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편 - 이행하지 못할 약속으로 대만 사업가들을 유인
장사는 신용을 근본으로 합니다. 소위 일낙천금(一諾千金)이라 하였으니, 손해를 볼지언정 한번 승낙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위정자가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신용이며, 군자는 농담을 하지 않으며, 한번 뱉어낸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승낙은 단순히 대만 사업가들을 유인하려는 달콤한 밀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중국 곳곳에 돈을 벌 기회가 넘쳐 난다고들 하는데, 그곳에 혹 함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중국 투자에 흥미가 있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총 12편의 《중국투자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함정》시리즈를 제작하였습니다.
속담에 타산지석으로 그 잘못을 바로잡는다 하였으니, 대만중국투자피해자협회 이사장인 가오웨이방(高爲邦)박사를 모시고 중국 투자에 어떠한 함정이 있으며, 어떻게 해야 그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제1편 《중국투자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함정》을 들으러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리링(李陵)입니다. 가오 이사장님과 제1편 주제 《이행하지 못할 약속으로 대만 사업가들을 유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투자자와 자금 유치 위해 속이고 말 바꾸기
가오웨이방- 리링씨, 중공 각급 지도자들의 주요 임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리링- 모르겠습니다. 무엇입니까?
가오웨이방-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경제 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후로, “상인모집, 외자유캇는 중국 각급 지도자들의 최대 임무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돈이 있는 지역은 번영하게 되었고, 상인을 모집하고 외자를 유치한 성과는 곧바로 2)논공행상(論功行賞)의 근거로 작용했습니다.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각종 수단들이 행해졌으니, 하지 못할 일들도 우선은 할 수 있다고 대답하고서는 사람을 속여 막상 투자를 시작할 때에는 전혀 딴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로 인해 투자한 사업이 실패하기에 이르러도 자기들은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죠.
차이가오더(蔡高德)씨는 대만, 홍콩, 동남아, 일본, 미국 등지에 사업체를 가지고 있으며, 자산 총액이 수억 달러에 이르는 90년대의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1991년 그는 대만정부와 민간이 조직한 항공 공업 시찰단을 인솔하여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이때, 미국 화교인 양사오옌(楊小燕)은 뉴욕에서, 왕스융(王石勇)은 대만에서 각각 보스톤으로 건너와 세 사람이 함께 만나 교제하면서 중국 투자에 관해 이야기 합니다.
리링- 양사오옌(楊小燕)과 왕스용(王石勇)은 누구이며, 어떻게 차이가오더(蔡高德)씨와 교제하게 되었나요?
가오웨이방- 왕스융은 쟝지에스(蔣介石) 어머니인 왕타이(王太) 부인의 친척이고 양사오옌은 왕스융의 외숙모입니다. 또한 양사오옌과 차이가오더는 당시 친한 친구였으며, 나중에 중국 투자의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양사오옌과 그의 남편은 모두 Bridge놀이의 고수였고, Bridge를 같이 한 관계로 덩샤오핑의 친구가 되기도 하여 많은 중공 고위 지도자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회합 후 오래지 않아, 차이 사장은 양사오옌과 함께 북경으로 가서 고위 간부들을 사귀고 성대한 예우를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 경제무역부 부부장(한국의 차관에 해당)이었던 리란칭(李嵐淸)은 나중에 국무원 부총리가 되어 차이 사장을 세 차례나 초대한 바 있고, 당시 차이사장과 석탄과 철강 사업에 관해 함께 일할 것을 희망하였는데, 가격에 관한 얘기는 나누지 않았습니다.
딩관건(丁關根) 서기 역시 차이사장과 양여사를 초대하여 식사하면서 여러 다른 고위 간부들을 함께 배석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리링- 딩관건(丁關根) 서기는 또 누구인가요?
가오웨이방- 딩관건은 중앙정치국 위원으로 다른 많은 직책들을 함께 겸했고 그 권력이 당연히 리란칭보다 높았습니다.
중앙정치국은 중공의 최고권력 기관으로 6.4천안문 무력 진압 사건이 바로 이 중앙정치국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당시 총서기였던 자오쯔양 역시 어찌할 수 없는 최고 권력기관이 바로 중앙정치국입니다.
