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著: 육서성
演記: 한치선(타타오)
[SOH] (전편에 이어) 주왕이 마침내 일어서서 근엄하게 명하였다.
“그대 말이 지극히 온당하도다! 저 요망한 상소를 올린 두원선을 끌어내 목을 치고 저자거리에 그 목을 걸어 본을 삼도록 하라!”
노제상 상용이 화들짝 놀라 간하였다.
“오늘 충신이 직간하였는데 전하께서는 그의 입을 막고는 오히려 죽음을 내리시다니요! 두원선이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다면 문무백관이 전하를 어찌 보겠습니까? 그리고 천하만민들은…”
주왕은 고개를 휘저으며 소리질렀다.
“뭣들 하느냐? 저 두원선을 끌어내어 어지의 엄정함을 세상에 본 보여라! 그리고 저 말씀 많은 노인내도 내보내라 어서!”
두원선은 그 자리에서 역사들의 손에 잡혀 바로 상의를 벗기운채 포승줄로 칭칭 묶여 들어왔던 길을 그대로 질질 끌려나갔다. 노제상 상용 역시 등을 떠밀리며 탄식소리와 함께 밀려나고 말았다. 두원선이 막 구룡교에 이르렀을 때 대홍포를 걸친 대부 매백(梅伯)이 놀라 다가와 물었다.
“아니 태사께서 무슨 일을 당하신 겁니까?”
“천자의 실정을 낱낱히 상소한 죄로 이리 되었구려! 매백선생! 나 두원선, 누차에 걸쳐 충심만 가슴에 가득했건만 이제 흉골 속에 차디찬 얼음만 남았구려. 내 목이 오문에 걸리면 내 목을 잃은 몸뚱이나 좀 거두어 가족에게 전해주시려오!”
“아니 세상에! 기다리시오! 내가 당장 천자께 가서 이 일의 부당함을 간하겠소!”
매백은 두원선의 충신됨과 신실함을 평소 익히 알고 있었기에 이번 천자의 처사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발걸음도 쿵쿵거리며 가로막는 시종관들도 밀어 젖히고 수선궁까지 이르렀다.
“오늘 아침은 왜 이리 침소가 번잡하단 말인가! 게 또 누구냐?”
주왕이 달기와 엉킨 몸을 풀고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켜 세우니 매백이 이글이글 타는 눈을 하고는 천자를 치어보며 불을 뿜듯 말했다.
“지금 전하께오선 삼대 천자를 모신 충신을 참수하라 명하시고 저 요사한 계집의 품에서 노닥거리고 계시옵니까? 반년이 넘도록 정무에도 불참하신 것이 그런 연유였습니까? 예전의 그 총명하심은 어디에 갖다 버리셨습니까?”
“아니 매백 아닌가? 그대는 외관인 주제에 무례히 이곳까지 와서 짐을 윽박지른단 말인가!”
“전하! 하도 답답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와서 무례를 범하고 있습니다만 이왕 왔으니 드릴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저 요녀의 말을 듣고 충신을 참수한다면 지나가는 새소리를 듣고 궁궐의 기둥을 뽑는 거나 마찬가지 옵니다. 이것이 될 말입니까?”
매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왕이 집어던진 옥벼루에 그의 머리가 깡! 하고 부딪쳐 찢어지고 말았다.
“내 소중한 미인을 요녀라고? 너의 그 방자한 입을 찢어주랴? 아니다. 여봐라! 저 무엄한 것을 당장 끌어내어 쇠몽둥이로 머릴 부셔라!”
그런 와중에 달기는 문득 아득한 기억의 봉인 하나가 열리면서 지옥계의 형구가 떠올랐다.
동주지옥(銅柱地獄)에서 옥졸 노릇을 할 때의 기억이었는데 불에 달궈진 구리기둥에 사람 몸을 지지게 하는 끔찍한 형벌의 생생한 기억이었다. 달기의 형상을 한 천년여우는 그 기억에 너무나 가슴이 뛰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달기가 배암처럼 스르르 다가와서는 주왕의 귀에 대고 말했다.
“신첩이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말해보시오! 그대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다면 무슨 형벌이라도 내릴 것이니.”
