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 04.07(월)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한국의 근대화는 박정희때부터 시작했다.(펌:역사학도)
이름 : ㅋㅋ
2006-02-19
양극화 해결의 희망 박정희 대통령 역사학도 2006-02-19      조회 : 73 한국의 학자들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식민주의 수탈론과 근대화론을 가지고 싸워 왔지만, 이 두가지 주장 모두 사회과학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극단적인 관념론들이다. 식민주의 수탈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이 농업 수탈론인데, 그러면 어떻게 35년간 한국인 인구가 4배 가까이 폭발적인 증가를 할 수 있었는지 이 견해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저수지를 지으려는 시도가 있었는가? 조선시대의 우리나라 농업은 홍수에도 가뭄에도 쓰나미를 맞아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조선 정부는 전력을 생산할 댐은커녕 저수지조차 건설할 생각을 안해 주었다. 그러나 식민지 근대화론은 또 다른 극단이다. 도대체 무엇을 일본이 근대화시켜 주었다는 말인가? 해방 조국16년의 남한은 설탕공장 하나, 치약 공장 하나, 옷감 공장 하나밖에 없었던 세계에서 산업시설이 가장 취약한 나라였다. 도대체 무엇이 근대화되었다는 말인가? 1961년의 한국은 아직 연필 한 자루 제대로 새산할 기술이 없어서 나무에 구멍을 내고 흑연심을 꽂아 사용했으며, 글씨를 쓸 때마다 심이 부러지고 종이가 새까맣게 얼룩져 연필조차 국산품을 쓰려고 하는 한국인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근대화되었다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근대화와 경제 개발의 의미를 모르는 무식한 이들, 장면 총리에게 경제 개발 계획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무식한 이들을 위해 장면의 계획안을 잠시 들여다 보자. 우선 이 계획안은 자발적인 것이었다기보다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은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이 모든 것을 일본에서 수입해다 쓸 것인지 물으며 만약 한국에 경제적 독립을 성취할 계획이 없으면 미국도 무한정 무상원조를 지속할 수 없는 입장임을 밝혔다. (만약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한국인은 여태껏 시멘트마저 일본 수입에 의존하였을 것이요, 미국의 달러 원조가 중단되면서부터 모든 건축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한국이 무상원조를 계속 받으려면 산업화 계획이 있음을 보여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장면 내각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미국이 물은 것은 한국은 도대체 언제부터 공장을 지을 것인가였는데, 장면 총리는 농업개량안을 내밀었는데, 그 골자는 미국이 원조를 3배로 늘려주기 시작할 때 5개년 계획으로 농가 개량을 시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미 한국 한 나라에 전 유럽에 마샬플랜으로 원조한 것보다 두배나 되는 원조를 해 주었는데, 도대체 왜 앞으로 3배나 더 해달라는 것인지 미국이 알아보아야 했다. 그 당시 한국 경제의 문제는 모든 것을 수입해다 써야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와 달리 석유와 몇배의 식량이 필요하였기에 미국이 무상원조가 중단되면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온 사회가 멈추어 설 수밖에 없으며 국민 대다수가 굶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지도자들은 외화벌이 계획은커녕 국산품 생산할 생각조차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양김씨나 노무현이 그 시대에 대통령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였다. 장면 총리는 농가 개량을 한다면서 비료 공장 지을 계획이 없었다. 만일 더 많은 비료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위해 3배의 원조가 필요했다면 5개년 계획 후에도 계속 영구히 비료를 일본에서 수입해다 쓸 것이었다는 말인가? 그래서 1961년에 미국이 한미경제협력을 연구한다는 명분으로 실사팀을 보내 한국 경제의 현황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45년에 가졌던 한국에 대한 인식을 대폭 수정하여야만 했다. 처음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동등한 산업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 하에 출발하였었다. 그렇다면 전후 일본 경제가 급성장하는 반면에 한국은 수출은커녕 국산품조차 생산해 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제서야 미국은 그 책임이 일본에 있음을 보았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은 과학 교육을 받지 못하게 하며, 공장에서 기술 인력이 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1961년에 미국이 본 시각이 가장 타당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은 그릇된 시각이다. 