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툰은 사막의 꽃…고마워요 한국 친구"
[국방부 2006-03-07 16:47]
사막에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지난 27일 오후 3시 30분, 8000여Km를 날아 도착한 이라크 아르빌 공항.
뜨거운 바람이 후끈 얼굴을 덮쳤다. 처음 접해 보는 사막의 열기가 전쟁의 후폭풍인지, 평화를 위한 쿠르드인들의 염원인지 알지 못한 채 막연한 불안감이 가슴을 눌렀다.
자이툰 부대 현지방문단을 태운 버스는 풀 한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한 마른 땅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렸다. 먼 지평선까지 작은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회색빛 황량한 들판 위에 이윽고 페슈메르가(쿠르드 민병대) 검문소가 나타났다. 두 차례의 검문을 거치는 동안 가슴은 계속 콩닥거렸다. 검문 후에도 차는 한참을 달렸다. 이윽고 저 멀리 국산 K-200 장갑차와 완전 무장을 한 대한민국 국군의 모습이 보였다. 차 안 여기저기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88만 평에 이르는 자이툰 부대 주둔지. 500여동의 숙영시설과 방호시설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차량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 부대 외곽에서 들어오는 모든 차량은 페슈메르가 요원들의 두 차례에 걸친 검문과 한국군의 최종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500여m에 이르는 진입로는 S자형으로 곳곳에 과속 방지턱이 있어 차량의 돌진을 막고 있다. 진입도로 양 옆에는 콘크리트 방벽과 특수 방호벽이 버티고 서 있다. 그 외에도 주둔지 주변에는 박격포가 자리잡고 있었고 수 십대의 CCTV가 24시간 주둔지를 감시하고 있다고 했다. 아 여기가 바로 전쟁터구나.
다행히 아르빌은 지난 6개월간 한 건의 테러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러한 평온은 자이툰부대가 펼친 이중 삼중의 경계근무가 만들어낸 산물일 것이다. 삼엄한 방호망을 지나서야 정문을 통과했다. 오른쪽 건너편에 광고를 통해 익숙해진 외환은행의 모습이 보였다. ‘아, 드디어 자이툰 부대에 무사히 도착했구나.’ 비로소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아르빌의 평온은 이곳이 안전해서기 보다는 자이툰 부대의 물샐틈 없는 경계근무가 만들어낸 평화였다.
숙소 옷장에는 갈색 모래를 뿌려놓은 듯한 사막 위장복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검게 탄 정승조(육군 소장) 자이툰부대 사단장의 안내를 받으며 전방 관측소(OP)에 올랐다. 88만 평에 이르는 광활한 자이툰 부대 주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500여 동에 달하는 숙영시설과 방호시설이 마치 사막 속 신도시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뒤로 멀리 배후도시처럼 자리 잡은 아르빌 시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 보다 강한 자이툰
오후 6시 30분. 사막의 저녁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하늘에 구름이 가려진 흐린 날씨 탓에 그 아름답다는 사막의 황혼을 볼 수 없는 게 참으로 아쉬웠다. 11여단 식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우렁찬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야를 가득 메운 병사들의 모습에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지면서 눈물이 솟구쳐 올랐다. 멀고도 먼 곳, 외롭고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에서 밝은 얼굴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함성이 일행 모두의 애국심을 자극했나 보다.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젊은 시절,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위험하다며 만류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을 뒤로 한 채 이곳에 온 젊은 병사들. 그들은 작열하는 태양과 사막의 모래 바람 속에서 오랜 세월 전쟁과 가난으로 희망을 잃은 이라크인들의 삶과 상처를 동여매며 스스로도 단단히 여물어 가고 있었다.
둘째 날 오전 9시.
민사작전에 합류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완전무장한 우리 군과 페슈메르가의 이중 삼중 엄호를 받으며 들어선 아르빌 시내. 희뿌연 회색 하늘을 등지고 듬성듬성 서있는 무채색 건물들과 힘없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보고 있는 듯 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저 멀리 눈에 익은 수 십개의 연들이 꼬리를 물며 하늘 끝에 닿을 듯 날고 있다. 이곳이 아르빌의 작은 마을 그르다라쉬 므프티.
