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晋書)>에 기록된 왜(倭)
<진서(晋書)>는 7C 중반에 방현령과 이연수가 썼다고 하는 역사서이다.
왜인은 대방(帶方)의 동남쪽 큰바다 가운데 있고, 산으로 이루어진 섬에 나라가 있다. 땅에는 산과 숲이 많고 좋은 경치는 없으며, 해산물을 먹는다. 호수는 7만여호이다.
옛날 하나라 6대왕 소강(小康)의 아들이 회계에 봉지를 받은 지역이다. ~ 왜인은 물속 깊이 들어가 고기를 잡는다. ~ 그 지역은 회계의 동야(東冶)의 동쪽이다.
한말에 왜국에 반란이 일어나 서로 싸웠는데, 평정되지 않다가 여자를 왕으로 삼으니 그가 비미호다(옛날에는 남자가 왕)
그 여왕은 사신을 파견 대방(帶方)에 이르러 조공 , 알현하고 그 후로는 조공 방물을 바치는 것이 끊이지 않았다.
그 밖에 100여국의 소국(小國)으로 있다가 30여국으로 줄었다는 내용, 수명이 길다는 내용,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다는 내용은 <후한서>의 내용과 같다.
<진서(晋書)>는 4C와 5C 초까지의 서진(西晋)과 5호16국에 관한 기록이다. 여기서 왜(倭)의 위치는 대방(帶方)의 동남쪽 바다 한 가운데 있었다고 하였다. 동남쪽 바다 한 가운데가 복건성(福建省), 동야의 동쪽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 때도 왜는 복건성 재해부도와 대만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후한서>와 다른 것은 왜(倭)가 대방의 남쪽이라고 한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럼 대방(帶方)은 어디인가?
대방은 대수(帶水)라는 강이 흐르는 지역을 말한다. 대수는 지금의 귀주성(貴州省) 준의현(遵義縣)을 흐르는 강의 이름으로 있다. 따라서 지금의 대방은 구이저우성 대수 일대의 묘족 자치구 지역을 말하는 것이며, 이 때의 대방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최소한 4~5C경의 왜(倭)가 열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고 대방 지역이 지금의 귀주지방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대방을 알기 위하여 <삼국유사>를 보자.
<삼국사기>에 백제의 위덕왕(威德王)이 북제(北齊)에서 대방군공 백제왕을 제수받았고, 수(隨)나라에서도 백제왕을 대방군공으로 임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AD 570,581년)
<삼국사기>에는 대방에는 북대방(北帶方)과 남대방이 있다고 하였고, <삼국지 위지(魏志)>에는 한(韓)의 남쪽에 왜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방군공 백제왕이 한반도 남쪽 서편에 있었던 나라의 왕이 안니것이 확실해진다.
또한 논어에 아홉의 동이족(東夷族) 가운데 낙랑 ,고려, 왜인(倭人)이 있고, 9한(九韓) 중에 일본 , 중화, 오월(吳越), 여진, 예맥(穢貊)이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이들은 모두 중원과 동남방에 있었던 고대국가들과 고대인(古代人)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대방(帶方)이라는 지역도 대륙에는 여러곳이 있다. 섬서성, 산서성, 하북, 하남, 귀주, 봉천(奉天)에도 대방 지역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6C에 대방군공으로 임명된 백제왕과 왜(倭)왕이 대방에 이르러 조공 알현하였다는 진서에 기록된 6~7C의 백제와 왜는 어느 한 순간도 한반도와 열도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 때 서진(西晋)의 황도(皇都)가 장안이었고 낙랑군의 남쪽에 있었다고 기록하는 것만 보아도 백제와 왜는 지금의 섬서성 남부 지역과 하남의 남서부 지역인 한수가 흐르는 지역에 위치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역사서는 공손강이 낙랑군을 남북으로 나누어 낙랑의 남쪽에 대방군을 설치했다고 쓰고 있다.
이렇게 백제왕인 대방군공(帶方郡公)의 위치를 대륙으로 옮겨다 놓고보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도 대륙에 있었음이 증명된다.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溫祖王) 37년(AD 19) 기록에 보면,
여름 4월부터 가뭄이 들어 6월에 이르러 처음 비가 내리고 한수(寒水) 동북쪽 마을에 흉년이 들어 고구려로 도망간 자가 1,000여호나 되었으며, 패수와 대수 사이가 텅 비어 사는 사람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대수(帶水) , 한수(寒水), 패수(浿水) 라는 강들은 한반도에 있는 강들이 아닌
대륙의 중원(中原)을 흐르는 강이거나 중원지역에서 발원하는 강들이다. 고구려의 서울이 장안(長安)이고, 호경(鎬京)이라고 역사서에 있는한, 고구려는 한반도가 아닌 대륙 황하(黃何)를 중심으로 해서 동서남북에 포진하고 있었다는 나라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도 조선족의 후예들이 많이 살고 있다.
따라서 낙랑의 남쪽에 대방(帶方), 대방의 남쪽에 왜가 있었다는 기록에 나타난 대방과 왜는 , 대한해협을 사이에 둔 한국과 왜가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