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倭)는 원래 동이(東夷)였습니다. 왜(倭)란 위(魏)나라가 세력이 약해져서 변화한 명칭입니다.
왜(倭)는 대만, 유구, 필리핀섬 등을 본거지로 활동하던 해적들을 이르는 말로 주로 해적질이나 육지에 상륙하여 도적질을 하던 집단들을 통칭하여 왜(倭)라고 하였습니다. 다시말해 표해족(漂海族) 전체를 왜(倭)라고 하였으며 이들 활동반경은 동지나해를 비롯하여 동남아시아까지 아주 넓게 활동을 했으며 그들중 일부는 백제와 융합하여 일본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유구열도를 거쳐 오늘날 일본땅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나라현'은 고대일본의 수도 였습니다. (6세기경)
당시 일본에 선주했던 세력은 북방에서 남하한 아이누인과 한반도에서 건너간 고구려계통의 이주민들이 주 세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원래 말(馬)이 없었는데 한반도에서 이주해간 고구려인들이 전해주었으며 고대유물 또한 고구려식이 더 많은 실정입니다.
후에 백제인이 들어와서 왕국을 건설했지만 고구려식 문화의 영향을 벗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한반도와 일본은 고구려의 영토 였다고 보아야합니다. 그 문화적 특징이 고구려적 유목민문화 형태를 띤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 입니다.
4세기에 신라인이 한반도에 진출 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전에 한반도에는 고구려계통의 사람들이 유목생활을 버리고 농경정착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들은 고구려 뿐 만이 아니라 신라, 백제 등 어디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받지 않고 독자적세력을 유지하며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대륙에 있었고 한반도는 대륙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섬 정도로 보였기 때문에 대륙의 사람들은 이곳을 유배지 정도로 생각했으며 아주 낙후된 쓸모없는 땅으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한반도의 유물들이 대륙의 것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형태를 지닌것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이며 절도 많고 탑도 많은 이유가 바로 그런 관점에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소위 남부지방의 가야유물이란 것도 모두 고구려 유물이며 한반도 남부에 가야란 것은 없었습니다.
학자들이 그렇게 짜맞춘 것에 불과합니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7 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