딩관건의 연회에서 차오 사장은 25cc 소형 전동자전거 생산을 제안했습니다. 차오사장은 당시 이 상품이 대단한 시장 가치가 있다고 여겼지요.
리링- 맞습니다. 13억의 인구가 있으니 시장 구매력이 상당한 것이지요! 딩관건은 어떻게 생각했나요?
가오웨이방- 이 제안은 곧장 딩관건의 귀를 솔깃하게 했습니다. “맞아요! 맞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늘 온몸이 땀에 젖고, 겨울이면 특히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죠.”
차이사장은 연이어 물었습니다. “지금 하신 말씀 책임지시는 겁니까? 제가 전동자전거를 생산하는 것을 허가하시는 겁니까?” 딩위원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당연히 책임을 지지요! 여기 6명이나 되는 부장(한국의 장관급)들이 당신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한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리링- 6명의 부장이 1명의 대만 상인과 함께 밥을 먹다니, 정말 대단했네요! 그 다음은요?
가오웨이방- 차이사장은 전자기계공업부의 허광위안(何光遠) 부장을 만났습니다. 허부장은 자전거 생산 프로젝트가 바로 국가건설 【8.5계획】중의 한 항목임을 확인해 주었고, 공장을 베이징에 설립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이미 많은 생산 사업장들이 모두 상하이에 설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2년 베이징시 대외경제무역위원회는 차이사장의 베이징 취안통 기계 주식회사(北京詮通器械有限公司)의 설립을 정식으로 허가하고, 전동자전거를 생산 판매하는 대만 독자 기업을 출범시킵니다.
배기량이 25cc이하이고 공해가 적은 전동자전거는 2년간의 연구 개발을 거처 제작되었고, 국가 환경 기준을 통과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 특허권도 획득하였습니다.
1993년 한 전시회에서 당시 중공 총서기였던 장저민(江澤民)은 특별히 차이사장을 치하하며, “중국은 정말 이러한 저오염 고효율의 생산품이 필요합니다. 정말 잘 하셨습니다. 무슨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게 연락하십시오. 제가 반드시 책임지고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차이사장은 너무나 기뻤고 각급 장관들의 성원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어떠한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리링- 차이사장은 당시 최고 지도자였던 장저민의 특별 관심도 받았으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을 것 같은데요, 어쩌다가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까?
가오웨이방- 1993년 차이사장은 이미 1천만 달러를 투자하여 2천 여 평의 공장을 마련하고 크고 작은 500여 대의 설비를 배치하였습니다.
또한 십여 명의 고급 기사도 채용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고 원대한 포부를 펼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생산된 전동자전거는 운행허가증을 얻지 못하는 바람에 길에서 운행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웃기지 않습니까? 생산과 판매는 허가해 주고, 정작 그 운행을 허가하지 않다니요?
리링- 운행을 허가하지 않았다고요? 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걸 사겠습니까? 정말 황당하군요! 차이사장은 그러면 그 당시 도와 줄 것을 약속했던 그 고위 관부들을 찾아가서 해결하면 되지 않았나요?
가오웨이방- 찾아갔지요! 그러나 핸드폰이 연결되지 않거나, 회의에 있다는 둥,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장쩌민 총서기가 어려울 때 찾아오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차이사장은 3통의 편지를 써서 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함흥차사였습니다.
아무런 답신도 받지 못했지요. 베이징의 자칭린(賈慶林) 시장에게 보낸 진정서에만 약간의 응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자칭린은 현재 전국 정치협상회의 주석으로 승진했는데요. 자시장은 차이사장의 진정서에 대해 친필로 답신을 보냈습니다.
“대만부에서 차이사장님께 해명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베이징시는 전동차를 보편화하는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부록>. 바꾸어 말하면, 베이징시 대만부 사람이 해명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도대체 베이징시는 왜 전동차에 적합하지 않을 것인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베이징시와 중앙 정부는 자신들의 정책을 잘 모르고 진행시켰던 것일까요? 아니면 나중에 정책이 수정된 것일까요? 그리고 이것으로 대만 사업가가 손해를 뒤집어 쓰게 되었는데, 정부가 이를 배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모두 아무런 설명이 없었습니다.