“어전에서 신하된 자가 임금을 능욕하고 그 비를 모욕한 것은 대역무도한 죄이니 이는 그냥 죽여서 끝낼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저 사람을 일단 감옥에 가둬 두시고 신첩이 아뢰는 형구(刑具)로 벌을 내리십시요. 그래야 온 천하가 천자의 두려움을 알고 함부로 입을 놀리지 못할 것입니다.”
“여봐라! 매백을 일단 감옥에 가둬 두어라!”
매백이 끌려나가자 주왕은 호기심이 동한 아이처럼 달기에게 눈을 맞추며 물었다.
“그대가 말하는 그 형구란 어떤 것이오?”
■ 포락초현(炮烙初現)... 숯불에 달궈진 구리기둥, 공포의 화신
그때 마시는 달기가 어떤 형구를 표현했던지 옛 소설 속 기억을 되살리려 해보았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음을 느꼈다. 깨어나고 나서 꿈 속의 일이 아득한 것처럼 예전에 보고 분노하고 때로 이를 갈고 공포에 떨기도 했던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이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희미하기만 했다. 그래서 마시는 다시 처음 듣는 것처럼 달기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달기는 마치 새로운 가구를 주문하려는듯이 형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신첩이 꿈 꾼 이것은 구리기둥 같은 것이지요. 높이는 2장, 둘레가 여섯자, 상중하로 세개의 불구멍을 뚫어요. 그 기둥 속에는 숯불을 피워 기둥이 빨갛게 달궈지도록 합니다. 달궈? 달기…제 이름 같군요. 호호홋!”
평소에 달기는 거의 웃는 것을 보이지 않았기에 달기의 웃음소리에 주왕은 눈을 크게 뜨며 반색을 했다.
“그대 미인의 웃음소리가 마치 금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만 같구나! 시종관아! 잘 듣고 적고 있느냐? 그래 미인이여! 그 구리기둥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나?”
“그리고 차후 또 그런 요사한 말을 짓거나 퍼뜨리는 자는 의복을 남김없이 벗기고요, 쇠사슬로 몸을 구리기둥에 칭칭 동여맵니다. 그러면 벌겋게 달궈졌던 구리기둥에서 그 몸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일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한 장면이 될 것이며 보는 이 모두 모발이 곤두서고 사지가 부들부들 떨리겠지요! 이런 가혹한 형벌이 사실은 그런 불미를 예방하는 은혜가 될 것이옵니다.”
주왕은 그런 무서운 표현을 하는 달기의 입술과 혀를 보면서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그 매혹적인 형구를 무어라 이름하면 좋겠는가?”
“통째로 굽고 지진다는 뜻을 가졌으니 이른바 포락(炮烙)이라 하면 될는지요.”
“그래 포락이라! 미인의 지혜는 붉은 입술 속에 하얗게 빛나는 치아처럼 반짝이는구나! 여봐라! 어서 포락을 제조하도록 하라! 어서 그것을 써보고 싶구나!”
제상 상용은 감옥에 들러 부자유한 몸이 되어 헝클어진 매백의 손을 잡아 위로하고는 궁을 나왔다. 한시라도 거기에 몸을 담고 있는 것이 끔찍하게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궁 밖에 나서자 마자 그는 또 하나의 못 볼 꼴을 대면하고야 말았으니 태수 두원선의 목이 망나니의 칼을 맞아 몸에서 분리되어 그 앞에 가마니에 나뒹구는 것이었다.
상용은 무릎에 힘이 풀려 꺾이듯 쓰러지고 말았으며 그 자리에서 뜨겁게 오열(嗚咽)하고 말았다.
“나와 함께 3대의 천자를 모시던 충신의 말로가 이렇단 말인가! 나는 이런 꼴을 보고도 저녁에 또 이 나라의 봉록으로 지은 더운 밥을 먹어야 하는가? 그게 인간이냐 말이다!”
흐느끼던 상용은 무언가 결심한듯 일어서더니 다시 궁으로 들어섰다.
“경의 나이가 비록 서산에 해 넘어가는 때는 되었다하나 아직 근골이 정정하신데 사직이라니 어인 말씀이오?”
