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포럼에서 퍼온글입니다.
한국에 유학중인 조선족의 한국체험담 중 하나입니다.
조선족 지식인의 의식구조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글 같아서 퍼왔습니다.
님들의 소감을 듣고 싶군요.
연우포럼에 가보시면 조선족 지식인들의 의식구조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들이 산적해 있답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방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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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울에서 만난 美國人
김 범 송
필자는 얼마 전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국제적인 이벤트에 참가한 바 있다. 현재 서울의 모 대학 특수대학원장으로 근무 중인 절친한 韓國人 선배님의 주선으로, 본 대회 특별 ‘게스트’(guest)로 참가하게 되었다. 최근 몇 년간 선배님의 알선으로 서울에서 진행되는 국제행사에 여러 번 참가한 경험이 있고, 또 담당 역할이 항상 ‘들러리’인지라 별로 ‘대서특별’(大書特別) 할만한 소재는 없지만, 이번 행사에서 우연하게 美國人 ‘친구’, Amir(阿米爾) 박사를 사귀게 된 것은 예상외의 수확이라 하겠다.
이틀간의 행사는 성황리에 끝났고, 저녁만찬회는 서울에서도 유명한 中華요리점인 <하림각>이라는 VIP(최고급) 대형 룸에서 진행되었다. 나의 좌석은 이번 행사의 주요 게스트인 美國人팀과 日本人팀 가운데 배정되었다. 아마도 몇 개나라 외국어를 대충 구사(驅使)할 수 있고, 여러 차례 국제행사에 참가한 적이 있어 나름대로의 ‘노하우’(knowhow)를 가지고 있는 필자에게 대회장인 선배님이 ‘특별배려’를 해준 것 같다. 당시 필자의 왼쪽 좌석에 앉은 美國人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며, 행사도중에 선배님의 소개로 ‘풋면목’이 있는 Amir(阿米爾)氏다. 오른쪽 좌석에 앉은 일본인 なかむら(中村) 會長은 선배님을 통해 서울에서 여러 번 만난 적이 있어서 크게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이었다.
행사를 마무리하는 총결파티인지라 主/고객 사이에 꽤나 번다한 절차와 시상식들이 진행되었으며, 별로 한일이 없는 필자에게도 기념패가 '증송'되었다. 드디어 행사가 끝나고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대회장인 선배님의 건배 제의가 끝난 후 각 좌석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술상은 곧 활기를 띄었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경직되고 어색했던 기분은 금방 사라졌다. 나는 식사를 하는 한편, 구면이고 또 ‘애주가’(愛酒家)인 中村會長과 몇 잔 건배를 하면서 담소(談笑)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사이 옆자리에서 줄곧 침묵을 지키면서 식사만 하던 阿米爾氏가 나에게 술을 따르면서 "are you chinese?"라고 하면서 생각밖에 말을 걸어왔다. 나는 잔을 받으면서 "yes. I am china korean, I from peking."라고 대답했다. 이에 옆자리의 中村會長이 서투른 영어로 Mr 金은 '中國警察大'를 나왔고, 현재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엘리트'라고 하면서 기분을 띄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阿米爾氏는 급기야 반색을 하면서 자신도 美國의 '경찰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면서, 젊어서 美國국내의 주(州)급 복싱(Boxing) 챔피언(冠軍)을 한 적이 있다고 정색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키가 180cm를 훨씬 넘는 阿米爾氏의 건장한 체구를 보니 다소 믿음이 갔다. 이에 나 역시 대학교 때 축구와 복싱(Boxing)을 즐겨했다고 하자, 阿米爾氏는 얼굴에 희색을 띄면서 나에게 건배를 요청해왔다. 본 대회의 유일한 '中國人'이었고, 또 'police University'(경찰대)가 '동질감'과 유대(紐帶)로 이어지면서, 나와 阿米爾氏는 연거푸 술잔의 굽을 비웠다.
