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열도에서 쳐들어 오지 않았다. 조선도 반도에 있던 나라가 아니었다
일본의 지리 의문점, 에도는 일본도쿄가 아니라 중국 난징이다
-- 조선의 남동부의 중심은 부산(Fusan)이었으며, 이는 상해나 항주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종윤 저"한국인에게 역사는 있는가"참조). 이는 조선에서 한반도로 건너간 많은 인사들의 통로가 칭다오(靑島)나 웨이하이(威海), 톈진(天津)이 아니라 외항 상하이(上海)였던 점을 보더라도 타당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서북쪽에 위치한 남경 지역은 일본의 에도바쿠후(江戶幕府), 시모노세키(下關)가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에도(江戶)에서 조선의 수도인 장안(경복궁)으로 갈 시에는 대마도(=숭명도)나 부산을 경유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되는 경로상의 오류 하나를 안고 있습니다. 게다가 조선의 영내이던, 강진(지금의 남경 남쪽), 상해와 조선 본토 사이에 일본의 수도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니 이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이에 대한 의문을 후자의 의문부터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일본이라는 국가의 체제에 대한 의문
-- 가마쿠라(겸창, 鎌倉), 무로마치(실정, 室町), 도쿠가와(덕천, 德川) 등 모든 바쿠후(쇼군) 체제는 철저히 조선의 지배권 안에 들어있고, 조선황제의 지방관 또는 그 제후국으로서 존재한 정권입니다. 쇼군은 곧 장군이며, 이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의 축약어입니다. 고려, 조선의 황제들은 왜구의 도적행위를 막기 위해,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을 임명하여 도적들을 제거토록 하였습니다. 즉, 왜이(倭夷)들을 정벌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 이를테면, 일본사에서는 "도쿠가와가 스스로 정이대장군의 자리에 올라 이시다 미쓰나리 일파와 세키가하라 전쟁을 벌여 승리했고, 이 승리를 토대로 도쿠가와 바쿠후를 창건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일본천황이 아닌 조선의 황제가 정이대장군으로 임명하여 임진왜란의 주범들을 척결토록 한 임진왜란의 후속 전쟁이었습니다. 또한 일본사의 덴노(天皇)는 거의 실권이 없는 것처럼 나오지만, 이 덴노가 조선의 황제를 일본사에 맞게 각색한 것이기에 이는 곧 조선의 황제가 바쿠후에게 왜를 다스릴 권한을 위임해주었던 것으로서 왜에 대한 모든 통치행위가 바쿠후를 경유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 이러한 바쿠후 체제가 무너지거나 유명무실해졌을 때 왜구가 기승을 부리고, 전쟁이 났습니다. 특히 왜의 전국시대(戰國時代)는 무로마치 바쿠후가 왜에 대한 통제권을 거의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으며 이 기간 100여년간 곳곳의 토후들과 거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이권을 두고 다툼으로서 벌어진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조직폭력의 패싸움을 연상시킬 정도였습니다.
- 100여년간 유명무실하게 남아있던 무로마치 바쿠후(室町幕府)는 조선황제의 뜻이 아닌 오다 노부나가가 이끄는 일개 왜구(倭寇)집단에 불법적으로 폐지되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 그러나 오다 노부나가는 호고지에서 죽임을 당하고, 그의 수하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다의 원수를 갚고 왜(류구 제외)를 통일하여 태정대신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조선황제의 번방이되, 각종 불법무역과 약탈이 기승을 부리는 복건 지방일대를 군사적인 측면을 강화하여 다스리게 한 것이 바쿠후 체제라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전국시대를 조선황제의 뜻과 무관하게 멋대로 통일한 도요토미(豊臣)는 스스로를 태정대신으로 칭하기는 했지만 한번도 바쿠후를 창설한 적은 없음과 맞아떨어집니다. 다만 조선조정에서 도요토미를 일본왕으로 봉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가 있었습니다.