리링- 천만 달러의 투자를 이제 와서 안 된다고 하면서 달랑 한마디로 됩니까? 국가가 배상해야 맞지 않나요? 정말 알 수가 없군요, 중국 정부 고관들은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었나요? 그래서 차이사장은 어떻게 했습니까?
가오웨이방- 모든 것이 벽에 부딪히고 말았는데, 그 사람인들 어떻게 하겠습니까? 직원들을 살리기 위해 당시 중국은 강철이 부족하다는 직원들의 얘기를 듣고, 폐강 판매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정부가 베이징에서만 판매를 허가하고 다른 지역의 판매를 불허하는 바람에, 시장이 조성되지 않았던 베이징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요. 완전 다 망해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오락사업에 투자를 하였는데, 역시 2백만 달러를 손해 보았습니다.
<부록> 결국 가슴을 치며 중국 시장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하고 모든 직원들이 퇴사했기 때문에 공장은 그의 운전사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운전사였던 가오칭화(高慶華)가 회사 인감을 보관하고 있던 홍콩인 경리를 속여서 인감을 갖고 달아나서 차이사장의 베이징 전 재산을 다 강탈해 버렸지 뭡니까? 홍콩인 경리는 자기의 실수로 회사에 심한 손해를 끼친 것을 자책하여 결국 자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리링- 비극이 따로 없군요! 다른 세계 각국에서는 능히 성공할 수 있었던 한 기업가가 중국 관료의 약속만 믿고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군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합작 체결 돈만 챙겨
가오웨이방- 이건 《이행하지 못할 약속으로 대만 사업가들을 유인》의 한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또 다른 예를 한 가지 들어보죠. 역시 차이 성(姓)을 가진 한 대만 사업가의 얘기입니다.
그는 아직 베이징에 있는 관계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1993년 그는 산둥성 린이시로 건너가 시찰 중에 루오좡 지역의 1아르 가량의 황무지를 개방하여 대만 공업 단지를 조성하고 최소 100여개의 대만 기업을 유치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차이씨은 린이시 루오좡 서기와 계약을 하고 계약금도 지불하였습니다.
그 후 차이씨는 부지를 정리하고 길을 닦고 다른 7개 대한 사업가를 끌어 들이고, 약 3천 만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러나 루오좡 서기가 갑자기 맘을 바꾸어 각종 이유로 ‘국가 토지 사용 허가증’을 발급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차이씨를 황망하게 만들었고, 다른 대만 상인들도 다시 유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96년 12월 9일에는, 1500만 달러를 투자하였던 둥야디(東亞地) 벽돌 회사 사장 부인은 집에서 피랍되어 납치법과 경찰이 대치할 때에, 인질의 안전을 돌보지 않은 공안의 실수로 부인과 세 명의 납치범들이 함께 폭사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는 이러한 납치 사건은 현지의 대만 상인들의 마음을 흉흉하게 하였고, 그곳에서 회사를 경영하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게 하였습니다. 2000년을 전후로 하여 모든 대만 상인들은 린이시에서 철수하였고, 대만 공업 단지의 몽상도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부록>
리링- 정말 비참한 일이군요. 관원들의 약속을 이렇게 진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나중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가오웨이방- 대만 사업가들의 철수 후, 모든 자산은 전부 차이씨가 맡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린이시 쉬징안(徐景顔) 부시장의 추천으로 차이씨는 중국 위엔다 그룹 회장 판젠궈(範建國)와 함께 합작계약을 체결하고 새로운 회사를 설립합니다.
차이씨는 세 회사의 공장, 건축물 및 토지를 투자합니다. 그러나 부시장이 곧장 합작서 상에 3일 이내에 모든 자산을 판젠궈 기업 명의로 바꿀 것을 요구하였고, 판젠궈는 신속하게 이들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1530만 인민폐를 날치기 하고 다시는 차이씨와 만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리링- 원래 새 회사를 설립한다는 것은 허울 뿐이고, 부시장이 추천하고 도와주겠다는 것은 거짓이었군요. 속여먹는 것만 진실이군요. 응당히 그들을 고발해야지요! 《대만동포 투자 보호법》이 있지 않나요?
