인 고아의 실화(2)

편집부  |  201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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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미국으로 귀국을 결심하다


1971년 7월, 당시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보잉 707 비행기가 신장 상공을 통과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이 비행기에는 당시 미 국가 안전보장 담당 대통령 보좌관인 키신저 국무장관이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고민하고 있었다.


중학에 입학한 한슈는 할머니로부터 자신은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인임을 알게 됐고, 출생증명서,여권 그리고 아버지의 사진도 건네 받았다. 그 때부터 그녀는 미국을 배우려고 했다. 할머니 집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문예계나 지식층의 유명인들도 있었고, 미국에 유학해 50년대에 귀국한 학자도 있었다. 그녀는 그들로부터 미국의 문화를 서서히 알게 됐다.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괴로운 생활 중에도, 그녀는 미국의 소리방송(VOA)를 몰래 수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점차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1974년부터 각지에 있던 젊은이들이 잇따라 도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1976년의 어느 날, 덩샤오핑의 집무실로부터 ‘이 사람은 신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라는 편지가 왔다. 이 편지가 한슈의 운명을 바꿨다. 그녀는 곧바로 베이징행 열차를 탔다. 당시 그녀는 일의 경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단지 미중 관계가 회복하기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북경으로 돌아온 그녀는 공장에 배속되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중국의 공장 노동자들에 대해 알게되었다. 그들은 선량했다. 그러나 사회의 하층이라 급여가 매우 낮은데다가, 거주 조건도 나빴다. 출근한 첫날 밤 탕산(唐山)대지진이 일어났다. 한슈의 집은 괜찮았지만 동료들의 집은 모두 파괴되었다. 그녀는 동료들이 뒷정리할 수 있도록 묵묵히 동료 대신 잔업을 했다.

 
당서기는 그녀의 행동에 감동해 필요한 것이 있는지 물어 왔다. 그녀는 문화대혁명 때 가택 수사로 압수된 출생증명서와 미국 여권을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당서기는 베이징시 공안국에 문의해 10년이나 금고에서 잠자고 있던 것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베이징시 공안국 외사부를 방문해 자신이 미국 국민이라는 신원을 확인하고 귀국을 요구했다. 외사부 관리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1956년에 행해진 바르샤바 조약에서 중국 정부는 ‘중국에서 머문 미국인은 모두 자신의 의사대로 잔류를 결정한다’ 고 명기했었다. 며칠 후 공안국에서 답변이 왔다. ‘미국 정부든, 중국 정부든, 당신의 자료는 기한이 지나 무효가 되었다’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출생증명서와 미국 여권을 되찾은 그녀는 여기서 단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미국은 인권을 매우 존중해, 전사한 자국 병사의 사체조차 되찾는 국가였다. 하물며 자신처럼 살아 있는 인간은 더욱 소중하게 여길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시 외국 공관 소재지로 향했다. 당시 미중 양국은 아직 정식으로 국교를 맺지 않고 닉슨 대통령의 방중 후, 연락처를 설립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곳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연락처에는 성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무장 경관과 각국 대사관도 있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행동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나는 미국인입니다'
 

1977년 2월 21일은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당시 유행하고 있던 나팔바지와 쟈켓을 입고 긴 머리를 정돈한 후, 자전거를 타고 미국 연락처로 향했다. 그녀는 연락처 바로 앞에서 발을 멈추고 맞은편에 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으로 향했다. 경비를 맡고 있던 무장 경관은 그녀를 보고 미소지었다. 길을 잃은 대사관 직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 때 그녀는 돌연 뒤돌아 미국 연락처로 달렸다.
 

그녀의 다리가 미국의 영토를 의미하는 흰 선을 밟은 순간 무장 경관이 총을 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무슨 짓이야 빨리 나오시오!’라고 위협했다.
 

“나는 미국인입니다.”

 

미국 여권과 출생증명서를 손에 쥔 그녀는 무서운 나머지 몸이 굳어 버렸다. “여권 유효기간이 끝나 새 여권을 신청하러 왔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절대로 미국인이 아니라는 듯 무장 경관은 조소하며 말했다. “미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데 오늘은 휴일이라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다”
 

한슈의 마음은 한 순간에 얼어붙었다. 생명을 무릅쓰고 돌입했는데 휴일이라니 왜 이렇게도 불운한가? 그녀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그 때, 자동차 1대가 나타나 운동복 차림의 미국인 청년이 내려 왔다. 그는 한눈에 한슈가 쥐고 있던 녹색의 1940년대 미국 여권을 눈치채고 “이것이 당신의 여권입니까?”라고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좀 볼까요?”
 

“물론입니다.”
 

“반드시 이 흰 선에서 떨어지지 마세요. 사람을 곧 불러오겠습니다.”


후에 안 것이지만, 그는 미국 연락처 직원 프랭클린 워드로였다. 한슈의 자료를 손에 쥔 그는 연락처 안으로 들어가 미국 영사와 함께 나왔다. 그는 제롬 오그덴 영사로 휴일에도 책임자 몇 사람이 출근해 있었다.
 

워드로와 오그덴 영사는 그녀의 출생증명서와 여권을 확인하고, 무장 경관에게 그녀를 연락처 안으로 들어가게 하도록 요구했다. 무장 경관은 전화로 자신의 상사를 불러 왔다. 한슈의 모든 서류를 확인한 상사는 ‘미중 양국의 상하이 연합공보에 따라, 우리는 미국인이 미국 연락처로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드로와 오그덴 영사는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우리는 그녀가 미국인임을 안다.”
 

한슈는 미국 연락처에 ‘초대되었다.’
 

오그덴 영사는 미국 국무부에 전화하고, 국무부는 또 뉴욕에 연락했다. 한슈의 여권번호와 출생증명서로 5분 이내에 그녀가 미국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그덴 영사는, 그녀가 우선 새로운 여권을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유효기간이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한슈는 증명사진을 준비해 왔지만, 그곳은 연락처 일뿐 여권 발행 업무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1개월 후에 새로운 여권을 받으러 와야 한다. 그러나 한슈가 연락처에서 나가면 그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소유물이 모두 압수될 수도 있으므로, 연락처 직원은 한슈에게 5개의 연락 전화번호를 외우게 했다. 그것은 자신의 사무실 번호를 포함한 미국 연락처 5명 영사의 전화번호였다. 30분 후 한슈는 연락처를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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