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가슴아픈 ‘요덕 스토리’
[조선일보 2006-03-17 03:13]
배우가 직접 무대도구 나르고… 예매율은 20%
장면 전환 자동화 안돼 수용소벽 위태롭게 출렁
호기심에 봤다는 네티즌 “나를 반성하며 돌아왔다”
[조선일보 박돈규기자, 인턴기자]
15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요덕 스토리’는 이번 주 한국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중 가장 어둡다. 북한의 1급 정치범 수용소를 극중 배경으로 들여왔으니 대사 중 ‘요덕’(45회)이란 단어가 가장 많은 건 당연했다. 그러나 관객은 다음으로 ‘꿈’(37회) ‘노래’(27회) ‘사랑’(22회) 같은 단어를 자주 들었다. 탈북자 출신 연출가가 만든 이 뮤지컬은 절망의 나락에서도 꿈과 사랑을 더 깊이 노래했다.
‘요덕 스토리’는 여느 대극장 뮤지컬과 뚜렷이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었다. 한국어 공연이지만 무대 좌우 끝에는 영문 자막이 오르내렸다. 각국 대사관과 일본의 대북 구호단체 등의 단체관람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5차례에 걸친 무대 전환도 완전히 ‘수작업’이었다. 오토메이션(자동화)으로 장면을 바꾸는 다른 대극장 뮤지컬과 달리 스태프도 아닌 배우들이 손수 대·소도구를 날랐다. 무대 바닥이 긁히며 잡음이 일었고, 커다란 수용소 벽은 들고날 때마다 위태롭게 출렁였다. 이미 다음 장면의 조명이 들어왔는데 뒤늦게 의자를 들고 빠져나가는 모습도 노출됐다.
하지만 흉잡는 관객은 없었다. 그럴수록 가슴 아파하는 적막이 흘렀다. 대관(貸館) 심사 탈락, 투자 펀드 철회 등 예상 밖의 장벽에 가로막혔다가 간신히 올린 공연이기 때문이다. 배우 강효성씨는 “불안한 음향 설비, 여주인공 강련화와 수용소장 사이의 납득하기 어려운 사랑, 종교적인 색채 등도 이 뮤지컬이 처한 상황을 이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제작비 7억원 중 6000만원은 성금으로 모였다(이 정도 규모의 뮤지컬을 초연하려면 최소 11억원이 든다). 나라 안팎에서 1000여 명이 1000원부터 200만원까지 마음을 보탰다고 한다. 빵·과자·귤 같은 음식도 들어왔고, 수용소 자문과 홍보를 도와준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붉은 천에 커다랗게 검은 눈동자가 그려진 무대막이 올라가는 시작 부분은 관객의 현실 감각을 헝클어뜨리기도 했다. 북한식 말투, 집체무용, 로봇 같은 걸음걸이, 그리고 지옥도를 떠올리게 하는 수용소….
어린이극을 주로 하는 초라한 극장에서 막오른 ‘요덕 스토리’ 공연은 불편한 대중교통 편부터 허리에 통증을 주는 좌석에 이르기까지 여러 수고를 무릅써야 한다. ‘이요덕’이라는 네티즌은 이 공연 홈페이지(yodukstory. com)에 “호기심에 갔다가 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며 돌아왔다”는 관람 후기를 적었다. “수용소가 해체될 때까지 공연을 계속하겠다”는 정성산 감독이 “눈물과 참회를 가져가기 바란다”고 한 까닭을 알 것 같다.
이 공연 웹하드의 패스워드(PW)는 ‘eoqkr’, 한글로 ‘대박’이다. 홍보 담당자는 “우리의 꿈을 적었을 뿐 실현되리라곤 믿지 않는다”고 했다. 총 30회 공연의 유료객석 점유율이 손익분기점인 80%를 넘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예매율은 16일 20%를 넘겼을 뿐이다.
(박돈규기자 [ coeur.chosun.com])
(김민정 인턴기자·부산대 신문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