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치상지 수수께끼
2006년 1월14일 토요일 조선일보 A30면 이규태코너(6693)에서 발췌
흑지상지(黑齒常之)
한국 고대사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인 백제명장 흑지상지(黑齒常之)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 것 같다. 당서(唐書)에 백제 서부인(西部人)으로 되어 있는 이 비(非) 한국계 성(性)의 장수가 중국과 베트남 경계지역인 광서성(廣西省)에 있었던 흑치국 사람이거나 흑치국을 봉함 받은 백제 사람일 것이라는 사실이 외교관 출신인 소진철 교수가 '백산일보'에 실은 논문에서 밝혀졌다. 흑치국 수수께끼는 중국의 송나라 정사인 '송서(宋書)'의 5세기 백제 영토를 적은 대목에서 비롯된다.
현재 중국 영토인 '진평군 진평현'도 백제 영토였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5세기 후기의 '양서(梁書)'에는 진평이군(晋平二郡)으로 나온다. 이 진평현의 위치를 알고자 '주국고금지명대사전(商務印書館 刊)'을 보니 송나라에서 설치한 현으로 광서국경 지역에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백제가 베트남 접경지역의 중국에 식민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소교수의 논문에서 그 접경지역의 도시인 옹녕현(邕寧縣) 옹녕시(邕寧市)에 백제 이름이 붙은 길이며 관공서를 확인하고 이 진평현과 백제의 연결 고리로 추정했다.
지금도 소수민족인 장족(壯族)족의 자치지역으로 되어 있는 이 지방은 고대의 흑치국으로 주(周)나라 성왕때 흰사슴과 흰말을 바쳤다는 '먼서쪽 변방의 오랑캐'로 적고 있다. '빈랑'이라는 열매를 씹어서 이빨이 검어졌다고 해서 흑치국으로 불리었다던 환상의 이 지역이 백제의 식민지라는, 다른 연결 고리로 망국 백제를 수복하려던 명장 흑치상지가 이 식민지 출신이라는 추정이다.
중국 문헌인 '만성통보'에 중국 성(姓)으로 '흑치(黑齒)성(姓)'이 있으며, 그 성(姓)을 가진 사람으로 '흑치상지'가 올라 있다. 이로서 당서(唐書)에 기록된 백제 서부인(西部人)은 서부 백제사람이 아니라 '백제 서쪽 중국 식민지 사람'이라는 뜻이 될 수 있다. 백제 멸망후 중국에 들어가 주로 변방 흑치국 지역에서 티베트족이나 돌궐족 침입을 막아 큰 공을 세운 것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중국 땅의 백제 식민지라는 (지금의 역사로는) 상상하기 너무 아스라한 역사적 명제를 우리 사학계는 떠맡았으며, 이를 밝힘으로써 삼국시대 한국 프런티어쉽의 화려한 지평을 넓혔으면 한다.
여기까지가 이규태코너의 내용입니다. 현재의 우리의 역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될 수 없는 베트남에 남아 있는 백제의 모습의 일부입니다. 이곳의 간판이며 지명이 아직도 백제라고 칭하고 있으며 이전의 KBS역사스페셜등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백제'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이곳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조상은 먼 옛날에 전쟁을 하기 위해서 그곳에 왔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던 백제가 굳이 가까운 곳을 마다하고 멀리 베트남 지역에 영토를 개척했을 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맞다면 백제는 한반도 남부에 자리잡았던 작은 나라가 아니라 대륙에 뿌리를 두고 활발한 영토확장을 벌여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나라가 분명합니다. 참고로 흑치상지의 묘석이 중국에서 발견되었는데 사진을 입수하는 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註 - 며칠전 이규태코너를 연재하시던 조선일보 이규태씨가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주옥같은 글을 이제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