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을 버린 김일성
간도협약으로 간도지방은 분실 되었지만 백두산은 틀림없는 우리민족의 영토였다.
하지만 남침 했다가 혼이 난 김일성을 도와준 중공은 1950년 말에 이르러 참전 댓가로 백두산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57년 주은래는 참전 댓가로 백두산 영토 250킬로미터를 중국에 지불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58년 천문봉에 기상대를 설치하고 60년에는 백두산 전역을 장백산 자연보호구로 지정한다.
이것에 북한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주은래는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독대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은래- 조선의 국경수비대원들과 일부 조선 주민들의 불법 월경으로 긴장상태가 조성되어 양국 간에 시비가 벌어진다면 이것은 옳지 못하니 조치를 취해 주시요.
이 말에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화답한다.
<김일성- 동무들이 원한다면 우리는 평양도 나누어 가질 수 있소. 양국 간에 존재하는 것은 영원한 혁명적 동지애 뿐이며 남조선에서 미제가 물러나는 날 우리는 진정 하나가 될 수도 있소.>
그리고 68년 12월부터 69년 3월까지 중국 측은 전 백두산 지역에서 북한의 국경수비대와 일반주민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결국 김일성은 북위 42도선을 경계로 백두산을 중국에 할양 할 것을 승인하고 朝中友護 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것이 심지어 조선의 영토이든 바다이든 피로 나눈 혁명적 동지애로 맺어진 조중우의보다 위에 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로써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양분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