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하늘이 사람의 운명을 정해준다면 역사적으로 일부 사람들이 부끄러운 배경을 가진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2003년 3월 12일, 전인대 후베이성 대표단 토론회에 참석한 장쩌민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우한(武漢)시 보일러연구소 소장으로 있을 때가 마침 문화대혁명 기간이었는데... 반란파들이 제 배경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답니다. 그 때는 불쾌했지만 결국 문제 없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지요”라고 말했다.
국가주석 장쩌민이 무엇 때문에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배경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을 했는지 듣는 사람들은 그 속을 알 수 없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장쩌민의 가정 배경이 확실히 떳떳치 못했기 때문이다.
장쩌민의 아버지 장스쥔(江世俊, 또는 江冠千)은 일본군 강점시기에 매국노였으며 장쩌민은 일본 괴뢰정부가 난징(南京)에 설립한 중앙大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장쩌민은 이를 숨기기 위해 자신은 혁명 열사인 삼촌의 양아들로 자랐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 소련에서 유학하는 동안 소련 전직 비밀 첩보국(KGB)은 여색을 밝히는 장쩌민의 더러운 취미를 이용해 그를 스파이로 만들었다...
이처럼 장쩌민의 진실한 배경은 현재 알려지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고 극히 은폐되어 있어 문화대혁명시기 반란파들도 장쩌민에 의해 조작되고 숨겨진 역사를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장쩌민이 미국 사업가 로버트 로렌스 쿤에게 부탁해 2005년에 발표된 ‘장쩌민평전(한글판 명: 중국을 변화시킨 거인 장쩌민)’은 장쩌민의 은폐된 역사를 숨기기 위한 흔적이 역력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장쩌민 평전에서 가장 흔히 출현한 단어는 ‘애국’이었으며 심지어 그가 일본 괴뢰정부 대학을 다닌 경력을 쓴 부분에도 ‘나는 애국자였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애국은 자신을 길러준 국가에 대한 국민의 자연스러운 감정으로써 자신이 애국자라고 떠들고 다닐 사람은 장쩌민 밖에 없을 것이다.
장쩌민 아버지가 매국노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가정 출신을 중요시하는 중국에서 장쩌민은 자신의 평전을 포함해 평생 아버지를 거론하는 것을 피해왔으며 기껏해야 ‘생부가 1973년에 돌아가셨다’는 한마디 밖에 하지 않았다.
장쩌민은 13세 때 사망한 지 얼마 안 되는 삼촌(공산당원) 장상칭(江上靑)의 양아들로 들어갔다고 꾸며댔다. 그렇다면 21세 때 대학 졸업한 장쩌민을 8년 동안 누가 키운 것일까? 로버트 로렌스 쿤의 장쩌민 평전에 의하면 장상칭의 딸 장쩌후이(江澤慧)는 자신의 집이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장쩌민이 다녔던 귀족 중학교와 난징중앙대의 비싼 학비를 대준 것이며, 누가 시국이 어지럽고 물가가 날마다 높아지던 시절에 장쩌민에게 서예 등 장기들을 가르쳐 주었으며, 누가 졸업하자마자 장쩌민에게 상하이에서 미국식 지프를 타고 드라이브를 할 수 있게 만들었는가? 말할 것도 없이 장쩌민의 생부가 장쩌민을 20년 동안 키운 것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은 8년 전에 사망한 장상칭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장쩌민의 삶은 전혀 ‘양아들’과 관련 없었지만 공산당이 천하를 얻게 되자 장쩌민은 가족 중에 공산당 출신 열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의 ‘양아들’로 변신한 것이다.
우리는 ‘배경’을 물고 늘어지려는 것이 아니라 장쩌민이 자신의 배경을 숨기고 허위사실을 꾸민 사례를 들어 속임수를 일삼는 장쩌민의 본성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장쩌민은 심지어 노후에는 한술 더 떠 매국노였던 아버지를 은근슬쩍 항일 영웅으로 묘사했다. 장쩌민은 자신의 평전에서 사촌 여동생 장쩌후이의 입을 빌려 여러 차례 “우리 가족은 모두 혁명자다”, “남자들은 모두 전쟁터에 나갔다”, “그들은 모두 혁명에 참가했는데 일본 침략자와 국민당과 맞서 싸웠다”등의 발언을 하도록 시켜 장쩌민 가족의 내막을 모르는 독자들을 교묘하게 속였다.
‘인민일보’는 1999년 12월 11일, 장쩌민과 옐친이 베이징에서 중러 국경협의서에 조인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로버트 로렌스 쿤의 장쩌민 평전에서는 이 회담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다 알다시피 장쩌민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노래 한 곡 불러준 사소한 일까지 평전에 정중하게 기술하고 있으며 외국 지도자와의 회담은 더더욱 빠짐없이 기록했는데 무엇 때문에 옐친과 국경협정을 맺은 중요한 사건만은 빼먹은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장쩌민은 그 회담에서 중국 정부가 역대로 승인하지 않은 중러 불평등조약을 전부 승인하는 매국협정을 체결해 자손후대들이 잃어버린 땅을 합법적으로 되찾을 수 있는 증거를 소멸했으며 대만의 수십 배에 해당되는 100여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옥토를 러시아에게 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외 중국인들의 질책을 받고 있는 장쩌민은 여론이 두려워 이와 같은 사실은 평전에 넣지 않았으나 은폐로 인해 오히려 역효과가 커지고 있다.
