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망 전야의 월남, 다시 보기
통일베트남 혁명정부 법무장관이었던 쫑뉴탄은 공산 월맹에 충성한 1등 공신이었지만 숙청의 칼이 그를 향하자 구사일생 파리로 도망나왔습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캄보디아 국경에는 수많은 땅굴이 있었고, 그 땅굴 속에는 혁명정부 청사까지 들어서 있었습니다.
월남정부의 각 부처, 월남군 총사령부에서 이루어지는 극비 내용이 단 하루 만에 월맹에 보고 됐습니다. 티우가 공산 프락치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비서실에도 첩자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모범적인성장(도지사)으로 평판이 자자했던 홤녹따오를 위시하여 많은 정치인·관료들이 간첩이었습니다. 이는 망한 다음에야 드러난 사실들입니다. 정보기관에 가장 많은 간첩이 들어 차 있었습니다.
좌익이 시민·종교단체를 장악했습니다. 천주교의 짠후탄 신부, 불교계의 뚝드리꽝 스님 등이 "구국 평화 회복 및 반부패 운동 세력"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활동했습니다. 이 산하에 사이공대학 총학생회, 시민단체들이 시민연대를 구성하여 반부패 운동에 나섰습니다.
이 순수한 반부패 운동에 공산당 프락치들이 대거 침투하여, 거대한 반정부·반체제 세력으로 변질시켰습니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미군과 한국군이 철수하자, 사이공에는 70여 개의 애국단체, 통일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월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습니다.
목사, 승려, 학생 그리고 좌익인사들이 한데 섞여 반전운동, 인도주의운동, 문화운동 등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운동단체들을 총동원하여 티우 정권 타도를 외치고 반정부 시위를 벌였습니다. 월남은 군사력으로 망한 게 아니라 이들 좌익 단체의 선전-선동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입니다.
1975년 9월에 월남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대선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과 분열, 반목, 대립, 갈등을 유감없이 연출했습니다. 고질적인 사회악이었던 뇌물과 마약, 매춘과 도박이 정치 혼란과 어우러졌습니다. 국민의 사기가 떨어지고 계층 간 갈등이 증폭됐습니다. 좌익들의 활동공간이 점점 더 넓어진 것입니다.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익 인사, 언론인들이 다음날이면 시체로 발견되고 그들의 친척들이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지식인과 중산층, 언론이 침묵했습니다. 티우 대통령까지도 58만이라는 막강한 군사력에 도취돼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1975년 1월 8일, 드디어 월맹군 18개 사단 총병력을 월남 공격에 투입됐습니다. 3월 26일 다낭이 함락됐고, 월맹군 18개 사단이 사이공을 향해 무인지경으로 달렸습니다.
부패했던 군인들이 앞을 다투며 가족을 데리고 배와 비행기로 탈출했습니다. 남침 후 한 달이 지났지만 미국은 방위공약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4월 30일 정오, 월맹 탱크부대가 독립궁을 점령했습니다. 5명의 월남 장군들이 자결하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미국은 자동개입 방위조약을 체결해 놓고도 손을 떼었습니다. “스스로 애국하지 않는 국민"을 위해 미국이 더 이상 피를 흘려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미국이 버리자 세계 4강을 자라하던 월남군은 팬티도 없고, 타이어를 잘라 끈으로 엮어 만든 신발을 신고, 하루에 소금밥 2끼만 먹던 월맹군에 패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티우 대통령은 강력한 반공주의자였습니다. 그런데도 먹힌 것입니다.
하층의 월남 국민들은 소형 선박을 이용해 목숨 건 탈출에 나섰습니다. 보트 피플의 숫자는 약 106만 명. 이 중 바다에 빠져 죽거나 해적에게 살해당한 숫자가 11만 명이었고, 살아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이 95만 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사이공 함락 후, 월남의 군인·경찰은 수용소에 연행됐습니다. 공무원,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들은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됐습니다. 월남군 부대시설을 개조한 것입니다. 한번 가면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반정부·반체제 운동을 벌이던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인사들은 예외 없이 모조리 처형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아주 빼닮았습니다. 월남과 우리가 다른 것은 딱 한가지입니다. 티우는 반공주의자였지만 노무현은 적화통일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지 않는 나라를 왜 미국이 사랑해야 하는가?
이번 2월3일, 라포트 한미연합사령관이 침묵하는 한국인들을 향하여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라고 경고했습니다.
"한미동맹이 시험대에 올라있다. 한미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처분만 기다리지 말고 미국에게 애국자들이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라"
는 경고인 것입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지 않는 나라를 왜 미국이 사랑해야 하는가?”
“당신들의 나라를 지켜 달라 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는데 미국이 왜 이런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리고 병사들을 고생시키고 물자를 써야 하는가?”
라포트의 말은 이런 말이었습니다.
도대체 한국 사람들은 어떤 지경을 당하려고 이렇게 침묵만 하고 있는가요?
소위 기득권 세력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숫자는 부의 분포 상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이들이 모두 들고 일어서도 소리가 작을 것입니다. 그래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국민을 계몽하고 국민의 힘을 결집하는 데 나서야 할 지도층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왜?
나라가 공산화되면 이들이 가장 먼저 당하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은 물론 목숨까지 가장 먼저 빼앗길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북한 공산당의 눈에도 악질 세력이지만, 이미 노무현 세력으로부터도 적대 세력으로 탄압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깨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철저한 무임승차자들인 것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사회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는 서양인들은 국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명을 내걸고 나섭니다. 자기도 나서도 자식들도 바칩니다.
한국전에서!
미 제24사단 "딘" 사단장이 포로가 됐습니다.
밴프리트 장군이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클라크 UN사령관도 아들을 바쳤습니다.
워커 중장이 자식과 함께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득권들은 어떻습니까?
순수하고 살기 어려운 서민들의 희생 뒤에 숨어서 생존했고, 그 희생을 이용하여 기득권을 누려 온 측면이 있습니다.
입을 열어야 할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을 열면 가족들이 피해를 보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사회적 위치가 있던 사람들일수록 좌익세력이 다달이 보내주는 수백만 원 씩의 돈을 받고 있습니다. 그 돈이 아쉬워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골프를 치느라고 바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가 어떻게 돌라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침묵하고 골방 술자리에서는 애국자연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애국이 자기 분장용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라포트 사령관의 경고가 제대로 먹혀들 리 없습니다.
소리를 낼 수 없으면 국민의함성 사무실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계몽전단지라도 가져다가 돌려라도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기업에서 고급 경영진에 있었고, 그래서 상당한 부도 얻었고, 사회적 지인들도 많이 가진 어느 옛 사람을 만나 계몽지를 주었습니다.
“강정구와 노무현은 빨갱이”
“노무현 정권이 적화통일 세력”
이런 문구가 있는 계몽지를 본 그는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서 이런 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어유, 무서운 이 전단지를 누가 보겠습니까?”
낯설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대부분의 소위 기득권 세력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득권을 누리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귀한 회원님들은 제외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