근대화가 수반하는 것이 과학혁명, 산업혁명인데 일본은 의도적으로 한국이 산업 기술을 영구히 일본에 의지하게 하는 정책을 폈다. 이것이 근대화였는가? 아니다. 일본의 의도는 리영희 교수처럼 결과론적 친일을 하는 한국인이 자라나게 하는 교육이었다. 그래서 문학 교육은 무한정 지원하면서 과학 교육의 문은 닫았다. 이것을 간파한 박정희가 일본육사 과학전공에서 수석으로 졸업하여 조선인 과학도 1호가 되었던 것인다. (그리고 과학입국 반대, 산업혁명 반대를 외치던 한국의 좌익사상은 리영희 교수같은 글쟁이들(문학도)에게서 시작되었음에 유의하라.) 1961년 한미경제협력단이 미국 정부에 보고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후 한국과 일본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일본과 독일은 1945년에 이미 기술 선진국이었지만 한국은 아무런 기술이 없이 출발하여야 했다. 그리고 다른 후진국들에 풍부한 천연자원도 한국에는 없다. 이처럼 자원 없고, 기술 없고, 자본 없고, 시장 경험 없는 나라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따라서 미국이 한국 경제 발전을 도울 수 있는 방도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는 미국이 아무리 한국에 무상원조 해 주어야 한국 경제가 일본에 종속되는 것이 가속화될 뿐 아무런 전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장면 내각에 앞으로 3년간 1억불씩 원조를 삭감하여, 3년 후부터는 완전 중단할 것임을 통보하였다. 장면 총리의 원조 증액 요구는 후진국의 양극화 논리에서 출발하였다. 한국은 가장 가난한 나라이니깐 농가를 개량하려면 일본에서 더 많은 건축 자재를 수입해야 하고, 그러니깐 한국의 산업화를 원하면 원조를 3배로 늘려 주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미국이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군부가 알았다. 당시 군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주화된 집단이요,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집단이요, 가장 선진 집단이었다. 1950년대에 대부분의 한국인은 미국 유학을 꿈도 꿀 수 없었는데, 1952년 한미동맹체결 직후부터 미국은 지도자 연장 교육 프로그램이란 명목으로 한국 장교들을 미국에 유학시켜 민주주의 정론과 경제학과 민주행정과 역사학을 공부하게 하고, 미국 가정에서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하게 하며, 여기에 전문적 군사학을 곁들여 제공하였다.) 여기서 당시 군부의 지식 수준과 40년 후 한국 386학자들(좌익 지식인들) 지식 수준의 허와 실을 비교해 보자. 한국 386 학자들은 문학의 관념과 사회과학을 혼동하여 학사와 박사 과정을 시위로 허송세월하다가 외국에 가서 한국에 관하여 박사논문을 쓴 자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문제는 강정구 논문이든 한홍구 논문이든 그들의 논문은 사회과학적 기초 위에 씌어진 것이 아니라, 좌익 관념론에서 정치와 경제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려 하며, 그것도 사실상의 독학인 논문을 썼다는데 있다. 객관성 없이 자기의 주관을 가지고 한국 상황을 서술하여 받은 학위는 실보다는 허가 많다. 그런데, 1950년대 한국 장교들은 미국에 가서 일류 교수들로부터 학문의 정수를 교육 받았다. 본래 그 당시 육사가 한국 엘리뜨들이 모인 학교였는데, 여기에 학문의 정론의 골격을 미국에서 가져왔기에 당시 군부에는 세계 정세를 보는 눈이 있었다. 장면 총리의 원조 증액 요구는 후진국의 양극화 논리에서 출발하였는데, 만약 한국이 가장 가난한 나라이기에 원조를 늘려야 한다면 미국이 원조해 주어야 하는 가난한 나라는 세계에 너무도 많으며, 미국에 그럴 재원은 없다. 그래서 5.16군사혁명이 불가피하였다. 5.16군사혁명과 더불어 수입상들이 일본 상품 수입을 중단하고 국산품 생산 공장을 지을 것을 국가에 서약하였으며, 박정희는 미국에 날라가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면담하며 의사당에서 한국은 자원이 있는 나라, 근면의 자본이 있기에 자본주의 경제가 가능한 나라임을 연설하였다. 박정희가 작사 작곡한 "잘 살아보세"에 어떤 철학이 있던가? 본래 양극화 문제는 봉건사회의 전형적인 문제였다. 서구에도 늘 양극화의 문제가 있었다. 중세 시대 서구인들은 수도사의 정신으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래서 이탈리아 대부호의 아들 성 프란시스는 일부러 거지 수도승의 삶을 선택하였으며, 여기에 가난한 자는 영적으로 부요하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데, 종교개혁자들은 근면과 성실의 자본을 일깨워주었으며, 종교개혁자들의 설교가 자본주의를 일으켰다. 