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ㆍ일전쟁
이 전쟁으로 인해 일본의 중국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이 시작되었으며, 일본에 의한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 시대 서막이 열렸다. 일본은 1876년 조선과의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여 조선이 주주국임을 대내외적으로 인정하게 하고, 다음해 부산에 일본인 거류지를 설정, 곡물의 매점과 무관세 특권으로 공산품을 수출하며 조선에 진출하였다. 1882년 최초의 반일운동인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일본은 제물포조약을 체결하여 주둔지 병권을 장악하고, 1884년에는 김옥균, 박영효등 개화파를 후원,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오히려 청의 종주권이 더 강화되기에 이르렸다. 한 편, 청의 간섭과 일본 상업자본의 진출, 조선왕조의 압제 등에 시달려온 농민들과 동학교도들이 봉기하여, 1894년 5월에 전주를 점령하자 조선왕조는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조선에서 청ㆍ일 양국의 세력균형을 요구하던 일본 정부는 청군의 진출을 보고 6월 초에 출병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서울에 주둔한 일본은 조선 내정의 청ㆍ일 공동개혁을 요구하였으나, 이것이 거부되자 일본의 단독개혁을 추구하였다. 때마침 진행 중이던 영국과의 조약 개정을 성공시킨 일본은, 조선이 청에 대한 복속관계 파기와 청국군의 철병을 거절하자 조선 정부를 무력으로 억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7월 25일 풍도 앞바다에서 청과 일본간의 해전이 있게 되었고, 29일 성환에서는 육상전이 벌어졌는데 일본군은 청국군을 격파하였다. 그리고 9월에 평양 육상전과 황해 해전에서 우세를확보한 일본은 랴오둥반도의 탈취 계략을 세우고, 10월 청국 영토에 진격하여 여순 학살사건을 일으킨 후, 봉천 남부를 제압했다. 이어서 위해위군항에서 북양함대를 격멸함과 동시에 대만 점령을 위하여 팽호도 작전을 벌였다. 일본군에게 연전연패한 청국은 95년 3월 강화 전권대사 이홍장을 파견하여 30일에 휴전, 4월 17일 시모노세키에서 강화조약에 조인 하였다.
일본은
①조선에서의 청국의 종주권 파기,
②랴오둥반도와 타이완, 펑후섬의 할양,
③배상금 2억 냥 지불,
④열국과 동일 특권을 인정하는 통상조약의 체결 등을 얻었다.
그러나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3국 간섭 앞에 일본은 무릎을 꿇고 랴오둥 반도는 반환하게 되었다. 타이완 민중은 일본에의 할양을 거부하며 저항하였는데, 일본은 고전 끝에 11월에 이를 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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