장쩌민은 평전에서 자신을 인민의 고통를 헤아릴 줄 아는 지도자로 묘사했다. 그러나 1998년 9월 상순, 대홍수가 터져 수많은 국민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때 장쩌민은 영화계 인사들을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 청해 놓고 로버트 쿤에 의해 ‘장쩌민의 즐거운 시간’으로 묘사되고 있는 연회를 열었다. 연회에서 장쩌민은 여배우를 시켜 노래를 부르게 하고 자신이 직접 구소련의 유행가 ‘모스크바 외곽의 밤’을 연주했다.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장쩌민은 또 연회석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바다여, 내 고향’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쿤은 그의 책에서 ‘특히 장쩌민이 가장 흥겹게 노래를 불렀다’고 묘사했다. 국민들은 홍수로 인해 물바다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데 국가 주석인 장쩌민은 아늑한 중난하이에서 ‘바다여, 내 고향’을 흥겹고 부르고 있었다니 이런 추태가 또 어디 있겠는가? 매국노 가정 배경을 숨기고 고위층에 올라간 장쩌민의 마음속에 국민의 생사란 없었다.
장쩌민은 또 쿤에게 자신을 검소한 생활을 하며 앞장서 부패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묘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다 알다시피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중국 관리들의 부패의 근원은 바로 장쩌민과 그의 가족들에게 있다. 능력 없고 성품도 좋지 않으며 오직 돈밖에 모르는 장쩌민의 아들들은 장쩌민 가족을 돈의 왕국으로 만들어 명실상부한 ‘중국 제일의 탐관오리’로 되었다.
중국 민간에서는 일찍부터 장쩌민이 상하이에서 리센녠(李先念, 역주-중국 전(前) 국가주석)의 내연녀에게 생일 케익을 선물하려고 당시 손님을 만나고 있었던 리센녠을 문밖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전에는 이 소문이 사실인지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나 장쩌민이 자신의 평전에서 도둑이 제발 저리듯이 생일 케익 사건을 해명하고 나서면서 사람들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쩌민은 평전에서 그 생일 케익은 ‘호텔에 남은 마지막 케익이었다’며 ‘국가 사무에 바쁜 지도자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주요 인물과 뜻을 같이 하기 위해서였다’고 그 사건을 미화했다. 장쩌민의 말대로라면 중국에는 부패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뇌물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지도자에게 존경을 표시’하고 ‘뜻을 같이 하기 위해서’가 아니였던가?
장쩌민은 자신을 열사인 삼촌의 고아로 꾸며 삼촌의 전우였던 왕도한(汪道涵)과 장아이핑(張愛萍)의 도움을 받은 동시에 중공 고위층에 아부하는 술책으로 최고 지도자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장쩌민은 정권을 잡은 뒤 줄곧 자신을 뽐내기 위해, 외국 정상과 만날 때마다 국제적인 외교 예절와 중국민족의 존엄을 무시한 채 춤과 노래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장쩌민을 ‘광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 국왕과 만난 자리에서 갑자기 빗을 꺼내 들어 머리를 빗지 않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 훈장을 걸어줄 때 못참겠다는듯 빼앗아 자신이 직접 목에 걸기도 하고, 국빈 연회 도중에 갑자기 초청국 영부인의 손을 끌어다 함께 춤을 추지 않는가 하면,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나 ‘오솔레미오’을 소리 높여 부르기도 하고, 음란한 눈빛으로 연회석 아가씨들을 바라보며 기타를 연주하기도 한다... 이러한 황당한 광대극은 모두 서양 언론의 놀림감이 되었다.
클린턴 대통령과의 몇 차례 회담만 보아도 그렇다. 93년과 97년 장쩌민의 미국 방문과 98년 클린턴의 중국 방문 때, 장쩌민은 모두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의 공연이 끝난 뒤 언제나 클린턴에게 색소폰을 연주할 것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97년 장쩌민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티베트문제와 관련해 질문을 했지만 장쩌민은 갑자기 ‘목장에 있는 집’을 소리 높이 불러 주위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장쩌민은 또 링컨 연설을 잘 외우기로 유명하다. 학생들을 만날 때나 기자들의 인터뷰를 받을 때, 출국할 때마다 장쩌민은 링컨의 연설을 한 번씩 외우는데 누가 외우라고 하지 않아도 외우고 다른 사람이 한번 외워보라면 더욱 신나서 외우는데 큰 나라의 최고 지도자의 체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장쩌민이 가장 능란했던 것은 그래도 외국어라고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를 방문하게 되자 이미 칠순이 넘은 장쩌민은 몇 달 동안 국가사무도 돌보지 않고 기자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정도의 스페인어 인사말을 집중 훈련했는데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뽐내려는 광대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평전에서 “만약 언어의 차이로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의견을 나누고 협의에 이를 수 있겠는가?”라고 해석했지만 그 정도 외국어 수준으로는 그 나라 사람들과 교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세계 그렇게 많은 국가 지도자들은 각자 다양한 모국어를 구사하고 있는데 그들이 모두 언어 때문에 외교 협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단 말인가?