자이툰 부대가 펼치고 있는 ‘그린 엔젤 작전’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그린 엔젤 사업은 현지인들에게 협동과 자조의 정신교육을 통해 ‘잘 살아보자’는 의지를 심어주는 자활 프로젝트. 우리의 새마을운동을 현지 사정에 맞게 적용시킨 것이다. 마을의 오·폐수 공사, 학교 내부 도색 및 화장실 개선, 수도·전기 시설 보수 등을 스스로 해결해나가도록 주민들을 설득하고 기술과 원자재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린엔젤 작전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벌어진 마을잔치. 장병들과 아이들이 어울어져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그르다라쉬 므프티 마을에서 ‘그린 엔젤 작전’을 최종 마무리하는 이 날, 부대원들과 남녀노소 마을주민이 함께 어울려 노는 잔치가 벌어졌다. 처음에는 함께 즐기고 일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이들에게 마을 잔치는 마냥 생소한 듯 했다. 그러나 부대원들과 주민들의 줄다리기와 기마전, 부대원들의 탈춤과 농악시범, 현지 아이들의 태권도 격파시범 등이 이어지면서 함박웃음과 박수갈채가 사막 저 편 끝까지 울려퍼졌다.
하늘을 덮은 만국기와 연, 부대원들이 직접 만든 호떡 맛탕 붕어빵 등 풍성한 먹거리, 운동장을 가득 채운 웃음소리. 지붕 위를 지키고 있는 완전 무장한 저격수들과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는 장갑차량만 아니었다면 우리나라 시골에서 흔히 보는 운동회 풍경 바로 그것이었다. 함께 어울려 웃고 즐기고 춤추는 한국형 공동체문화를 전해준 것이 고가의 건축자재 보다 훨씬 값진 선물은 아닐까.
고기 낚는 법 가르치는 민사작전…럼즈펠드도 "자이툰에 배워라"
마을 잔치를 끝내고 찾은 곳은 자이툰 부대의 또 다른 자랑거리 주민기술교육센터. 컴퓨터, 중장비 운전, 가전수리, 제빵 등 7개 과정을 두고 있는 기술교육센터는 수료생의 취업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 특히 아르빌시의 고급 공무원 월급보다 많은 월 500~1000달러의 봉급을 받는 수강생들이 늘어나면서 입학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고 한다.
기술교육센터의 컴퓨터 교실은 젊은이들의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면서 10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기쁜 소식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제한되어 있는 이곳에서 중차량(69톤 트레라) 과정에 4명의 여성을 선발, 쿠르드지방정부(KRG)로부터 이들에 대한 면허시험 기회를 약속받아내는 등 여성의 지위향상에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르빌 살라만 대학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자이툰 부대는 점령군이 아닌 친구로 우리를 대해줬으며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며 “한참 더 머물길 바란다”는 소망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브라힘 하산 쿠르드 민주당(KDP) 부대변인도 “쿠르드인에게 군대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자이툰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자신들을 억압하지 않고 도움을 주었고, 마을을 파괴하지 않고 재건해주고, 폭탄이 아닌 선물을 주는 군대도 있다는 걸 안 것은 큰 기쁨이다”고 말했다.
바자라니 쿠르드지방정부 대통령도 “쿠르드인에겐 산 이외에는 친구가 없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제 우리들에게 한국군이라는 또 하나의 친구가 생겼다”며 “한국군은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강조했다.
'사막의 산'에 이은 두번째 친구
자이툰 부대의 '존중과 배려'의 정신은 다국적 군대와 달리 쿠르드 민병대인 페슈메르가를 받아들여 경비를 맡겼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인가 보탬이 된다는 사실에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생선 한 마리가 아닌 고기 낚는 법’을 가르치는 자이툰 부대의 민사작전(평화재건사업)은 현지인뿐만 아니라 다른 다국적군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도 인기몰이가 한창이다.
지난 1월초 부대를 방문한 다국적군단사령부 쿼렐리 군단장(중장)은 “부임 이전부터 자이툰의 민사작전 프로그램을 연구한 결과 동맹군들이 이라크에서 장차 수행해야 할 방식임을 인식했다”며 “사령부 예하 미군 사단장들에게 자이툰의 민사작전을 배우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도 지난 2일 쿼렐리 군단장으로부터 자이툰 기술교육센터의 운영 성과를 보고받고 “그런 좋은 프로그램을 이라크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며 ‘자이툰식 작전’의 도입을 지시했다.
2004년 9월 첫발을 내디딘 이후 ‘존중과 배려’정신을 통해 묵묵히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해온 성과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자이툰 부대원들은 재건활동과 의료봉사, 기술을 가르치는 가운데 그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주고, 따스한 눈빛을 보내주었으며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유일한 친구인 ‘사막의 산’에 이은 두 번째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