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페이스북 바로가기 트위터 바로가기
  • 중국

  • 국제/국내

  • 특집

  • 기획

  • 연재

  • 미디어/방송

  • 션윈예술단

  • 참여마당

  • 전체기사

검색어 입력

[SOH 산책] ‘道’와 ‘科學’은 상반된 것이 아니다

편집부  |  2020-09-19
인쇄하기-새창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선(善)은 인류가 가진 천성의 하나로 본능이나 관념과는 다르다. 선량한 사람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동물이 고통을 겪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며 심지어 눈물까지 흘린다. 이러한 과정은 사고와 판단을 거치지 않는다. 선은 사람의 기본적 천성 중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은 대부분 많든 적든 어느 정도의 선량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이해관계’가 발생할 때, 이 선량함은 흔히 뒷전으로 밀린다. 만약 자신의 적(敵)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본다면 동정을 느끼기보다 ‘고소함’이나 ‘통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왜 선량함이 작용하지 못할까? 그것의 원인은 사람의 사욕(私慾)에 있다. 사욕은 이해관계에서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게 한다. 이 사욕이 극단적으로 팽창하면 선량한 천성은 아주 작아져, 자신을 막는 사람에게 노기충천하게 되며 육친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


속담에 “사람이 성현이 아닌데 어찌 과오가 없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성현은 ‘과오’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약 어디서나 선한 의념을 일관적으로 견지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그 선량한 일면은 매우 강해져, 명리나 사욕이 그의 판단과 행위를 좌우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인은 고상한 덕을 겸비한 사람을 군자라고 부른다. 군자는 성현의 책을 필독해야 하는 데 그것은 성현이 군자보다 높은 층차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현보다 더 높은 경지도 존재할까? 있다면 어떤 상태일까? 만약 사람의 마음에 사욕이 완전히 없고 선척적인 본성만 존재한다면 선(善)과 사(私)의 모순이 없어진다. 이런 경지를 도가에서는 ‘반본귀진’이라고 하며, 불가에서는 ‘집착이 없다’고 한다. 다른 말로 도가는 ‘진인, 불가는 ’부처‘라고 부른다.


일부 사람들은 과학과 신(神), 불(佛)을 대립적인 개념으로 여긴다. 하지만 과학은 근본적으로 신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과학은 실증의 방식이기 때문에 실증을 거치지 못한 현상 등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실험을 통하여 가짜가 증명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는다. 과학과 유신론의 구별은 사물에 대한 인식 방법이고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문제에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신을 믿는 사람은 과학적인 검증이나 어떤 증거 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양의 많은 과학자들은 종교 신앙자로서 과학적인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했는데, 그 내용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므로 과학으로 신, 불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완전한 논리적인 착오이다.


사람들은 천성을 잃은 자를 ‘짐승’, 보통사람을 “속인”, 선을 쌓고 덕행이 좋은 사람을 “성인”, “반본귀진”, 집착심이 없는 사람을 “불·도·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각각의 층차를 구분하는 것은 ‘마음(心)’인 바, 관건은 어떻게 덕(德)을 쌓고 마음을 닦는가 하는 것이다.


고금중외의 정통 종교, 예를 들면 불교, 도교, 기독교 등은 모두 사람들이 마음을 닦고 도덕을 중시하며 생명의 층차를 승화할 것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종교는 사람들에 대한 구속력을 잃게 됐다.


이전의 장엄과 신성은 없어지고 수련의 전당이 유람승지로, 사교(社交) 장소를 변했으며, 수련을 가르치는 신, 불은 어느 때부터인가 강압적으로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사람들이 신, 불을 찾는 것은 복과 보호를 빌고 자신의 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으로, 신, 불이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과 정반대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법률을 인간의 행위를 단속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과학이 인류를 더욱 편안하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도덕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폐물이 됐다. 법률은 더 이상  사람의 마음을 구속하지 못하며 과학기술 또한 여전히 양날의 칼이다.


탐욕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리게 했고 원한은 그들로 하여금 미쳐 날뛰게 하고 있다. 아무리 법률의 재제가 엄격하더라도, 아무리 더러운 일이라 하더라도 많은 돈만 내걸기만 하면 곧 가서 하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마약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마약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살인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 청부살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요즘의 사람들은 필요한 일체를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과학은 양날의 칼이다.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힘도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지구를 백번 이상 파괴할 수 있는 양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에도 다양한 종류의 신식 대규모 살상 핵무기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으며 여기에 컴퓨터의 기술까지 결합되어, 인류의 생존은 이미 스위치 단추의 통제하에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람에 대한 도덕에 대한 요구 조건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아마 믿지도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몇 명의 악인이 나쁜 짓을 해도 인류에 큰 영향이 없었으나 지금은 몇 사람의 작용만으로도 인류에게 큰 재난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과학 기술은 또 국력이 약한 국가에게도 전 지구를 훼멸시킬 수 있게 하는 무서운 위력을 지니게 했다. 오늘날 각국의 팽팽한 이익 충돌은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종족간의 모순, 지역적인 충돌, 테러조직의 활동들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인류가 덕을 중시하지 않으면 결국 과학으로 인해 파멸될 것이다.


과학은 줄곧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도덕’에 대한 사람들의 중시는 날로 쇠퇴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도덕의 이 같은 장기적인 양극 분열은 인류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인류에게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은 인류의 도덕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것이지 법률이나 기타 방법 및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오늘날과 같이 ‘도덕 수준의 전체적인 제고’가 요구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현재 인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인류 문명의 초기에 나타난 석가모니, 노자, 예수 등은 각자의 자비로서 덕을 수행하는 진리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인류의 자아 단속이 보편적으로 내려간 오늘, 누군가가 수천만 사람들의 도덕 수준을 제고 할 수만 있다면 그는 사실상 사람들을 물과 불에서 구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중생을 제도 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 明慧網)



편집부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록  
글쓰기
번호
제목 이름 날짜
1203 [아하! 그렇구나] ‘우연’... '필연'의 다른 모습?
편집부
20-10-29
1202 [SOH 산책] 진정한 행복
편집부
20-10-28
1201 [아하! 그렇구나] 고대에는 어떻게 연대를 기록했을까?
편집부
20-10-27
1200 [古中文化] 왜 현실에서는 소설처럼 운무를 타고 하늘을..
편집부
20-10-27
1199 [푸드&차이나] 유비·관우·장비가 복숭아밭에서 의를 맺..
편집부
20-10-26
1198 [SOH 산책] 체온 면역력
편집부
20-10-21
1197 [푸드&차이나] 중추절 월병과 토란에 얽힌 이야기
디지털뉴스팀
20-10-16
1196 [SOH 산책] 사람의 뇌와 음악
편집부
20-10-13
1195 [아하! 그렇구나] 달은 어디서 왔는가?
편집부
20-10-09
1194 [SOH 산책] 중국에 부족한 것은 '도덕적 권위’
편집부
20-10-06
글쓰기
366,416,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