화기애애한 기분 속에서 분위기는 무르익어갔고, 게다가 알콜의 흥분작용으로 기분이 좋아진 阿米爾氏는 말이 많아졌다. 본래 본인은 英語에는 '깊은 조예'가 없고, 실력은 의사소통이나 하는 정도다. 그런데 阿米爾氏는 나의 英語실력을 높게 보았는지, 점차 깊은 의미가 담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을 종합하면 대충 이러하다. "美國과 中國은 모두 대국이다. 앞으로 中國은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슈퍼파워'(초강대국)가 될 것이다. 中國과 미국은 이데올로기와 체제가 다른 나라지만 많은 교류를 하면서 '의견 차이'를 좁혀야 할 것이다. 지금은 국적과 이념을 초과하는 세계화 시대이다. 오늘 처음으로 中國人 친구를 사귀게 되어 기쁘다." 등등, 그의 진지한 표정으로 보아 '심혈내조'(心血來朝)가 아닌 진심어린 말인 것 같았다. 한편 옆자리에 앉은 中村會長은 연신 맞는 말이라고 하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일리가 있는 말인지라 수긍이 갔다.
행사기간 줄곧 과묵하였던 阿米爾氏의 흥분된 모습에 맞은편에 앉은 女총장[美國팀 팀장/ 리더, 美국내에서 꽤나 유명한 고고학(考古學)자라고 함]이 阿米爾氏를 향해 무슨 기쁜 일이 있는 가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阿米爾氏가 나를 가리키면서 오늘 中國人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 후, 필자를 총장에게 자세히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에 총장 옆자리에 앉은 (대회장)선배님이 이마 두 '대국인' 사이에 뭔가 통하는 것이 있는가보다고 하면서 농담조로 말참견을 하는 것이었다. 한편 기분이 좋아진 阿米爾氏는 대회기간에 특별 요청된 한국인 사진사를 불러 필자에게 기념사진을 찍자고 건의하자, 달아오른 파티기분에 이미 빠져버린 필자는 흔쾌히 응낙했다. 행사기간에 찍은 몇 장의 단체사진을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찍는 (개인)'기념사진'이었다.
사실 나는 행사기간 줄곧 매력적이고 말수가 적은 阿米爾氏를 지켜보았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阿米爾氏의 듬직하고 매너 있는 스타일이었다. 아침에 호텔로비에서 만나게 되면 호들갑스럽게 인사치레를 하는 日本人과 韓國人들에 비해, 阿米爾氏와 나는 머리를 끄덕여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워낙 대국인 ‘中國人’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필자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또한 美國人에게 ‘아부’하는 韓國人/日本人의 ‘저자세’가 눈꼴이 시여 퍽 아니꼽게 보였다. 어쩌면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美國과 美國人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필자가 감복(感服)한 것은 50대 중반의 나이에 부총장이란 타이틀(職銜)을 갖고 있는 阿米爾氏가 행사기간 한시도 ‘보스’(女총장)의 곁을 떠나지 않고, 움직임이 불편한 70대 女총장을 깍듯이 모시면서 ‘보디가드’(신변보위者)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침착하고 겸손한 모습이었고, 그 점에 ‘매료’(魅了)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본 대회기간 귀빈 중의 귀빈으로 줄곧 하이라이트(각광)를 받아왔던 女총장을 ‘붉은 꽃’이라고 한다면, 阿米爾氏는 붉은 꽃을 받쳐주는 ‘푸른 잎’이며, 무명영웅이자 ‘들러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목할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때론 ‘푸른 잎’의 역할을 하는 ‘2인자’가 ‘붉은 꽃’인 일인자(一人者)보다 훨씬 멋지고 돋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현재 중국인과 한국인들이 잘 알고 있는 <삼국지>에서 대다수 사람들은 일인자(一人者) 유비(劉備)보다 '2인자' 제갈량(諸葛亮)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고, 아울러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영원한 2인자’, 中國대륙의 위인 주은래(周恩來) 총리는 국내외에서 공인하는 탁월한 외교가이자, ‘푸른 잎’의 삶을 산 귀감(龜鑑)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필자도 대학시절 이른바 ‘붉은 꽃’으로 각광받은 바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백일 피는 꽃은 없지만, 사시장철 피는 푸른 잎의 소나무는 있다." 그리고 피는 기간이 한철이고 오래 못가는 ‘붉은 꽃’에 비해, ‘푸른 잎’은 생명력이 왕성하고, 그 '수명'이 길다. 