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의 허구
포석정.. 신라 경애왕이 술자리를 벌이면서 놀다가 백제 견훤에게 살해된 곳.. 저도 수학여행을 경주에 가보아서 포석정이라는 곳을 보았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더군요..여기가 포석정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들고, 단지 산에 가면 흔한 도랑으로만 보이는곳....
하지만, 포석정에 감추어진 역사를 따지고 보면, 이곳이 과연 신라의 수도에 있었던 포석정이 정말로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신라는 지금의 경상도에 있던 나라가 아닙니다.
견훤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던 경애왕이 대신들과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던 시기는 기록대로라면 음력으로 11월이라 양력으로 치면 12월 하순에서 1월에 해당하는 시기로 평균 기온이 영하를 오르내리는 시기입니다..물론, 술먹고 놀다보면 추운 줄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시는분도 계시겠지만, 소위 황제라는 사람이 추운 곳에서 술먹고 놀기에는 너무 춥습니다. 굳이 추운데,밖에 나와서 연회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당시가 춥지 않은 기후라면 야외연회를 열 수가 있습니다. 끊임없이 주장하는 대륙에 있었던 신라는 강소성(江蘇省)으로 이곳은 아열대성 기후라서 음력 11월은 우리의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로 놀기에 가장 좋을 때입니다. 이곳은 천문학적인 증거나, 문헌적 증거모두에서 증명되는 사실입니다.
또한, 지금의 역사대로라면 견훤이 음력 9월에 경북 영천지방을 점령하고 11월에 경주에 침입하였다고 합니다. 물론, 기습이라 신라는 대비가 없었습니다. 기습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신라왕이 무능하였다고 하더라도, 연회나 열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북 영천에서 경주까지 걸어도 또한 3~4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후백제의 견훤이 기병이 주축인 그의 군대를 이끌고 2개월이나 걸려서 지금의 경주를 공격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병으로 하는 기습입니까?
보병으로 기습해도 1주일안으로 끝나는 것을 기병으로 2개월을 가서 기습하다니.. 이틀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물론 몰래 가다보니 2개월 걸린다고 억지로 주장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다면 2개월동안 보급은 어떻게 하였을까요. 일일이 쌀을 지고 나르지 않았다면, 분명 기습부대는 잠입을 하겠지만, 2개월동안 탄로가 나고 말 것이고, 또한 현지 조달을 하여도 금새 소문이 퍼져서 견훤이 오히려 당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신라의 황도를 기습하려도 수비군을 제압할 수 있는 정도의 많은 군대가 필요하므로, 2개월간 몰래 잠입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전쟁은 언제나 전투와 보급이 유기적으로 이루워져야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이러한 논리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라는 견훤이 왕건과 일전을 벌인 곳으로부터 상당한 거리가 있던 곳으로 반도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국사기에 나와있는 내용인데 반도에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되자 일반인에게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 내용일뿐입니다.
얼마전 (2001년도)에 포석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경주의 포석정이 역사적인 포석정임을 증명하는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뉴스시간과 신문에 크게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근거는 포석정근처 우물에서 "포"자를 적은 기와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나마 한자가 다릅니다. 더군다나 "포석"이라고 쓰여진 것도 아니고 단순히 "포(鮑)"자 한자(쥐포나 오징어포에나 쓰는)가 그나마 깨진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더군다나, 돌 석(石)자는 발견도 안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고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무엇을 근거로 그곳이 "포석정"이라고 했다는 것입니까? 단순히 경주에서 발견된 물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에?... 적어도 기와장 한 개 발견도 없이 단순히 포석정이라 했다는 것이 아닙니까? 역사에 기록된 포석정의 "포"자와는 다른 쥐포, 오징어포할 때 쓰는 "포"자가 발견되었다고 그곳이 경애왕이 죽은 포석정이라니... 차라리 그곳은 어물전이었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빈약한 근거로 우리의 역사를 구성하다니..
그런데, 그 동안 수 많은 고고학적 발굴을 거듭해도 발견이 안 되었던 기와장이 문득 갑자기 발견되다니...그것도 단 한 개가... 유사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얼마전 일본에서는 역사왜곡이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학자는 고고학적 자료를 잘 발견하기로 유명하였는데, 수 많은 사람이 발견 못 한 자료를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씩,, 그런데, 그것은 그 자가 몰래 파묻어 놓고 조작한 자료였다는 것이 발견되어 파문이 일었습니다. 일본 신석기 유물 조작사건입니다. 어째,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기야. 우리의 학자들은 그와 같은 일본학자에게서 배운 사람들이 많으니, 하는 방법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나 봅니다. 이것이 고고학입니까?
포석정이 반도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이번, 기와장 발견이나.역사적인 사건을 모두 반도에서 해석하고자 하는 것 . 이것 모두가 반도에 심어진 후삼국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역사를 가르치면서 반박을 하면 지나친 민족주의의 발로라면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한, 우리의 역사는 없습니다. 정말로 틀린 것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