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강제 노동수용소 사상개조 폭로
구소련의 작가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에는
‘굴락(Gulag)’은 소련 노동개조 제도 죄악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중국노동개조기금회 집행주임인
우훙다(吳弘達) 선생의 수년에 걸친 끊임없는 노력으로
중공 노교소의 죄악이 점차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훙다】
세상의 모든 전제독재정부이든
지속적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옥’이라는 매커니즘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히틀러는 집단수용소를 만들어
유태인이나 반대세력들을 수용했고,
공산독재국가인 구소련에서는 ‘굴락’이라 불리는
강제노동수용소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1949년부터
소련을 모방해 노동개조제도를 만들었고
이를 노동개조수용소(노교소)라고 불렀습니다.
노동개조수용소는 지금까지
이미 52년이나 지속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용되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라져갔는지에 대해서는 파악되지 않고 있는데,
대략 5천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노동개조수용소는 일종의 강제수용조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제거하는
일종의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을 통제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죽음입니다.
국제사면위원회(國際赦免委員會 AI)의
십년에 걸친 장기간의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 사형집행 건수의 80%가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노동개조수용소에는
육체적인 소멸이 아닌 사상적인 소멸이라는 특별한 방법이 있습니다.
“勞改”라는 두 글자는
“勞動改造(노동개조)”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중국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강압적인 노동을 통한 죄인의 사상 개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공산당의 원리에 따른다면
이것이야말로 노동개조의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수용소와 소련의 ‘굴락’은
그 잔혹함과 자유의 박탈,
각종 고문과 야만적인 행위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중국의 노동개조수용소와 비교됩니다.
1992년 독일의 강제수용소를 방문했을 때
당시의 유태인과 폴란드인들이
독가스실에서 어떻게 죽어갔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야만적이고 아주 극단적인 살인방법으로 히틀러는
‘세계 최악의 살인마’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인, 소련인, 모두
사상을 개조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노동개조수용소는
중국 공산당만의 획기적인 조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중국 노동개조수용소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그 근본은 사상개조에 있습니다.
내가 노동개조수용소로 가던 날,
그 어떤 법정 판결도 받은 적이 없었지만
경찰은 아무런 절차도 없이
학교 안에까지 저를 잡으러 와서 말했습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저지른 잘못도 크지 않으니
몇 달 정도 노동하고 나면 돌려보내줄 거다.”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19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했습니다.
경찰은 단지 나를 아무런 소란 없이
노동개조수용소에 끌고 갈 목적으로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수용소에 도착한 첫날밤,
경찰은 “순순히 죄를 인정하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하고 말하는 동시에
‘쾅’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옆에 있던 문을 발로 차서 열었습니다.
안에는 한 사람이 발가벗긴 채
기절해서 기둥에 매달려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역시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는 내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들과 같은 꼴을 당할 것이며,
첫 번째 단계는
우선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했고
고개를 숙이고 “나는 범죄자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는
말을 반복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강제자백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계속 되었고
“나는 죽어 마땅하다.
나는 죄를 지었고 국가에 죄를 청하고
당과 정부에 용서를 구합니다.”
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누군가 매일 이러한 말을 반복적으로
장기간 당신에게 시킨다면
거짓도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될 겁니다.
어느 날인가 공산당은
우훙다는 반혁명 우파분자,
정부의 적, 공산당의 적이며
중국 인민의 적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나의 친한 친구들이나 동기들도
모두 나와 함께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관계조차 밝힐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은
바로 당과 정부에 대항하는 행위로
이는 곧 자신의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공은 항상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사회주의 공유제로 모든 자산,
생산재 및 모든 생산도구는 정부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은 모두 정부의 고용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에서 쥐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립된 인격,
독립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반혁명 우파라고 선포된 그날 이후,
모든 친구들은 나에게 등을 돌렸고,
나와는 말도 하지 않았으며
가족들과의 왕래 역시 끊어졌습니다.
왕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의 친한 친구, 아버지, 아들, 부인까지도
모두 공산당과 함께 우훙다라는 사람을 질책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어머니만은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자살을 선택하셨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당신이 굉장히 외롭다고 느낄 때,
내가 무슨 잘못을 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상개조의 시작입니다.
두 번째, 당신은 더 이상 자신의 종교를 가질 수 없습니다.
내가 과연 부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거나 또는
파룬궁을 수련하러 갈 수 있을까요?
수용소 내부 규칙 제1조에 따르면
공산당의 지도를 옹호하고,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조차 지키지 않는다면 개조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신앙, 당신의 정치적 관점은 모두 묻어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상개조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세 번째, 당신은 반드시 수용소 내부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싸움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도망가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조항이 있습니다.
당신은 정부와 당을 믿고
불순분자와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표현해야합니다.
즉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
남을 배신하고 자신을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당신의 입장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물론 형벌, 감금 등의 문제는 모두 남의 손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배고픔이 심했습니다.
듣기로 요즘에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의 음식이 제공된다고 하지만
내가 있을 당시엔 음식을 제한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배고픔은 일종 박해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많은 것이
그것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에 편지를 쓸 때도
남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쓸 수 없고,
가족이 나를 보려고 해도 거절당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나의 부모님이, 자식들이
나를 만나러 오는데 남이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 그 고통은 얼마나 클까요?
어느 때는 좋아! 좋아! 당신이 무엇을 원하든지 다 할 테니
가족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남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물론 그래도 당신의 형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3년 형을 선고받았다고 해도
당신의 태도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하면 기간이 연장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여 자신의 존엄을 감추고
자신의 자존심을 버립니다.
아무리 작은 미생물이라도 살기를 바라듯이
모두가 생존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당신이 이미 외부와는 연락할 가능성이 없고
절망에 빠진 상황에 처해있다면,
내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간에 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상개조는 하나의 중요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한 방법으로 혹사시킨 후
결국엔 살려주지만 이미 그들의 머릿속의 사상은
완전히 소멸되었습니다.
이 점에서 히틀러는 마오쩌둥에 미치지 못하며
나치는 공산당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