“신은 이제 몸도 뜻도 쇠잔하여 더 이상 무거운 국정을 받들기가 어렵사옵니다. 그리고 험한 꼴이라도 눈으로 보면 머릿골 속에 불이 나는듯하여 견디기 어렵고 되지 못할 말을 귀로 들으면 귓속 털이 온통 거머리로 변하여 얼마 남지도 않은 골수를 빨아먹는 듯 하니 어찌 천수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제라도 전원에 돌아가 세상사를 다 잊고 푸성귀에 보리밥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그로써 족하리라 생각되옵니다. 바라옵건데 이 못난 신하 용서하시고 소박한 여생을 위해 놓아주시옵소서!”
주왕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경의 표현이 아주 그럴싸하오! 여봐라! 시종관!”
상용은 주왕이 명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몰라 귀밑머리쪽으로 식은 땀이 한 방울 주르르 흘렀다.
“짐의 뜻을 전하노니 경이 영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문관 두명을 지정하여 전송케 하라. 그리고 그 지역 지방관이 수시로 안부를 묻게 하라.”
상용을 예를 표하고 나서려는데 주왕이 뒤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짐을 위해, 그리고 조정의 기강을 위해 고생이 많으셨소! 부디…”
상용이 다시 예를 표하려 몸을 돌리는데 이미 주왕은 달기의 잘룩한 허리를 껴안고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노제상은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얼른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안되어 백관들은 수상 노제상 상용의 사직 소식을 듣고는 그를 전별(餞別)해주고자 연회를 베풀어 모였다. 주요인물은 황비호, 비간, 미자(微子), 기자(箕子), 미자계(微子啓), 미자연 (微子衍) 등이었는데 모두 성문 십리 밖 장정(長亭)에 모여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노승상! 긴 세월 고생하시고 이제 영광스럽게 귀향을 하신다지만 조정의 사안이 요즘처럼 어지러운 때 사직을 모두 포기하고 물러서시니 남은 저희 마음이 정말 편치가 못합니다.”
상용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답했다.
“이 자리에 와 주신 고관대신 여러분! 저 상용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분골쇄신(粉骨碎身)하더라도 하나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제가 일시적 안위를 위해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힘을 다해 간언하였으나 천자는 오직 달기라는 여자 하나를 바라볼 뿐이며 그녀의 말만 귀를 기울이고 있어 충신을 죽이고 더구나 무서운 형벌의 도구를 만들고 있다 합니다. 저로서는 더 이상 전하의 뜻을 되돌릴 수 없으니 부디 여러 현명한 인재와 준걸들이 경륜을 크게 펼쳐 이 나라를 화란에서 구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베풀어 주신 송별의 자리에서 저 상용, 이 한잔의 벌주, 서서 마시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난 날이
있겠지요.”
그렇게 상용은 떠나고 백관들도 조가로 돌아갔다.
■ 매화산락(梅花散落)... 한 점 붉은 매화, 불기둥에 녹아들다
다음날 주왕은 특이하게도 조정을 열기 위해 북과 종을 일제히 울려 문무(文武)양반(兩班)을
모았다. 백관이 알현(謁見)의 예를 마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정전 동편에 구리기둥이 서 있
다. 모두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의아해 했다.
형졸들이 그 기둥 아래 숯을 쌓더니 불을 붙
이자 금방 그 기둥은 시뻘겋게 달궈지기 시작했으며 그 열기는 대전내를 후끈후끈 퍼져갔
다.
“죄인 매백을 끌고 오라!”
주왕이 외치자 머리가 헝클어진 알몸뚱이의 매백이 묶인 채 끌려 나왔고 백관들은 안타까움에 탄식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필부 매백은 이 물건이 무엇인지 맞혀보겠느냐?”
매백은 그 기둥을 보고서도 무엇인지 알 리가 없어 머뭇거리기만 했다.
“너는 내전까지 들어와 짐을 모욕했다. 너의 입재간만 믿고 무고한 말로 짐의 권위를 훼손하였는바, 앞으로도 그렇게 함부로 세치 혀를 놀리는 자에 보여주기 위해 이 형구를 준비했으니 그 이름을 기억해 두거라! 포락이라 한다. 시행하라!”
형졸들이 매백을 그 달궈진 기둥에 잡아매려 하자 백관은 놀라 비명을 참지 못했고 매백은 버티며 최후의 일갈을 주왕에게 퍼부었다.