가오웨이방- 차이씨는 당연히 판젠궈를 사기로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송은 3년을 끌었고, 세 번이나 변호사를 바꾸었지만, 결국 패소했습니다. 《대만동포 투자 보호법》은 무용지물이지요.
나중에 차이씨는 새로운 변호사의 건의에 따라 린이시 정부를 고발하고 행정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왜냐하면 린이시 정부가 법률을 위반하여 그의 자산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이전했기 때문이죠. 대만부 직원 및 여러 정부 관계자들도 상당한 승산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리링- 정말 승소했나요? 대만부 직원과 정부 관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나요?
가오웨이방- 제가 보기에 승률은 제로였습니다! 중국 대륙은 중앙에서 성, 시, 현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만관계 사안을 처리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약칭하여 대만부라고 부르지요. 표면적으로는 대만 상인 및 대만 동포를 도와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대만 상인과 대만 동포에 대하여 통일전선과 감독을 실행하는 기구입니다.
이길 것이라 희망을 주는 목적은 혹시나 다른 매체에 투서하여 다른 대만 상인들의 투자 심리에 영향을 끼칠 것이 두려워서입니다. 실질적으로, 대만 사업가들이 중국에서 관리를 상대로 승소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실제로 이긴다해도 법원이 집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중에 계속해서 이런 집행하지 않은 사안들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리링- 이사장님,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해 주셨는데요, 중공 관리들의 이러한 《이행하지 못할 약속으로 대만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작태에 대하여, 중국투자를 생각하고 있는 대만 사업가들에게 혹시 건의하고 싶으신 것이 있으신지요?
가오웨이방- 중공 지도자들의 약속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 그들의 말은 그저 접대용 멘트라고 여기십시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중국 공산당의 문화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고금에 군자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중공은 다릅니다.
1956년 마오쩌둥(毛澤東)이 숨어있는 적을 찾아내기 위하여 ‘백가쟁명(百家爭鳴)’, ‘백화제방(百花齊放)’운동을 펼칩니다. 역시 먼저 공산주의 및 중국공산당을 격려하며 비평을 제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다 말하고, 말은 남김없이 전부 다 이야기하라’고 합니다.
모두를 크게 감동하게 하여 중국이 결국 민주화될 것이라 여기게 만듭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마지막에 마오쩌둥은 ‘너희들은 다 속았다. 이것은 바로 “뱀을 굴에서 끌어내려는 것(引蛇出洞)”3)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각 단위 별로 반드시 5%의 우익 분자를 적발해 낼 것을 규정하였고, 그들을 끝까지 쳐부수고 타도하여 죽여 버리라 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중국 사회를 볼 때, 건강을 위협하는 가짜 분유, 불량 식품, 가짜 담배, 가짜 술, 농민을 속이는 가짜 약품, 가짜 비료, 가짜 씨앗, 정부와 대중을 속이는 가짜 증명서, 가짜 학력, 가짜 증빙서, 언급할 가치도 없는 가짜 명품들, 이들 모두가 가짜 왕국의 칭호를 얻게 한 것들이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을 증명하는 사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중공의 이러한 거짓 문화 속에서, 위 아래가 서로를 속이는 것은 오히려 필연적인 현상이며, 그러므로 이를 비웃는 노래 가락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런 것 말입니다. ‘10억 인민 중 9억은 사기꾼이고, 나머지 1억을 현재 훈련 중이다’
리링- ‘10억 인민 중 9억은 사기꾼이고, 나머지 1억은 현재 훈련 중이다’. 다행히 중국은 13억의 인민이 있습니다. 적어도 3억은 진실한 사람들이군요. 풍자가 심했나요? 이사장님 설명과 건의 감사합니다.
오늘 《중국투자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함정》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편에서도 이사장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중국 투자에 관한 사례들을 계속 분석해 주시겠습니다. 계속 함께해 주세요!
본 시리즈의 원고 및 녹음은 대만중국투자피해자협의회 출판 가오웨이방 박사 저서인 《중국투자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함정(CD부록)》에서 전재한 것입니다.
출처-http://www.epochtimes.co.kr/news/read.php?idxno=4486&rsec=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