본래, 자본(capital)에는 근면, 성실, 노력, 지식, 학식, 창의력, 아이디어, 경험 등 무형 자본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리고, 박정희가 이런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를 연설하였으며 미국인들의 갈채를 받았다. 1961년 한미경제협력단이 미국 정부에 "한국처럼 자원 없고, 기술 없고, 자본 없고, 시장 경험 없는 나라에서는 경제가 발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미국이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보고하고 원조 중단 결정을 내리자마자,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으며, 한국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박정희가 외쳤다. 한국에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으니 미국은 와서 이 노동력에 투자하라. 한국은 기술 선진국이 될 잠재력이 있는 나라이니 기술 이전을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미국이 한일회담을 주선한 계기가 되었다. 한국에 경제 자립 의지가 있음을 확인한 미국은 한국을 적극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으며, 그 첫 단추는 순조로운 기술 이전을 위한 한미외교 정상화였다. 미국은 일본에 우리는 군정 5년만에 너희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될 기초르를 마련해 주었는데, 너희는 36년 동안 도대체 산업화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를 따졌다. 여기에 일본 정계나 학자들이 반문할 수 없었다. (1980년대에 등장한 식민지 근대화론은 이런 점에서 모순이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의 압력에 응하였으며, 박정희 대통령은 미일 양국에서 무료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기술 이전을 해오는 고속도로를 가진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한국 양국화 문제의 주법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좌익 사상이다. 모든 봉건 사회는 경제적 양극화 사회였으며, 양극화를 해결하는 방법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밖에 없다. 유형 자본이든 무형 자본이든 만인에게 하나님이 주신 자본이 있다는 자본주의가 산업혁명을 몰고 왔으며 중산층이 등장하게 하였다. 공산주의는 양극화 해결을 위한 또 다른 실험이었는데, 20세기 역사는 공산주의는 오히려 지배계급과 인민간의 양극화를 극대화하며 최빈국으로 전락케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그럼에도 지금 노무현과 정동영의 논리는 공산주의로 가고 있다. 국제사회가 박정희 대통령을 우러러보는 이유는 그가 국제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한 첫번째 인물이요, 아직까지는 박정희의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무식한 이들은 1961년 이후 아무나 정권을 잡았어도 후진국은 자동적으로 선진국이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보다 훨씬 선진국이었던 방글라데쉬, 버어마, 필립핀, 인도네시아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며, 남미 국가들은 오히려 곤두박질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라. 후진국일수록 산업화는 불가능하며, 2차 대전 이후의 경제 전쟁 시대에 농업국이 산업국이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국산품 공장이나 수출 공장은 없이 일본 제품 수입상들뿐이었던, 더구나 미국의 무상원조 중단으로 곧 외화보유고가 바닥이 나게 된 1961년에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가 공장을 지어 모든 산업을 국유화하겠는가? 박정희는 5.16산업혁명으로 모든 수입상이 일변하게 수출산업체가 되게 하였으니, 계획 경제였다. 그럼에도 삼성, 현대, 대우 등 각 업체들이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산업을 키우게 하였기에 계획 경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 업체들이 국제시장에서 국가경쟁력을 가지도록 국가가 이끌어 주었으니 서구식 자본주의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후진국은 경쟁에 밀려 경제 발전이 불리하였던 20세기 후반에 박정희 모델이 세계에서 유일한 성공 모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날 노무현이 하는 짓은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짓이다. 좌익은 양극화를 강조하여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 좌파 정권이 집권할 수록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된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은 정책 철학의 문제이다. 좌익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데, 그 의미를 왜곡하여 부정하고 양극화 현실을 강조한다. 