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이렇게 고마운줄 몰랐다"
美‘카트리나 재앙’ 6개월… 교민 피해지역 르포
한두 푼씩 모은 성금으로 가구당 600여만원 지원
교민 3명중 1명 市외곽서 작은 가게 열고 재기 다짐
"너희 나라 정말 대단…" 중국·일본인들 부러워해
▲ 지난 5일(현지시각) 오후 미(美) 뉴올리언스 한인감리교회에서 교민 800여 명이 카트리나 재해 구호성금 3차분(가구당 900달러)을 받았다. 교민들은 지난해 8월 카트리나 재해 이후 고국으로부터 가구당 총 6200달러(620만원)를 지원받았다. /박란희기자 rhpark@chosun.com
- 살맛나는세상
- 뉴올리언스 한인, 한완상
지난 5일(현지시각) 오후, 뉴올리언스 외곽 매터리(Matairie)지역 ‘뉴올리언스 한인감리교회’가 시끌벅적했다. 교민들은 반갑게 악수를 하거나 손을 잡고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들은 마냥 신난 듯 곳곳을 헤집고 뛰어다녔다.
이날은 대한적십자사, 외교통상부 등에서 모금한 카트리나 이재민 구호성금(50억원) 3차 배분이 있는 날이다. 이날 교민들은 한 가구당 900달러(90만원)를 받았다.
“고국이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마운 것인 줄 몰랐습니다.” 교민 권오수(52)씨가 말했다. 고국을 떠나온 지 24년째인 그는 “그동안 (미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애국이려니 하고 지내왔다”고 했다.
그는 지난 92년 LA에 거주할 당시 흑인폭동으로 피해를 입었고, 그 후 뉴올리언스로 옮긴 뒤 이번에는 카트리나 피해를 당했다. 권씨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지만, 매번 동포들의 정성이 담긴 성금을 받으면서 (동포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교민은 2000여명. 한인 가게 또한 180곳이 침수됐다. 재해 보험금을 부분적으로 받는다고 해도 실제 피해액은 150억원을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카트리나·리타 피해자 대책위원회’ 이상호(67) 위원장은 “미용도구숍, 세탁소, 식료품점 등을 운영하는 교민들은 가게가 침수돼 당장 먹고 살기 어려운 처지였다”며 “정부 지원이나 보험금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고국의 지원에 무척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민들이 세 번에 걸쳐 지원 받은 돈은 가구당 6200달러(620만원). 모두 804가구가 혜택을 봤다. 석 달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돈이다.
피해교민 유재운(50)씨는 “미국에 있는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민족들이 우리를 너무 부러워한다”며 “너희 나라 정말 대단하다고 하니까 기분 좋다”고 말했다.
교민들의 자체 홈페이지에도 “동포애의 사랑이 담긴 거금(巨金)을 쓰면서 앞으로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넘어지고 상처 입고, 많은 어려움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등 감사의 글들이 올라와 있다.
주변의 격려로 교민들은 조금씩 재기(再起)의 싹을 피워가고 있다. 2400평이 넘는 미용도구숍을 운영하다가 12억원의 손해를 본 김선일(78)씨. 뉴올리언즈 동쪽에 위치한 그의 가게 간판 ‘ALL PLUS BEAUTY DEPOT’ 밑에는 깨진 유리조각과 커다란 해머가 아직 내버려져 있다. 김씨는 “흑인들이 이걸로 비싼 물건들을 다 약탈해갔다”고 말했다.
문을 열자 습기를 머금은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시커멓게 변한 염색약, 헤어밴드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김씨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가도 없이 하루 11시간 일해서 마련한 가게인데….”
하지만 그는 “이 지역을 관광코스로 개발해 1인당 35달러씩 받고 입장시킨다는데, 나도 이 가게를 한국의 민속기념관처럼 만들어야겠다”며 농담을 했다. “어떻게 웃을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카트리나 덕분에 한 가지를 잃고 세 가지를 얻었다”고 답했다. “어마어마한 돈을 잃었지만, 그동안 돈 버느라고 멀리했던 하나님, 친구, 가정과 건강을 찾았습니다.” 최근 김씨는 최근 뉴올리언스 서쪽 지역에 다시 자그마한 가게를 하나 열었다.
피해 교민들의 법적 지원을 맡은 박 크리스티 변호사는 “교민 중 3분의 1은 뉴올리언스 외곽에서 가발가게나 음식점 등 작은 가게를 열어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해현장을 방문한 한완상(韓完相)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희망과 절망은 사촌간이다. 미래가 있는 한 희망을 가지자”고 교민들을 격려했다. “6·25 때 원조를 받던 우리가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습니다. 여러분 뒤에 고국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누십시오.” 격려사를 듣던 교민들 몇 명이 손수건을 꺼내 조용히 눈물을 닦아냈다.
뉴올리언스=박란희기자 rhpark@chosun.com
입력 : 2006.02.16 19:16 03' / 수정 : 2006.02.17 06:38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