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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中文化] 진시황은 왜 2000년 넘게 누명을 썼을까?

문화부  |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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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진시황(秦始皇)에게는 폭군이란 꼬리표가 2000년 넘게 붙어 있다. 최근 몇 년 전 모 언론에서 ‘운몽진간(雲夢秦簡)’ 관련 보도가 나온 후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진시황의 공과(功過)를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첫 번째 황제다. 13세에 왕위에 올라 21세에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10년 만에 전국칠웅의 나머지 여섯 나라를 병탄하고 중국을 통일해 무려 5백 년에 달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전란(戰亂)을 종식시켰다. 그는 황제 제도를 창안해 분봉제(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을 실시했으며, 군현(郡縣)을 설치하고, 문자를 통일했으며, 수레바퀴의 궤나 화폐·도량형을 통일하고, 흉노 방어를 위해 만리장성을 건설했을 뿐만 아니라 남으로는 백월(百越)을 토벌하고 북으로는 흉노를 소탕해 외부의 우환을 제거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이렇게 위대한 업적에도 중국 교과서에는 늘 그를 폭군의 상징으로 실었고 독단과 전행, 인민에 대한 노역 등만을 강조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분서갱유다.

그러다 1975년 12월 호북(湖北)성 진묘(秦墓, 진 시기 무덤)에서 ‘운몽진간(雲夢秦簡)’이 발굴되었다. 묘 주인의 이름은 ‘희(喜)’로 진조에서 현(縣)에서 사법(司法)을 주관하던 관리였다. 이 죽간들은 말하자면 그의 개인적인 메모인데 이 중 612개는 진조(秦朝) 법률문서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 죽간에 기록된 내용은 여러 사람의 기존 인식을 뒤엎었다.

현재 진시황에 대해 가장 뿌리 깊은 오해에 대해 아래에서 필자는 ‘운몽진간’과 결합해 하나씩 분석해보고자 한다.

■ 분서갱유와 맹강녀 전설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회자되는 것은 분서갱유(焚書坑儒)다. 이것은 후대 문인들이 진시황에게 덮어씌운 누명이다. 분서는 당시 진시황이 사상문화 통일을 위해 유가류의 일부 서적을 대량으로 불태우긴 했지만 의학·농학 서적은 온전히 남겼다. 갱유란 당시 진시황이 400여 명의 강호의 술사(術士)들을 죽인 것인데 나중에 천 명이 넘는 유명한 선비들을 죽였다는 누명을 썼다.

맹강녀(孟姜女) 전설은 만리장성 건설에 동원되었다가 목숨을 잃은 남편을 그리워한 맹강녀의 울음이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는 이야기다. 춘추전국시대 《좌전(左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래 제나라 대장군 기량(杞梁)이 죽자 그의 아내가 남편의 죽음을 슬퍼하며 길가에서 울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서한(西漢)의 유향(劉向)이 《전국책(戰國策)》을 편찬할 때 이 이야기에 기초하여 아내의 울음을 집어넣어 아내가 남편의 죽음으로 눈물을 흘리자 성이 물에 잠겼다고 했다.

나중에 당조(唐朝)에 이르러 시인 관체(慣體)가 《기량의 처(杞梁妻)》라는 시를 써서 이 이야기를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던 시기와 연계했다. 또 당조의 한 시인이 《동현기(同賢記)》라는 시를 써서 이름도 없던 기량의 아내를 맹강녀로 고쳤는데, 이때서야 맹강녀가 죽은 남편을 애도해 눈물을 흘리자 장성이 무너졌다는 유명한 전설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운몽진간》에는 장성을 쌓을 때 노역(勞役)에 대한 품삯을 받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진조 율법(律法)에 따르면 죄수가 일을 해도 하루 8전씩 임금을 주도록 규정했는데, 당시 진조 공식 식량표에 따르면 한 냥이면 옥수수 4근을 살 수 있었다. 때문에 하루 8전의 삯은 혼자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금액으로 대우가 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맹강녀 전설이 허구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 진승·오광의 난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대택향기의(大澤鄕起義)’는 진이세(秦二世) 때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진승, 오광 등 900여 명의 수졸(戍卒)을 어양(漁陽)으로 징발해 방어를 하게 했는데, 폭우 때문에 일정이 늦어졌다. 당시 법률 규정에 따르면 모두 죽여야 했고, 진승, 오광은 상황이 급해지자 군사를 일으켰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봉기의 원인을 진나라의 엄격한 법 탓으로 돌렸고, 진시황 때부터 이 가혹한 법을 사용해왔는데 진이세까지 연장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죽간에서 우리는 진조 군대의 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만약 요역(徭役)을 3일에서 5일 지체하면 구두로 비판을 받는다. 6일에서 10일 사이면 벌금을 내는데 방패 한 벌의 가치가 있었고, 10일 이상 지나면 갑옷 한 벌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나 안개 같은 악천후가 닥치면 모든 형벌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즉 진시황 시기의 법이 매우 공정하고 인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봉기가 일어난 가장 큰 것은 아마 진이세 호해의 성질이 흉악하고 포악해서 자신의 형제자매를 전부 살해하고 대신들을 모함했을 뿐만 아니라 간신인 조고를 총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성들에게 노역을 더욱 가혹하게 하여 진시황제가 세운 많은 율법이 완전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달라졌고, 그래서 진승과 오광의 봉기가 일어난 것이다.

