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붕괴된 동구유럽은 참혹했다.
갑작스런 자본주의시장 도입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려야 했다. 과거에는 없었던 더러운 사회풍조도 만연한다. 밤에는 매춘을 위해 거리로 나온 여자들로 붐볐고, 심지어 어린 아이들까지 한끼 빵을 위해 외국인 관광객의 성노리개를 자처했다.
나아 먹은 어른들은 말한다. 과거 사회주의체제에서는 창녀는 없었다고....
결국 세상사가 다 그런가? 한쪽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고....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밝은 면이 있다는 사실.
물질이 부족하면 육체는 나약해지나 정신은 강하여질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이 넘쳐나면 육체는 편안할지 모르나, 정신이 병들기 쉬워진다. 그러나, 물질이 넘처나는 세상에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은 육체도, 정신도 모두 망가지기 쉬운 것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누가 선이며 누가 악인가?
이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사회주의는 여전히 체제를 유지하는 도구로 남아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직은 누가 이기었는지 자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를 답습하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를 답습하는 시대인 것이다.
선과 악을 나누어 하나를 무조건 제거하려는 이분법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
본시 그것은 우리 민족의 의식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음양의 조화로 세상이 이루어졌음을 일찌기 깨달은 우수한 민족이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통하여 자기들의 문제를 보완하려 들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를 통하여 자신의 문제를 보완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 경쟁은 후일 어떻게 끝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지금까지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장점이 많았기에 승리되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미래 세계자본주의가 몰고올 심각한 위험에 대하여 우리는 곰곰히 되집어 봐야 할 것이다.
성은 세우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한다. 그동안 자본주의의 업적은 괄목한 만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병패를 너무 과소평가 해서는 안된다. 실보다 득이 많았지만, 미래 사회에 실이 더 많은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고초를 겪었던 시기는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자만과 태만이 부른 재앙은 인간사에 수도 없이 많다. 자아성찰과 자아비판의 힘이 건재할 때, 이간의 번영과 안녕은 굳건한 법.
우리가 우리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 위해서는, 어떤 체제를 선택하였느냐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항상 우리의 작은 문제라도 소홀히 대하지 아니하고 해결하려는 끝임없는 고민의 연속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과 악을 구분지으려다, 스스로의 무덤을 파기도 한다.
인간의 함정은 스스로 완벽하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을 때였음을 왜 모르는가.
현재,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 주에는 스스로 나르시즘에 빠져 있는 자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사회주의 속에서 살아오다가 자본주의를 일부 수용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생기와 희망이 새록새록 피어나고만 있다.
저들이 자본주의 장점을 대폭 수용하며, 패단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일에 성공할 수 도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들만이 창조한 이상적인 사회주의가 되지 않을까?
아직 경쟁은 끝난 것이 아니리라....
자본주의여, 너 어느길고 가더냐. 너 지금 무엇을 하더냐.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를 다시한번 거론하랴?
가장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원과 기회를 몰아주자는 논리로 점철된 세상에는 신기하고 좋은 물건은 넘처나겠지만, 소외된 인간은 점차로 늘어날 것이다.
과도한 경쟁이 부른 병패는 작은 사회, 작은 마을에서도 경험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경쟁적 이윤 추구와 나눔을 적절히 균형잡을 때만이 안정된 사회를 이룩해 왔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대가 남보다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 능력은 보다 많은 이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신이 내린 은총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러면 스스로 자만하여져서, 자신이 번 돈에 자신을 파멸시키고 자기 자녀들까지 파멸에 이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질이 풍부한 자본주의 사회.
그 사회가 자신만 아는 이기적 동물들로만 구성된 사회인가, 신이 내린 은총의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인가에 따라 그 질은 하늘과 땅차이 일 것이다.
과거, 우리의 대지주와 자본가들은 농민혁명가와 노동자들의 혁명에 의해 모든 땅과 재산을 빼앗겼던 적이 있었다. 결국, 은총의 사람들이 경영하지 않는 땅은 한 때의 성난 메뚜기 때의 습격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룬 부를 스스로 일구었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땅을 두려워해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 경외심을 잃어갈 때, 이 땅은 서서히 병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보다 완벽하고 완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 모두가 겸허하게 하늘과 땅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국기, 태극기의 중심에 밖힌 태극.
그것은 서양의 선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부드러움과 모짐. 밝음과 어두움. 진보와 보수. 이 모든 것이 균형과 조화를 일룰 때 이 세상은 온전한 형태와 질서를 유지하게 되는 것이라는 선조들의 철학임을 본받고 실천해야 할 가치인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한국의 보수는, 보수를 보수하여 진보를 수용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수구꾤통짓거리하는 인사들은 남아있다. 보수를 보수한 참된 보수와 수구꼴통. 그 선을 어디서부터 그어야 할지는 각자 알아서 판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