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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톈안먼 시위 진압 항명 사령관 재판... 36년 만에 공개

디지털뉴스팀  |  202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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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36년 전 중국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 강제 진압 명령을 거부해 옥고를 치른 쉬친셴(徐勤先) 전 인민해방군 38군 사령관의 재판 영상이 공개됐다.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 민주화를 요구하며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연좌시위를 벌이던 학생, 노동자,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군을 동원, 유혈 진압한 사건이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쉬 전 사령관이 톈안먼 사태 이듬해인 1990년 중국에서 진행된 비공개 재판에서 무장 병력 투입을 통한 무력 진압 명령을 거부한 이유 등을 밝힌 6시간 분량의 영상이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등을 통해 최근 공개됐다.

영상은 1990년 3월 17일 촬영된 것이다. 쉬 전 사령관은 군인 3명에 둘러싸여 사복 차림으로 법정에 섰다. 내부에는 단상 위 판사 3명이 있고 방청객은 없었다.

쉬 전 사령관은 재판에서 무력 진압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이유를 짧고 단호하게 밝혔다. 명령 불복종 사유를 추궁하는 재판장의 심문에 “개인적으로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단지 참가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인 문제냐’는 추궁에는 “그렇다”며 “당시 개인적으로 이는 참가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누구든 이 일(무력 진압)을 잘 수행하는 사람은 영웅이 될 수 있고, 이 일을 잘못 수행하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주변에) 말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1989년 인민해방군 38군 사령관으로 재직할 당시 계엄령에 따라 1만5천 명의 무장 병력을 베이징의 시위 현장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받았던 쉬 전 사령관은 "이에 대해 나는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쉬 전 사령관은 재판에서 선처를 구걸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담담했다. 그는 (해당) “시위는 정치적 수단을 통해 해결되어야 하며, 무력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도 피력했다.

당시 쉬 전 사령관의 불복종은 어떤 과정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상세한 내용이 불분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재판 영상을 두고 NYT는 “그가 비밀리에 회부됐던 군사재판 영상이 유출되면서, 덩샤오핑이 베이징에 군을 투입하려 준비하던 과정에서 군 내부에 존재했던 긴장과 갈등이 이례적으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 ‘양심“을 택한 용기

영상을 유튜브에 공유한 중국 출신 대만 독립 역사학자 우런화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지난 30년간 6·4(톈안먼 사태)에 대해 수집한 자료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서, “쉬 전 사령관의 항명은 톈안먼 사태에서 결정적 사건이었지만, 이 영상이 나오기 전까지 많은 세부가 불분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영상을 신뢰할 만한 출처로부터 받았지만, 출처의 신원은 밝히지 않겠다. 영상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세부 사항 등을 면밀히 검증했다”고도 말했다. 우씨는 1989년 베이징의 젊은 학도로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

중국에선 톈안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한 콘텐츠는 철저히 검열된다. 이 영상이 어떤 경로로 확산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되지는 않았으나, 영상이 올라온 한 유튜브 채널은 조회 수가 현재 125만회에 달한다. 

해당 영상에는 “한때 38군에서 복무했던 노병으로서, 쉬 전 사령관이 매우 자랑스럽다” “역사와 인민은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 등 쉬 전 사령관의 양심적인 용기를 지지하는 하는 많은 댓글이 달리고 있다.   

톈안먼 시위와 유혈진압에 대한 책을 쓴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 제러미 브라운 교수는 이번 영상에 대해 "쉬 전 사령관이 그의 양심을 따랐음을 읽을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톈안먼 사태는 1989년 6월 4일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며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를 벌인 대학생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군을 동원해 무력 진압한 사건이다.

당시 최고 실권자인 덩샤오핑은 강경파였던 양상쿤 중앙군사위 부주석에게 시위대 진압을 구두로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양상쿤은 실탄 사격과 탱크, 장갑차 등을 동원해 비무장한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

쉬 전 사령관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 당시 무력 진압 명령을 거부해 5년간 투옥당했고, 출소 이후에도 여생을 가택연금과 당국의 감시 속에서 살았다. 그는 2021년 1월 8일 허베이성 스자좡의 한 군 병원에서 85세로 숨졌다. 당시 스자좡 지역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면 봉쇄됐던 탓에 세 자녀 외에는 장례식장 방문이 금지됐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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