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달러면 부시 대통령 면담도 성사”
[문화일보 2006.01.07 12:30:31]
(::‘아브라모프 스캔들’로 본 워싱턴 로비정치::)
“만약 100만달러를 준다면 김정일 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면담도 성사시켜 줄 수 있다.”
미 공화당행정부의 고위직 출신 한 인사가 얼마전 서울 방문길에
기자에게 던진 말이다. 물론 농담임을 전제로 했지만 그의 말
속에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묻
어났다. 그는 역대 행정부에서 여러 요직을 거친 뒤 지금은 워싱
턴에서 로비회사의 공동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서울 방문
길에는 한국 기업과 여러 잠재 고객들의 상담이 이어졌다. 모두
워싱턴의 정계·관계 요로에 연줄을 놓거나 사업상의 기회를 포
착하기 위한 것일 터였다.
◈자신만만한 로비스트들=그는 로비란 무엇인지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 진정한 로비스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국익을 확대할
것이라고 믿는다. 워싱턴의 의사당과 연방정부에는 기업이나 특
정 지역민 혹은 이해집단이 낸 수천 수만건의 입법안이나 청원이
몰려 있지만 의원들과 정책결정권자들의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는 진정 중요한 사안이 있을 수 있고
정보 부족이나 편견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도 있다. 로비스
트들은 바로 ‘국익’을 위해서 꼭 주목받아야 하는 일들을 당사
자들을 대신해서 해주는 것이다”.
이는 로비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로비중에는 의회와 정
부가 아니라 일반의 여론을 바꾸기 위한 것도 있다. 이를 외부(o
utside) 로비, 혹은 대중(grassroots) 로비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상적인 로비는 일부 이익집단이 자기 목적 관철을 위하여 의사
당밖에서 과격한 집단행동을 하는 일 같은 후진적 관행도 바꿀
수 있다. 또 기업인이 직접 정치인이나 공직자를 상대로 뇌물을
바치는 범죄행위도 막을 수 있다.
지금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슈퍼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 사건으
로 정계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 톰 딜레이 전공화당 원내 대표
는 역설적이게도 지난 1995년 연설에서 현재 미국 정계의 로비실
태에 대해 적나라하게 꼬집은 적이 있다. 미 민주당이 지난 2일
딜레이의 당시 연설문을 찾아냈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이제 미
국 시민들은 자신의 대표가 워싱턴에서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
아야 할 때가 왔다. 그들(의원들)은 국록을 먹으면서 로비스트들
이 제공하는 공짜 휴가를 즐기고, 특정 이해집단들이 제공하는
향응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원에서 로비스트로=지금 미국 정계에 해일처럼 밀려들고 있
는 로비 스캔들은 이미 예고된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워싱턴의
정·관계 출신인사들이 공직을 떠난 뒤 곧바로 로비스트로 변신
하는 ‘회전문 현상’이 팽배해있고, 그런 고리를 통해 특정 기
업과 이해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수많은 돈이 몰려 있기 때문
이다. 또한 조지 W 부시 대통령마저 이번 스캔들과 관련된 곳으로
부터 10만달러를 받았던 사실이 드러날 만큼 선거자금은 로비스
트와 정치권을 잇는 가장 취약한 고리다.
미국의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에 따르면 지난 98년부터 2004년까
지 전직 의원들이 로비스트로 등록한 비율은 모두 51.8%였다.(표
참조) 전직 의원중 절반이상이 로비스트로 활동하는 셈이다. 로
비 스캔들로 지금 미국 정계를 떨게 만들고 있는 아브라모프의
경우 공화당 정권에서 가장 잘나가는 로비스트였다. “마음만 먹
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부시의 최측근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 공화당 실세인 딜레이와 가까운 사
이다. 그는 존 애슈크로프트 전 법무장관이 현직에 있을 때 수차
례 만났고, 딕 체니 부통령 측근과도 자주 어울렸다.
유대인인 그는 매사추세츠주 브랜다이스 대학에 다닐 때인 1980
년 대선이 실시되자 로널드 레이건 당시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는
조직을 결성했다. 이듬해엔 전국 공화당 대학생회 회장에 선출
되면서 공화당과의 인연을 깊게 맺기 시작했다. 94년 공화당이 4
0년 만에 처음으로 하원에서 다수당 지위를 차지하자 워싱턴에서
법률회사에 취업했고, 로비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사건에 함께
연루된 그로버 노르퀴스트, 랄프 리드 모두 대학생때부터 공화당
선거캠프에서 일하며 정치적 야심을 키웠고 로비스트로서의 인
맥을 다져왔었다.
◈K스트리트=이같은 로비스트들이 대거 모여 있는 곳이 백악관
북쪽으로 세 블록 위로 워싱턴시내를 가로지르는 K스트리트다.
싱크탱크, 로비업체, 변호사 사무실 등이 집중돼 있는 K스트리트
는 워싱턴 로비산업의 대명사이며 ‘제4의 권부(權府)’라고도
불린다.
K스트리트의 로비회사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민주 양당의 전직
정치인들을 고용, 정부와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특히 지
난 94년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자 공화당측은 K스트리트를 아예
공화당 판으로 바꾸겠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었다. 로비업계와
정계를 후원자 관계로 엮어 밀착시켜 영향력을 극대화한다는 계
획이었다. 이 계획은 이번 아브라모프 스캔들의 주요 등장인물인
공화당 전략가 노르퀴스트와 딜레이에 의해 추진됐다. 2003년에
는 미 영화 드라마 전문유료채널인 HBO가 ‘워싱턴 정계의 안팎
’을 다룬 같은 이름의 정치 드라마를 방영하기도 했다.
최형두·구정은 기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