죽간에는 또 키가 130cm 미만이면 징병을 면제받고 매 가정마다 반드시 남자 한 명을 남겨 가정을 돌보고 노인을 부양하게 하며, 매년 2월 봄이면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거나 어린 새를 잡는 것을 금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즉 당시 법률과 법규는 상당히 인간적이었다. 또, 위로는 국가적인 홍수 피해에서 아래로는 군현의 임면제도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폭과 깊이가 혀를 내두를 정도다.

■ 아방궁 토목공사

당대(唐代) 시인 두목(杜牧)이 쓴 《아방궁부(阿房宮賦)》는 아방궁의 면적이 300여 리에 이르며 화려할 뿐만 아니라 각종 금은보화, 6개국에서 온 미녀들이 있었다고 묘사한다.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교만하고 사치를 부리는 진시황의 모습이 남는다. 그러나 2002년 10월 중국사회과학원 고고학 팀이 아방궁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했는데 아방궁은 실제로 건립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학자들이 2006년 1년 여에 걸쳐 아방궁을 탐사한 결과 아방궁 유적 20만㎡의 탐사면에서는 붉게 탄 흙의 유적 몇 곳만 발견됐지만 함양궁(咸陽宮) 터에서는 불에 탄 흔적이 무더기로 나왔다.

《사기(史記)·항우본기(項羽本紀)》를 보면 사마천은 “진의 궁실을 태웠는데 불이 3개월 동안 꺼지지 않았다”라고만 기록했을 뿐 아방궁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사기》에서 아방궁에 대한 묘사를 보면 사마천은 아방궁이 단지 기획도일 뿐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항우가 아방궁에 불을 지른 역사 기록이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항우가 진나라가 멸망할 때 불을 지른 것은 함양궁일 가능성이 높으며 아방궁은 당시 지어지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두목이 《아방궁부》를 쓴 목적은 향락을 탐하고 백성들을 착취해 몰락한 진(秦)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권고하기 위한 것이다. 사실 진이 6개국을 통일한 후 징수한 세금 대부분은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하는 인프라 설비에 쓰였다. 가장 많이 비난받은 것은 군대를 동원해 만리장성을 건설한 것이지만, 만약 만리장성이 없었다면 흉노의 침입 횟수가 몇 배로 늘어 백성들의 생명이 도탄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건설된 운하인 영거(靈渠)와 홍구(鴻溝)는 수천 묘에 달하는 관중(關中)의 경작지에 물을 댈 수 있게 해 후손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고정관념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진시황이 황음무도했다고 비난하지만 사실 그는 평생 황후(皇后)를 세우지 않고 남녀평등을 제창해 여성의 권익을 보호했다. 또 어떤 사람은 그가 전횡을 일삼았다고 말하지만 그는 통치 시기에 단 한 명의 충신도 죽인 적이 없다. 그가 백성을 희생시켜 묘를 건설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전 왕 대부분이 산 사람을 순장시킨 것과 달리 진시황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대신 병마도용(陶傭)을 만들어 묻었다. 또 어떤 사람은 병마용(兵馬傭)은 모래사장에서 전사한 수천만의 진나라 사람들을 위한 충혼을 기리는 장소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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