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덕부(李德孚 중의사)
[SOH] 개인적으로 대상포진이란 질병은 사기(邪氣)와 같다고 생각한다. 또한 도적(賊)과 같아 범죄를 일으키기 전에는 체포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 질환은 발병이 빠르고 발전하는 것도 신속해 발생 직후에 바로 진단해내지 못하면 이미 늦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의학에서는 보통 ‘사전(蛇纏)’ ‘화단(火丹)’이라고 한다. 만약 이 병이 각막을 침범하면 각막궤양을 일으켜 심하면 실명할 수도 있으므로 즉시 치료해야 한다.
어느 날 한 환자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주로 호소한 증상은 어깨, 목, 팔꿈치 부위가 불에 덴 듯이 아프다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어깨주위의 관절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환자는 고통스러워 감당하기 힘들어했고 약간의 발열을 동반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감기에 걸리기 쉬운 계절이라 진료실에는 하루 종일 기침, 콧물, 두통, 속이 불편하다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붐볐기에 나도 처음에는 유행성 독감 후에 나타나는 전신 몸살, 어깨 통증 그리고 목 부위가 굳는 증상으로 보았다.
그런데 침을 놓으려는 순간 환자의 우측 어깨부위에 마치 뱀에 물린 것 같은 붉은 반점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벌레에 물린 적이 있나요?”하고 묻자, 환자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곧 시기적으로 한겨울이라 벌레에 물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벌레 물린 자국처럼 보였던 부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수포가 보였다. 이를 환자의 증상과 연결해보니 이것은 바로 ‘도적(賊 여기서는 대상포진)’으로 지금이 녀석을 체포할 적기였다.
‘아하! 지금이야말로 손을 쓸 좋은 기회로구나.’
나는 그녀를 똑바로 앉게 하고 가는 줄로 머리둘레를 잰 후 길이를 표시했다. 그런 후에 다시 이 줄을 가지고 목 주위를 앞에서 뒤로 한 바퀴 잰 후 선의 양끝을 가지런히 해 흉추 정중앙에 대고 늘어뜨리니 줄 끝이 닿는 곳에 분홍색 또는 옅은 황색의 작은 반점이 하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적의 소굴’(賊窩), 중의학에서는 지주혈(蜘蛛穴)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치료는 뜸을 이용하는데 지주혈에 뜸을 한 장 뜨면 된다.
그녀가 집에 돌아간 후 2시간이 지나 전화가 걸려왔다. 통증이 크게 줄었고 감기증상도 없어졌다고 한다. 뜸이 도적 소굴을 완전히 파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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