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倭)와 일본(日本)은 어디에 있었나?
모든 역사서는 왜와 일본이 대륙의 남쪽 복건성 동야(東冶)의 동쪽에 있었다고 쓰고 있으며, 6c경 백제로부터 문자를 배우고 불교도 배웠다고 쓰고 있다. 또한 6c말 고구려왕이 국서(國書)를 보냈는데도 왜의 사관이나 대신들이 읽지 못했다고 한 것을 감안하면 왜가 삼국보다 일찍 통일되고 外國을 정벌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은 전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후한서(後漢書)>에 기록된 왜국(倭國)
왜(倭)나 일본(日本)이 지금의 열도에서 bc660년 경부터 있지 않았다는 역사기록은 일본서기에도 있으나 객관적인 비교, 분석을 위해 대륙의 정사(正史)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더 잘 알 수가 있다.
한서(漢書):반고(班固)
대체로 낙랑의 바다 가운데 왜인이 있다.100여국으로 나뉘어 있다
후한서(後漢書):범엽(范曄)
왜는 한의 동남쪽의 큰바다 가운데 있으며,산으로 이루어진 섬에 살고 있고 대체로 100여국이다.
그 대왜왕은 사마대국에 살고 있다
왜의 땅은 대략 회계 지방 동야의 동쪽에 있다.
음식을 손으로 먹으며, 사람들의 성품은 술을 좋아하고 수명이 긴 사람이 많아서 100살에 이른 사람도 매우 많다.
나라에는 여자가 많으며 , 높은 벼슬에 있는 대인은 4~5명의 처를 거느리고, 그 나머지 사람들도 2~3명의 부인을 거느렸다
건무 중원 2년(AD57년)에 왜노국에서 공물을 받들고 조공 사절로 와 스스로를 대부라고 하고 왜국의 남쪽 경계에 있다고 하였다.
광무제가 인수를 하사하였다
환제(桓帝):AD 146~167년), 영제(靈帝):AD 168~169년) 년간에 왜국에 빈란이 일어나 서로 싸우는 동안 여러해가 지나도록 왕이 없었다. 비미호(卑彌呼)라는 여자가 잇었는데, 이 여자를 모두 왕으로 세웠다.
이 여왕국으로부터 동쪽바다로 천리를 가면 구노국이 잇다. 모두다 왜와 같은 종족이다.
여왕국으로부터 남쪽으로 4천리를 가면 주유국에 이르고, 사람의 키는 3~4척이다.
주유국(侏儒國)으로부터 동남쪽으로 배를 타고 1년을 가면 나국과 흑치국에 이른다.
후한서에는 대왜국(大倭國)의 왕은 회계지방의 동야의 동쪽에 살고 있다고 하였다.
회계(會稽)지방의 동야는 지금의 대륙 남쪽 복건성(福建省) 복주시 근처인 민후현이며, 그 동쪽이면 복건성의 섬 또는 지금의 대만을 말하는 것이다. 대만과 복건성 사이에 모든 섬에 살고 있는 종족이 왜이며, 그중 대왜왕이라는 사람이 대만(사마대국)에 살고 있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이때의 일본서기의 기록을 보면 수인 천황때라고 하고 있고, 비슷한 시기에 신라에서 귀화한 천일창의 증손으로 하여금 보물 7가지를 바치다라고 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기록하기를 신라는 탈해왕이 즉위하는 때이고 ,2년후에 왜국과 친선 외교 관계를 개설한다고 하고 있다.
후한서는 분명히 왜와 대왜국은 복건성 지역과 동쪽의 섬들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 한반도에 있었다는 신라가 바닷길로 4천리도 넘는 대만과 복건성 지역인 왜에까지 친선외교 관계를 개설 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일본서기의 기록을 믿어 열도에 수인 천황시대가 있었고 한반도에 있었다고 강변하면
그 유명한 반고와 범엽이 쓴 전 후한서 라는 대륙의 정사서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말과 같다.
일본서기의 왜는 아무곳에도 조공을 바치지 않다가 ad192년에 대륙의 남쪽 월(越)나라로부터 조공을 받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ad57년에 이미 후한에 조공 방물의 사신이 왓었다고 후한서가 밝히고 있는 것을 볼 때 일본서기의 기록은 열도에 것이 아니거나 거짓 기록이란 것이 확실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삼국사기 탈해왕 원년의 기록에,
탈해왕은 왜국의 동북쪽 천 리 떨어진 다파나국 사람으로서 신라의 왕이 됐다는기록을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이 기록과 대륙의 후한서에 나타난 왜에 대한 기록만 보아도 왜는 대한해협 건너의 열도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후한서의 기록을 믿는다면 신라와 왜는 반도와 열도에 있지않은 것이 확실한데 삼국사기와 일본서기가 반도와 열도에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웃음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일본서기가 열도의 역사서라고 억지를 쓰면 동양역사의 원천들은 모두 쓸모없는 휴지조각이 되고 마는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열도가 왜가 아니라는 근거는 또 있다. 비미호의 여왕국인 왜로부터 남쪽으로 4천리를 가면
주유국이 있다고 하였으나 지금의 구주로부터 남쪽4천리에는 아무 것도 없는 망망대해이다.
일본이 억지를 써서 오끼나와가 될 수 잇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오끼나와는 유구국으로 별도로 구분하고 있다.
후한서에 왜국은 대륙의 남쪽에 있었으며 ,그 왜국왕은 후한에 조공을 바쳤고 ,신라에도 여왕 비미호가 조공을 바쳤다고 쓰여진 이상 ,신공황후로 설명된 왜국 여왕 비미호가 신라를 침공하여 전횡을 휘둘렀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은 설득력을 얻을수 없다
또한 후한서가 왜국은 후한의 제후국이었다고 하는 한 왜가 동쪽의 신국(神國)이라거나 동쪽의 황제국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서기의 미사여구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며, 만들어낸 말이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