아마 공산국가의 지도자들이 역대로 비교적 엄숙해서였던지 서구 정치인들은 정신이상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장쩌민을 특이한 공산당 지도자라고 하면서 재밌게 바라보았다.
정말 능력 있고 지략 있는 지도자라면 이처럼 쇼에만 공력을 들이지 않겠지만 대학시절 문예부장을 지낸 실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장쩌민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광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서양 정치인들이 붉은 카펫으로 장쩌민을 환영하는 것은 장쩌민이 능력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상품 주문 서류와 거대한 중국 시장 때문이었다.
중국은 개혁개방 후 20년 동안 서양 사업가들의 50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중국 투자와 부지런한 국민의 저렴한 노동력으로 경제발전을 가져왔다. 거액의 자금, 저렴한 노동력, 능력 있는 인재 이 세 가지 요소로 인해 중국은 풍부한 상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무능하고 독단적이며 질투심이 많고 보수적인 장쩌민은 중국의 정치개혁을 퇴보하게 만들었고 사회도덕의 전면적인 타락과 관리들의 부패를 만연시켰으며 경제발전과 동시에 자원, 환경, 생태 및 사회에 거대한 파괴를 조성했다. 쇼윈도와 같은 중국의 경제번영은 사실 자손후대의 지속적인 발전과 생존환경을 파괴하는 심각한 결과를 댓가로 하고 있다. 민족의 미래에 대한 무책임, 중국 정치개혁의 퇴보와 인권, 신앙에 대한 전무후무한 유린 등으로부터 볼 때, 역사의 죄인인 장쩌민은 이미 저지른 죄를 갚을 방법이 없다.
장쩌민은 쿤에게 자신을 능력 있는 지도자로 묘사하게 했지만 사실 그는 홍수, 대사관 폭격, 대만 선거, 사스 발생 등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자신은 거북이처럼 등껍질 속에 목을 움츠려 넣었다. 특히 사스가 폭발했을 때 장쩌민은 목숨이 두려워 상하이로 도망쳤음에도 불구하고 평전에다 “계속 상하이에 있었다”고 변명했다. 상하이에 가기 며칠 전에 열렸던 전인대 정협회의에서 장쩌민은 발언까지 했는데 “계속 상하이에 있었다”는 변명을 누가 믿겠는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사방에서 쇼를 하는 외, 장쩌민의 진정한 마음의 병이자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기록된 것이 바로 파룬궁 탄압이다. 외부에서는 장쩌민이 외교 장소에서 파룬궁을 비방하는 내용의 소책자와 전단지를 돌린 사실만 알고 있고 2002년 3월 5일 저녁, 창춘(長春) 파룬궁 수련생들이 8개 유선TV 채널에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45분간 방송한 뒤 장쩌민이 신속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쿤은 책에서 장쩌민과 절친한 장춘의 한 인사의 말을 빌려, 파룬궁 진상 프로그램 방송이 끝나고 10분이 지난 9시 10분 장쩌민이 그 친구에게 전화를 해 “파룬궁 수련생들이 창춘 유선TV에 삽입 방송을 했다는 걸 알고 있나? 창춘시 서기가 도대체 누구야?!”라고 화가 나서 물었다고 기록했다. 지방에서 일어난 사건에 신속한 반응을 보이고 즉시 현지 서기의 책임을 물었다는 것은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의 총지휘관이며 직접 보고를 받고 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와 비교되는 것은, 중국 대사관이 폭격기에 맞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장쩌민이 며칠 동안 잠잠했다는 사실이다.
장쩌민은 평전에서 자신이 말했던 말들을 인용해 자신을 변호하고 미화하고 있지만 우리는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보다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다 알다시피 부패로 낙마한 관리들치고 ‘부패를 반대하고 청렴을 주장한다’고 외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말주변이 좋고 쇼에 능란한 장쩌민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아버지에 대한 불효, 단체에 대한 배신, 인민에 대한 불성실은 장쩌민에게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어기고 중국 사회를 어지럽히는 추악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만약 우리가 장쩌민이 허위사실을 자신의 평전과 비석에 기록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자손들을 망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쿤의 장쩌민 평전은 거짓과 모순이 넘치며 장쩌민의 일생 역시 거짓과 자아 모순으로 얼룩진 일생이다.
장쩌민의 진실한 모습을 알려주는 것은 장쩌민의 일생을 죽 지켜 본 증인인 우리 이 한 세대의 거부할 수 없는 책임이다.
(계속..)
對중국 단파방송 - SOH 희망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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