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한국은 중공공산당(중공)의 초한전(超限戰·무제한 전쟁)으로 전방위적인 혼란과 위기 국면에 처해 있다. 국가 안보가 위태롭고 치안과 민생도 날로 불안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해결할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이후 국내에서는 중공의 침투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고조되고 있지만 이미 정치. 경제, 안보 등 각 분야에 침투한 적화야욕의 기승이 심각한 상황이다.
중공의 초한전은 대만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다음은 ‘정당(政黨)’이라는 형태로 정치계에 침투, 대만의 각 분야에서 안보를 위협하며 친중 노선을 확산하는 중화통일촉진당(統促黨)에 관한 내용이다.
대만 중화통일촉진당(이하 통촉당)은 중공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대만 내에 스파이망을 구축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미·친중 성향의 ‘인지전(認知戰)’ 선전을 벌여왔으며, 반공 인사들을 위협·협박하고 심지어 불법 총기를 비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9월 29일(현지시간) 이 같이 전하면서 “(통촉당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군소 정당이지만, 중공의 대만 침투를 위한 폭력조직형 도구로 전락했고, 유사시에는 사회 내부에서 적을 돕는 세력인 이른바 ‘제5열(Fifth Column)’로 변해 내부 교란 세력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안러(張安樂) 통촉당 주석은 한때 범죄조직 ‘죽련방(竹聯幫)’의 두목 ‘백랑(白狼)’으로 불리며 암흑가를 누볐다. 이에 대해 마스위안 대만 내정부 정무차장은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 단체는 사실상 하나의 폭력조직과 다르지 않다”며 “통촉당 간부 다수가 과거 죽련방 출신이며 마약 밀수나 온라인 사기 등 범죄에 연루된 이력이 있다”고 밝혔다.
장안러 본인도 “당 내에 실제로 폭력조직 출신 인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죽련방 활동에서는 이미 손을 뗐지만, 그곳과는 평생의 인연”이라며 자신의 범죄조직 경력을 숨기지 않았다.
■ 통촉당의 범죄조직 배경
'에포크타임스‘에 따르면 장안러는 2004년 중국에서 통촉당을 창당했으며, 2013년 대만으로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이 조직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대만 정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 통촉당의 당원은 약 3만 명에 달한다.
장안러는 ‘백랑(白狼)’이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젊은 시절 죽련방에 가입했다. 미국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한때 이 조직의 지도부 일원으로 활동했는데, 그가 살아온 길은 중국과 대만 현대사의 격동과 맞닿아 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퇴해 대만으로 철수할 때, 장안러는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대만으로 이주했다. 16세에 그는 갓 창립된 죽련방에 들어갔고, 이후 미국으로 유학해 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죽련방 미국 지부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나 그는 마약 밀수 혐의로 미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약 10년간 복역했다. 출소 후 대만으로 돌아왔으나, 정부의 범죄조직 단속 과정에서 다시 수배 대상이 됐다.
1996년 장안러는 중국으로 도피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는 도략(韜略)이라는 스포츠용품 회사를 설립하고 오토바이 헬멧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회사는 중국 공산당 당국의 특별한 지원을 받아 급성장했으며, 둥관시 정부의 세제 혜택을 통해 세계 헬멧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주요 공급업체로 자리 잡았다.
WP는 이 회사의 전 간부 버네사 차오의 증언을 인용 “회사에서 수출이나 생산 규정 문제로 지방정부와 협의가 필요할 때마다, 장안러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했다. (계속) / 에포크타임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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