그래서 노무현 정권 하에서는 자살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은 가난한 서민에게 "나는 내일의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긍지를 주었으며, 노무현의 연설은 가난한 서민에게 "나도 남의 것 강탈을 합리화하자" 의식이나 "나는 사회에 부담이 되는 무가치한 자이다"는 비탄감을 심어준다. 그래서 치안은 불안하고 자살자가 늘어난다. 그래서 지금 점차 공산주의로 가고 있는 노무현의 증세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처방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직업을 창출하시니 누구든 일만 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다. 박정희는 열심히 일한 자의 것을 빼앗지 않았다. 그 대신 누구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장면 총리의 문제는 생산이 결여된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며, 노무현 역시 생산의 개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돈을 쓰기 위한 위원회과 조직들과 기관들만 만들고, 창조적 생산을 하려는 개념이 전혀 없다. 중류층 서민을 정책 실수로 빈민층을 만들어 놓은 다음 사회의 부담으로 여기는 패러다임에서 양극화 해결이 되는 길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온 국민을 국가 건설의 역군으로 각자의 자본(재능, 노력, 근면, 성실, 경험)을 귀히 여기는 패러다이 양극화 해결의 열쇠인 것이다. ------------------------------------------------------ ※ 옮긴이: 다 좋은 내용이나 양극화에 대한 것은 잘못이다. 양극화는 노무현이 내놓은 또하나의 선동구호 일뿐이다. 양극화를 강조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니들이 어디에 속했느냐 하는 것이다. 양극화란 말 자체가 잘못이다. 노무현깽판정권에선 중산층의 서민화, 서민의 빈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정권은 전체적으로 모든 면에서 국민들 수준을 다운그래이드 시키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뿐아니라 교양지식수준까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세금을 거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요즘 각종 빨갱이위원회들은 넘쳐나는 돈을 주체 못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눈먼돈 쓰느라고 정신이 없다. 세금 많이 거두어 잘된 역사가 없다. 도대체 세금을 많이 거두어 양극화해소라면 어느나라든 세금 많이 거두려 할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조류는 감세다. 그나마 선진국은 세금 한푼 쓰는데 철저하며 낭비할수 없도록 하고 있다. 노무현정권은 무능,부패가 극에 달했다. 진정으로 양극화해소 할라면 국민들에게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 기업활동을 편리하게 하고 시장질서를 확립하며 고용창출에 힘써야 한다. 고용창출보다 더한 복지는 없다.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6621 한국 게이머들, `리니지`서 중국인 학살 [2]
리니지
06-02-21 1679
6620 이데올로기와 21세기 [2]
음...
06-02-21 1186
6619 오욕에 관한 재미있는 우화와 해인사 스님의 유혹타파 .... [1]
06-02-21 1828
6618 고래사이에 새우라 [1]
ㅋㅋㅋ
06-02-21 1295
6617 나는 괜찮습니다
06-02-21 1205
6616 나이드신 눈팅님들께 드리는 세레나데 [1]
06-02-21 1132
6615 웰컴투 동막골 처럼 되면 좋겠죠? [1]
06-02-21 1381
6614 게이샤의 추억 [3]
06-02-21 1247
6613 세계화.... 미래사회의 대 변혁.... [3]
한민족
06-02-20 1494
6612 한반도, 공산혁명 다시 일어나나? [13]
한민족
06-02-20 1332
6611 이 빨갱이 싸이트엔 북한의 국가가 수록 되어 잇습니다 [4]
ㅎㅎㅎ
06-02-20 1376
6610 [re]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동영상
06-02-20 1292
6609 한민족 소한이애비 스켈레톤 들어라 [1]
국가보안법
06-02-20 1358
6608 실시간기독교TV방송국 입니다. [1]
sjsch
06-02-19 1393
6607 호소문 [8]
나원참
06-02-19 1445
6606 한국전쟁 발단 비화-모택동의 흉계 [1]
나원참
06-02-19 1819
6605 파키스탄 자국내 불체자 추방-한국내 파키스탄 불체자 ....
나원참
06-02-19 1819
6604 한국전을 일으킨 스탈린의 가공할 흉계 [2]
ㅋㅋ
06-02-19 1280
6603 한국의 근대화는 박정희때부터 시작했다.(펌:역사학도) [4]
ㅋㅋ
06-02-19 1350
6602 [re] 회의중
두민족
06-02-18 1198
글쓰기

특별보도

더보기

핫이슈

더보기

많이 본 기사

더보기

SOH TV

더보기

포토여행

더보기

포토영상

더보기

END CCP

더보기

이슈 TV

더보기

꿀古典

더보기
444,773,546

9평 공산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