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화라는 것을 뒤집어 보면, 세계의 무한시장, 무한경쟁의 장으로 적극 나아가겠다는 말이다. 일등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국제 환경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길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쟁력이라는 것은 비단 자본가들과 대기업들에게 한정된 말일 것이다.
농민들과 노동자들을 위해 정부가 세계 시장에 적응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는지를 따져보면 결코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나는 한때, 농민들은 게을러 빠져서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 정부 지원에만 연명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고 개인이 스스로의 능력을 배가하여 세계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이 나라 교육제도 속에서 어떠한 서비스를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나의 생각이 참으로 순진함 그 자체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간 위정자들, 공무원의 태만으로 인하여 시간을 통해 질적 자산으로 환원시켜야 할 기회를 상실해왔다. 교육개혁은 말 뿐이었고, 국민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해외로 빠져나가기만 하였다. 농업에서도 근본적 지원이 아닌 임시방편적인 조삼모사식의 지원만을 해왔기에, 국가 농업의 새로온 패러다임을 일구기보다 영세한 빚쟁이 농민들만 양산해 왔던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역사를 놓고 비교해 보자.
일본이 비록 침략전쟁을 통하여 아시아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하지만, 그들의 준비성은 높이 평가해 줄 필요가 있다. 그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도 철저하다.
그들은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도전을 위해 국민을 교육하고 대비시켰다. 어쩌면, 그것이 쇄놰라고 할 수 있겠으나, 국가경영이라는 측면으로만 따져보면 참으로 일사불란하고 치밀한 계획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목적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인들의 철저한 준비는 높이 평가할 것이다.
나는 이 나라 위정자들이 진정 이 나라가 추구해야 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어떠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청사진을 구현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위해 얼만큼의 노력을 해왔는지 묻고싶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나라의 국민들은 세계화를 대비하기에 아직도 너무도 먼 거리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추진하는 세계화는 일부 가진자들과 대기업을 위한 세계화이지 결코 우리 국민 전체를 위한 세계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의 맹점은 부익부, 빈익빈을 양산해 내는데 있다. 자본이 자본을 끌어들인다. 따라서 국가는 이러한 부조리를 타계하기 위해 세금의 형평적 징수와 국민에 대한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고 개인의 꿈을 성취하기 위한 기회를 공평하게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정말 그렇게 굴러가고 있는가?
대기업들의 변칙 상속과 탈세, 공교육의 부실로 인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들 간의 교육격차의 심화, 학연과 지연을 통한 기회균등의 박탈 등.... 이 사회는 속으로는 너무도 썩어문들어진 상태가 아닌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구태를 여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못한체 세계화를 추진한다고 하면, 결국 누구를 위한 세계화란 말인가? 우리가 우리 자식들을 제대로 준비시키지 못한체 세계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나아간다면, 이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고 결국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로 양산된 도대된 백성들은 점점 증가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인도와 같은 염세적 종교사회가 아닐진데, 그렇게 많은 백성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더우기, 사상이 다른 북한체제를 맞데놓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우리 사회가 공산주의 국가와 접하여 있는 상황에서, 이토록 많은 백성이 낙오되고 도태될 사회체제를 유지해 간다면 민심이 어디로 기울것인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미 벌써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노당이 국회에 입성을 하였다. 예전같으면 꿈또 꾸지 못할 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민심의 움직임을 보다 좋은 사회체체로 발전시키고 개선하는 것으로 해결해야지, 국가보안법같은 몽둥이로 다스려서는 안될 것이다. 결국 수구파들의 생각은 강력한 법으로 민심의 이반을 막자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과거 개발독재가 만들어낸 그 이후의 어두움을 변명하고 정당화하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과거 개발독재를 심판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개발독재 역시 우리 역사에서 필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수용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문제는 그 개발독재의 그림자를 이제는 시원하게 걷어내고 새로운 지도력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수구파들의 고집도 탐탁하게 생각지 않으며, 더불어 노무현 정부의 대책없는 세계화 추진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실상 따지고 보면,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세계화 추진은 자본주의의 대표적 성향이다. 결코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는 바가 빨갱이 사회가 아니라는 반증이다.
과거 개발독재는 국민으로 하여금 값싼 노동력과 형편없는 작업환경을 감내하게 하면서 돈있는 자본가들만을 키워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잘 아는바다. 공교육을 통해 국가적 애국심을 키웠고 우리 상품과 우리기업의 제품만을 사도록 교육해 왔다. 결국 우리 기업을 이만큼 키운 것은 한 개인의 지도자가 아닌 우리 국민의 인내와 헌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 공덕을 오직 한 개인의 지도자와 기업총수의 몫으로만 돌리려하는 자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경멸한다.
결국 정부와 기업은 자신들의 경쟁력이 취약할때는 국민의 애국심에 빌붙어 살아남았고, 이제는 어느정도 세계 경쟁력을 가지니 국민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 결국 지각있는 시민들은 정부와 기업에 배신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태도변화가 그렇게 변할 것이었다면, 최소한 국민들이 앞으로 닦칠 세계화의 환경 속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자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교육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그러한 투자를 제대로 하였더란 말인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교육문화나 외국인을 대하는 정서는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는데 말이다.
결국 앞으로의 미래는 각자 알아사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양산될 도퇴된 백성들은 그 수가 증가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 위기를 지혜롭게 넘어가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에 다시한번 공산혁명과 비슷한 혁명이 몰아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나라를 성장시키고 발전시켜 왔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정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가진자들은 하늘을 우러러 겸손해야 할 것이며, 자신들이 가진 그것을 사회에 기꺼이 환원하는 것이 자신들의 창고를 영구히 보존해 가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숙한 자본주의, 고등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이 아닐까....
그러한 자본주의야 말로 그 어떠한 사상에도 도전받지 않을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