또한 사시장철 푸른 소나무는 소박하지만 ‘강인함’의 상징이다. 그래서 필자는 '붉은 꽃'보다 '푸른 잎'을 선호하며, 특히 ‘푸른 잎’(2인자)의 '삶의 자세'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2인자’는 많은 지혜와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함을 잃지 않는 ‘푸른 잎’과 같은 존재이어서 누구나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컨대 축구에서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攻擊手)를 ‘붉은 꽃’이라고 한다면, ‘푸른 잎’의 역할은 어시스트(助功)를 하는 ‘플레이메이커’(경기운영자)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진 필자가 나보다 십 몇 년 선배인 阿米爾氏에게 형님으로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고 묻자, 그는 그냥 우리는 친구라고 하면서 ‘Mr 阿米爾’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美國人은 한국인처럼 선후배에 연연하지 않고,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를 사귀는 것 같다. 분명히 차이가 나는 東서양의 문화다. 필자에게 ‘Mr 金’이라고 친절히 불러주면서 겸손함을 잃지 않는 阿米爾씨는 멋진 매너와 大國人의 넓은 마인드(mind)와 기질을 갖춘 훌륭한 사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필자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美國, 美國人임에도 불구하고 '문무가 겸비'한, 친구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한편, 좀 '喧宾夺主'를 한 것 같아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오래 동안 기억에 남을 의미 있는 파티이었고, 또 좋은 자리에 초청해준 선배님이 퍽 고맙게 생각되었다.
파티가 끝날 무렵 阿米爾씨는 자기양복에 달고 있던 "American World University"라는 로고(logo)가 새겨진 배지(badge)를 나에게 기념으로 증송하였고, 美국내의 상세한 주소와 연락번호를 적어주면서, 美國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주문했다. 사뭇 진지한 표정에서 그의 진솔한 마음과 성의를 읽을 수 있었다. 나 역시 필자가 유학하고 있는 대학마크와 함께 北京의 연락NO를 적어주었고,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 때 기회가 되면 女총장과 함께 한 北京行을 진심으로 요청했다. 이에 女총장은 阿米爾씨와 함께 꼭 '2008년 올림픽'에 가겠다고 답변하면서 나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만약 阿米爾씨가 약속대로 언젠가 北京에 온다면, 필자는 '친구'이며 동도주(東道主)로서, 대국인답게 멋지게 阿米爾씨를 맞아줄 것이다.
필자는 평소 패권주의를 실시하는 부시행정부와 인종차별을 하는 美國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적지 않게 써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하여 쓸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美國의 훌륭한 사나이, 멋진 매너와 인격의 소유자이며 '친구'인 阿米爾氏를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또한 阿米爾씨 역시 처음으로 사귄 이 '中國人' 친구를 잊지 않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아울러 21세기 지구촌이 하나로 되는 세계화 시대에 살면서 국적과 이념을 초월하여 상대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편안한 마음으로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시대, 나아가서 지구인이 모두 한 가족이 되는 시대가 하루빨리 도래(到來)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자신이 '행운아'(幸運兒)로 느껴진다.
-2005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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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송(金范松)
1965년 5월 1일 吉林省 龍井 출생.
-中國人民警官大學(북경) 外事학부/日本語(전공),
-北京/서울에서, 다년간 外國系(日, 韓)회사 근무,
-(韓國)漢陽大學校 經營大學院 석사과정 履修,
-현재 韓國外國語大學校 國際地域/大學院 유학 中.
fansong9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