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아라비아 상인들이 신라를 3부분으로으로 표시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반도에 있던 신라와 ,대륙에 있던 신라, 만주에 있던 신라를
나타내려 한 것 같습니다 만약 한반도가 공백이었다면 아마도 한반도 전체는 동신라 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삼국시대 한반도는 어떠한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삼국시대 전쟁은 모두 대륙에서 일어 났습니다
고구려는 대륙신라에게 패했습니다 . 대륙에 있던 신라를 서신라, 한반도에 있던 신라를
동신라라고 한 것 같습니다 한반도라는 좁은 영토에 두나라가 있어도 시원치 않을판에
3나라가 있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지금 경주에 있는 박혁거세의 무덤이나 묘는 아마도 서신라에서 동신라로 묘를 이장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짜 박혁거세의 무덤은 강소성에 있습니다
東夷(우리)민족 기록에 반도에서 8세기 이전에는 삼국 형성의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古朝鮮 말기에 弁韓, 馬韓, 辰韓이 있었다고 하고 있으며 高句麗, 百濟, 新羅의 삼국을 형성하였다고 하고 있으나 정사에서 어느 곳에도 그러한 기록이 없다.
이제부터 반도에 왜 삼국형성이 없었는가를 밝혀보자.
百濟의 반도 진출은 반도新羅의 독립에 촉진제였다고 볼 수 있다.
武康王의 百濟가 반도에 진출하여 통치를 하였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언제부터 百濟가 진출했을까?
高麗大王相王과 辛酉年과 古牟婁城 의 기록이 있는데 高麗大王相王이니 바로 干에서 王이 되기 이전의 기록을 밝히는 것이고
辛酉年은 421년(장수왕9년)전후 60년 주기로 나타내는 것으로 어느때인지 정확하게는 알수 없다.
고모루성은 396년 광개토대왕이 遼의 동쪽(遼東)에 있는 百濟를 평정하였을때 편입된 58城중의 하나인데 421년에 高麗大王을 동행하여 반도를 순행하였을때 같이 왔던 古牟婁城守事가 遼東에 돌아가서 百濟王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百濟가 사로新羅를 포함하여 광복운동을 벌였고(455, 475, 484, 494, 495, 548) 蓋鹵王(위로왕) 이후 반도에 진출하였고 그것이 반도 지역의 마립한을 독립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라 풀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