-- 지금의 일본은 도쿠가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던 사쓰마(薩摩), 조슈(長州), 도사(土佐), 히젠(肥前)의 네 토후(土侯)가 중동의 아랍토후국연합(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두바이 등의 7개 아랍계 토후, 추장국이 연합한 국가. 과거 아라비아해의 해적집단으로 유명했음.)처럼 소국끼리 연합한 국가입니다. 이들은 사쓰에이(薩英)전쟁(사쓰마, 영국간의 전쟁) 및 조슈의 4개국(영, 미, 프, 네)과의 전쟁 등으로 길들여져 영국과 미국의 권고(실상은 조종)에 따라 합종연횡(1866년 도사의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로 사쓰마-조슈 비밀동맹이 맺어짐.)한 것이며, 에도 바쿠후를 조선황제의 허락없이 멸망시킨 후 조선황제가 도쿠가와씨(德川氏)에게 하사했던 일본이라는 칭호를 임의로 참칭하여 스스로 "일본제국(日本帝國)"을 칭하였습니다.
- 다시 말하자면 메이지유신 이후 사쓰마 등 네 개의 토후(유항=왜구)집단들은 조선황제의 허가 없이 일본이라는 국호를 참칭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대로 따지자면 나라의 성명권 및 국호의 저작권 침해입니다. ) 따라서 이들은 가짜 일본입니다. 지금 현재의 일본도 이 가짜 일본의 맥을 잇고 있는 (일본을 참칭한) 삿쵸도비 토후국 연합의 맥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들을 모아 이제부터 삿쵸도비 토후국연합(1868~현재)이라고 불러야 하겠습니다.
- [용어 정리]
一. "삿쵸도비 토후국 연합"이라 함은 메이지유신 이후 현재의 "일본(Japan)"까지를 포괄한다.
二. "왜"라 함은 조선 동, 동남쪽(현재의 복건방언을 사용하는 지역 전지역)과 그에 거주하던 여러 부족과 종족을 총칭하는 말이다.
三. "일본열도"라 함은 현재의 日本國(삿쵸도비 토후국 연합) 영토를 이야기한다.
四. 왜구(倭寇)는 이 왜의 종족에 몸담은 자로서 도적이 되거나 밀무역을 하는 불법 범죄집단을 구성한 자들과 그 집단의 총칭이다.
五. 류구는 왜라는 종족 내에서 가장 체계가 잡힌 조선의 제후국으로서 앵무새, 소목, 열대과일 등을 조공한, 일본과는 서로 독립(independant)된 형태의 제후국이다.
六. 마지막으로 일본은 신라황제가 왜의 왕에게 하사한 칭호가 기원이며, 고려황제가 가마쿠라 바쿠후를 설치한 이후에는 군대조직중심의 정부를 구성하고 그 제후에게 일본왕 겸 정이대장군의 칭호를 내주어 왜 지방에 파견하여 왜의 발흥을 억제하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바쿠후 체제의 일본이다.
- 다시 말하여, 근현대, 메이지유신이후의 일본제국 체제(삿쵸도비 토후국연합)는 사쓰마, 조슈, 도사, 히젠의 4개 왜구의 집단이 에도바쿠후 성립 후 도쿠가와의 지배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었거나, 에도바쿠후의 지배하에 잠복해 있다가 에도바쿠후의 세력약화 및 영미의 기술적, 경제적 뒷받침을 이용하여 에도바쿠후를 침략전쟁(또는 내란)으로 전복한(뒤집은) 후 생겨난 결과물일 뿐입니다.
-- 일본 바쿠후의 정체성(조선황제의 하부 기관 겸 제후국)에 의거하여 도쿠가와의 수도인 에도가 조선땅 동쪽의 중심 중 하나인 지금의 남경(난징)이라 하더라도 이는 타당합니다. 남경을 군사중심지로 하면, 그 동쪽 및 동남쪽 바닷가와 그로부터 연결되는 내륙수로를 모조리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바, 왜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좋은 지리적 결정이 됩니다.
- 또한 확실치는 않으나 바쿠후의 쇼군(정이대장군)의 복장은 우키요에(일본식 화풍과 그림)에 그려진 모습이 아닌, 조선 관료의 전형적인 복장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바쿠후는 결국 조선의 하부조직이고, 바쿠후의 수장인 정이대장군은 조선황제의 녹봉을 받는 신하이기 때문입니다.
* 텅날개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10-18 0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