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어서 지나에 대한 감정은 전통적으로 좋지 않다.
한국에게 있어서 지나와의 수교는 전적으로 경제적 실리에 입각하여 진행된 일이며, 더우기 분단상황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 지나는 어떠한 나라로 다가오는가?
역사적으로 일본만큼이나 한민족에게 부담을 가져다 준 오랑캐로 각인되어있다.
근대사적으로는 정권욕에 사로잡인 김일성이의 남침에 동조하였고, 더불어 한국군과 연합군이 완성한 통일대업에 재를 뿌린 장본인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가슴에 품은체 한국과 지나가 수교하였다는 것은 앞으로 많은 문제를 내포하게 되어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반세기를 소원하게 지냈던 두 국가가 서로 조우하여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는 묵은 감정을 털어버리고 긍정적 내일을 기약해야 할 일이지만, 지나는 한국에 대한 그러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한국은 수교에 앞서 지나의 625 참전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그들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어찌보면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지나와 수교한 한국이 비굴한 외교를 하였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분단의 안겨다준 치욕이면 치욕이다. 그러나, 지나 입장에서 보면 한국과 미래 원만하고 깔끔한 관계를 지속할 것에 대한 불확실한 문제거리를 남겨둔 셈인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의 역사적 자존심인 고구려사를 왜곡하여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드는 지나의 망동은 한민족에 대한 엄청난 내적 상처를 안겨다주었다. 두 국가간의 경제적 밀착관계는 깊어만 가서 관계의 순풍이 부는 듯 보이지만 속은 썪을대로 썩은 관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지나와 한국의 관계는 그 어는 순간에 도달하면 뒤도 돌아볼 것 없이 냉정히 돌아설 수 있는 그런 관계인 것이다.
지나는 한국인에 대하여 좋은 친구로 자리잡을 맘이 없음을 한국인들은 재차 확인하였다. 수교 당시에도 그랬고, 그 이후의 역사주권에 대한 도전도 그랬다. 결국 지금의 한국과 지나관계는 철로처럼 결코 한 지점에서 만나지 못한채 수평선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족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이념적이다. 여전히 고지식하다.
이유인 즉은, 그들에게 있어 모택동은 지나의 영웅이요 위대한 지도자로 인식되고 있다는데 있다. 이말은 무엇인가? 그들은 결코 한국인과 사고체계가 다를 수 밖에 없는 지나인이라는 것이다.
모택동은 한민족, 특히 한국인에 있어서 뒤에서 호박씨를 깐 사기꾼이요, 통일대업을 방해한 악당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한국인의 정직한 정서요 당연한 반응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한국인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택동을 찬양하는 조선족이 심심찮게 눈에 띠는 것은 조선족이 한국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위해 그 어떠한 역사적 고찰이나 마음의 준비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모택동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현재 한국인과 조선족의 간의 이질적 깊이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지나인민과 조선족이 모택동을 냉정하게 비판하고, 영웅의 반열에서 끌어내리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국과 지나 간의 긴장감은 어느정도 와해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과거 천안문사태의 살육은 천안문광장에 걸린 모주석의 대형 초상화에 페인트를 뿌린 일에서부터 결심되어졌다고 한다.
그러한 인민의 행동을 반국가행위로 보고 강력한 탄압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지나인들은 몰라도, 조선족 만큼은 모택동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조선족은 한국인들과 함께 원만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며 대상인 것이다. 민족의 원흉을 자신들의 영웅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어찌 같은 동포의 마음으로 품을 수 있단 말인가? 조선족은 한국인에 대하여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한국인은 그러한 수준에 머물러있는 조선족을 향하여 너무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말하는 내 자신도 씁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