“어 얼이 썩은 임금아! 나 매백은 죽음을 기러기털 타들어가는 것 정도로 아니 하나도 두려울 것이 없다만! 640년 이어오던 성탕(成湯)의 천하가 이제 당신을 끝으로 멸망하는 것을 보게 되니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죽어 선왕을 무슨 면목으로 뵐지…”
매백이 말을 다 하기 전에 그의 몸은 불기둥에 붙었으며 그의 몸을 칭칭 쇠사슬로 다 감기도 전에 몸은 맹렬히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주왕은 눈을 희번덕이며 그 모습을 뇌리에 찍어둘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의 뒤에 쳐진 황금주련을 살며시 벌리고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여인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달기! 그녀는 그 순식간의 죽음의 과정에 타오르는 살과 기름냄새를 느끼는듯 숨을 헐떡거리며 젖은 혀로 입술을 적시었다.
그 장면을 차마 정시하지 못한 백관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으며 마시 역시 허공에 떠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입을 열어 시를 토하고 있었다.
“한점 붉은 매화꽃이 구리기둥에 녹아드니
아픈만큼 세인의 가슴에 깊이 새겨지리
그 원신은 크나큰 생명의 바다로 돌아갔고
그 이름 큰 종에 새겨 만세에 전하리라!”
매백의 신체가 본래의 모습을 잃고 한덩이 숯검댕이가 되는 것을 보고나서는 이제 흥분이 좀 사위었는지 주왕은 가마를 타고 달기를 실어 내궁으로 돌아갔다. 문무백관들은 격렬하게 술렁거렸지만 감히 누구도 뭐라 소릴 못 내는 그 때- 황비호가 뱃속이 끓는 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
“모두들 보시었소! 지금 이 포락의 형벌은 한 대신을 태운 것이 아니라 주왕의 강산을 태운 것이요, 불로 낙인(烙印) 찍은 것은 한 충신을 넘어 성탕(成湯)의 사직(社稷)입니다!”
또 한 명의 노승상 비간과 현신 몇명이 그의 말이 퍼질새라 얼른 그를 감싸며 퇴궐을 종용했다.
■ 정비진노(正妃震怒)... 가려진 성총, 국모의 의기(義氣)로 깨우다
주왕과 달기가 내궁으로 들어서자 미리 준비되었던 악공들이 일제히 생황과 퉁소 등을 연주하며 연회의 시작을 알렸다. 이 음악소리가 악기가 바뀌고 악공이 바뀌어가며 밤늦도록 울려퍼지니 그 소릴 들으며 눈살을 찌푸린 여인이 있었다. 그는 주왕의 정비 강황후였다.
“듣자하니 충신 두원선의 목을 효수하더니 이제 충신 매백을 불기둥에 태워 죽였다지! 그 비천한 여우 같은 것이 분명 전하의 눈과 귀를 가리고 괴이한 잔혹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내가 가봐야겠다!”
마시는 비로소 이 나라의 정비인 강황후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 단아한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지금 저 광기어린 꿀단지로 갔다가 무슨 위험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자욱하게 밀려오자 시중들던 궁녀의 입을 빌어 말을 해보았다.
“지금 궁궐의 살기가 채 가시지 않았고 사람 살 타는 냄새도 아직 가시지 않았사온데 그 분란의 중심으로 황후께서 행차하심은 너무도 위험하다고 여겨지옵니다.”
강황후는 의관을 바루는 시녀들에게 두 팔을 들어 몸을 맡기며 말했다.
“안다. 그리고 내가 황후로써 총애받는 비가 있는 궁으로 가서 시시콜콜 참견하는 모양새는 취하기 싫어 여태 참았지만 지금은 시국이 질투니 뭐니의 시기를 넘어섰느니라. 이건 이 나라의 존망의 문제가 아니더냐? 황후로서도 할말은 해야 하느니라!”
마시는 그녀의 당당하고도 흉금이 넓은 자태를 보며 흠모의 마음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라왔다. 문득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까지 겹쳐오매 눈물이 글썽해져 버렸으나 뭐라 더 말은 못하고 강황후의 뒤를 졸졸 따라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비와 달기-목숨 걸고 붙는다면 누가 더 센가? (계속)
문화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