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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구나] 고대에는 어떻게 연대를 기록했을까?

편집부  |  20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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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SOH] 전통사회에서 연대를 기록하는 기년법(紀年法)에는 대략 4가지가 있었다. ‘왕이나 제후가 즉위한 연차를 기록하는 방법(王公即位年次紀年法)’, ‘연호(年號)기년법’, ‘간지(干支)기년법’, ‘연호와 간지를 함께 쓰는 방법’이 그것이다. ‘주(周) 무왕(武王) 11년’과 같은 표기법이 첫 번째 기년법이다.


이 4가지 방법 중 연호(年號)를 이용한 것이 가장 널리 쓰였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백거이의 ‘비파행(琵琶行)’에 나오는 ‘원화(元和) 10년’, 전조망(全祖望)의 ‘매화령기(梅花嶺記)’에 나오는 ‘순치(順治) 2년’, 범중엄의 ‘악양루기(嶽陽樓記)’에 나오는 ‘경력 4년 봄(慶曆四年春)’에서 원화, 순치, 경력 등은 모두 황제의 연호다.


■ 연호기년법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청나라 때 사학자 조익(趙翼)은 ‘22사차기(二十二史劄記)’의 고증에서 연호기년법이 최초로 쓰인 것이 한 무제 19년(기원전 122년)부터였음을 밝혀냈다. 이전에는 군왕의 재위연수만 있었을 뿐 연호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연호는 한 무제 이후 황권(皇權)의 상징으로 쓰였다. 황제 일가가 천하를 소유하는 구체적인 표현이었다.


‘한서(漢書)’ 기록에 따르면 한 무제가 무리를 거느리고 사냥에 나서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특이한 모습의 흰 기린을 포획하자 많은 신하들이 이를 길상(吉祥)한 것으로 여겼다. 이에 기린을 포획한 해를 기념하기 위해 이 해를 새로운 기년(紀年)을 삼도록 건의했다. 당시 채택된 연호가 바로 ‘원수(元狩)’이며 기원전 122년이 곧 원수 원년이 된다. ‘수(狩)’란 사냥을 뜻한다.


그런데 불과 6년 만에 산서(山西) 분양(汾陽) 지방에서 다리가 셋 달린 보정(寶鼎)이 발견됐다. 많은 신하들이 이 솥들 역시 길상한 보물로 여겨 마찬가지로 새로운 연대를 제정해 사용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무제는 새로 ‘원정(元鼎)’이란 연호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기원전 116년은 원수 7년이 아니라 원정 2년이 됐다. 이후 새로운 연호를 처음 기록하는 것을 ‘기원(紀元)’이라 하고 연호를 바꾸는 것을 ‘개원(改元)’이라 불렀다.


‘한서 무제기(武帝紀)’에는 “무제 건원(建元) 원년,안사고가 말하길 자고로 제왕은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통해 보자면 한 무제 원수 원년이 역사상 최초의 연호기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 무제가 즉위한 지 19년째 되는 해를 원수 원년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이전 18년을 표기하는 방식이 문제가 됐다. 이에 무제는 3가지 연호를 추가했는데 건원(建元), 원광(元光), 원삭(元朔)이 그것이다. 이들 연호는 6년 간격으로 교체했다. 다시 말해 한 무제가 즉위한 첫해(기원전 140년)를 건원 원년으로 삼고 6년마다 원광, 원삭으로 바꿨다는 뜻이다.


사실 건원이란 연호기원이 처음 사용되었음을 표시하기 때문에 후대 역사학자들은 건원 원년을 중국 역사상 연호기년의 시작으로 간주한다. 무제 이후 새로운 황제가 등극할 때마다 연호를 바꾸고 새로운 기년을 만들었다.


■ 연호에는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일까?


일반적으로 군왕이 사용한 연호에는 모두 길상(吉祥, 길하고 상서롭다)의 뜻이나 또는 재위 기간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뜻이 있다. 가령 당(唐) 고조가 사용한 무덕(武德)이란 연호에는 무력을 통해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송(宋) 태조가 사용한 건륭(建隆)이란 연호는 새로운 국가를 건립해 융성하겠다는 뜻이 있다.


연호 중에는 황당한 경우도 가끔 있다. 예를 들어 당나라 대종(代宗)이 즉위한 지 얼마 후 꿈에 거대한 황금도장이 당나라 땅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를 길조라고 여겨 다음날 '보응(寶應)'이란 연호를 제정하고 그 해를 보응 원년으로 삼았다. 측천무후는 스스로 황제를 칭한 후 꿈에 두 개의 거대한 발을 지닌 거인을 보고는 하늘이 자신에게 복을 내려주는 것이라 여겨 ‘대족(大足)’으로 연호를 바꾸기도 했다.


이처럼 황제의 연호는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 제정하거나 중간에 교체할 수 있었다. 때문에 명나라 이전 황제들은 보통 여러 개의 연호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 한 무제는 11개의 연호를 사용했고 측천무후는 21년 재위기간에 무려 18개의 연호를 썼다. 어떤 황제들은 이전 황제가 사용하던 연호를 계속해서 쓰기도 했다.


이렇게 연호 사용이 불규칙해지자 일관적으로 연대를 표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명나라 이후에는 한 황제가 하나의 연호를 사용하는 관례가 생겼다. ‘일제일원(一帝一元)’이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황제를 직접 호칭하는 대신 그가 다스리던 기간의 연호를 사용하게 됐다. 명(明) 세종(世宗)은 가정제(嘉靖帝), 청(淸) 성조(聖祖)는 강희제, 청 고종은 건륭제로 칭하는 식이다. 가정, 강희, 건륭이 해당 황제가 쓰던 연호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황제 연호를 그대로 쓴다. 지금 우리가 쓰는 기원은 서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독교의 예수 탄생 해를 원년으로 한 것이다. 서양문명이 강성해짐에 따라 현재 세계 대부분 나라에서는 이를 공통의 기원으로 삼게 됐다.


중국에서는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함과 동시에 2천년 이상 써오던 연호기년법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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