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모으기 운동은 무엇인가?
- 국채보상운동과 금모으기 운동 -
2년 전 우리 나라는 IMF체제로 들어갔다. 그 국가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금모으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에 이와 매우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1907년 2월 중순 대구에서 시작되어 빚 1300만원(원근 1150만원 이자 150만원)을 갚기 위해 1907년 2월 중순 대구에서 시작되어 약 1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 운동은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전국에 20여개의 단체가 조직되었다. 이 운동에는 국왕으로부터 전직·현직 고위 관리, 상인, 지식인, 부녀자, 농민, 노동자, 기생, 백정 등 신분과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전 계층이 고루 참여하였다. 모금운동은 군 단위로 전개되었다. 사람들은 담배를 끊고 저축한 돈을 보내기도 하였으며, 집에 있는 패물을 꺼내 놓기도 했다. 그 결과 1907년 5월까지 약 230만원이 모금되었다.
- 국채 보상운동을 추진하던 사람들의 뜻 -
지금은 우리들이 정신을 새로이 하고 충의를 떨칠 때이니, 나라 빚 1300만원은 바로 우리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갈림길이다. 이것을 갚으면 나라가 존재하고,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나, 지금 나라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으며, 만일 나라에서 갚는다면 그 때는 이미 3천리 이 땅은 내 나라 내 민족의 소유가 되지 못할 것이다. 국토란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는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국민들이 국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무를 보더라도 나라의 빚을 모른채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나라 빚을 갚는 방법으로는 2천만 백성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금하고, 그 대금으로 한 사람이 매달 20전씩(1원은 100전) 거둔다면 1300만원을 모을 수 있으며, 만일 그 액수가 미달할 때에는 1환 10환 100환의 특별 모금을 해도 될 것이다.
금모으기 운동 관련 신문 자료
<자료1> 금모으기 빛과 그림자 (한겨레신문 1998년 1월 9일)
장롱 속 금모으기 운동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10돈 중짜리 '별'을 내놓은 옛 장군이 있는가 하면 5천만원 상당의 가게 금붙이를 들고 온 금은방 주인도 있다. 자식들 돌선물로 받은 금반지는 수집 창구마다 그득하다. 지난 5일부터 금을 보으고 있는 주택은행에는 9일 현재 20만명이 25톤 가까운 금을 맡겼다. 국제 시세로 치면 2억5천만 달러에 해당한다. 남대문 지점 이영호 과장은 '금을 맡기려는 시민들이 출입문까지 장사진을 쳐 다른 일을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금모으기 운동은 외채를 갚는 수단이 되고 국민들의 자발적인 호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사 줄만하다. 그러나 급하게 추진되다 보니 부작용도 우려된다. 무엇보다도 창구가 분산되어 수출에 혼선을 빚는다. 수출 창구는 외국의 몇 개 은행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너도 나도 금을 모아 내밀기 때문이다. 대우 이준우 과장은 '외국 은행과 수출 협상을 하는 도중에 다른 기업들이 뛰어 들어 난처할 때가 있다'며 금모으기 창구를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한꺼번에 금이 쏟아져 나와 국내 처리 시설로는 힘이 부쳐서 외국에서 정련을 해야할 판이다. 국내 정련을 맡고 있는 고려 아연은 한 달에 금 12톤 정도를 소화하는게 고작이다. 나머지는 스위스나 오스트레일리아에 보내 처리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금을 맡긴 이들에게 수출금을 돌려 주기도 빡빡하다.
금괴를 수입해다가 장신구로 가공해 다시 수출해 온 업체들도 난처함을 호소한다. 환율 폭등으로 가뜩이나 금 들여 오기가 여려운데 들어온 금마져 내다 팔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지금이 전시도 아닌데 마지막 지불 수단을 소진하는 것이 옳은가 묻고 장차 금 부족 현상으로 금 파동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주택 은행 관계자는 '서민들의 호응에 감동하면서도 정작 나와야 될 금덩어리 금송아지는 안나와 답답한 마음이 돌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료 2> 종교계, 현금도 시주도 금으로 하세요 (경향신문, 1998년 1월 9일)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 종교계가 대대적인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다. 한국 기독교 협의회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교회협 총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제난 극복을 위한 금모으기 운동에 적극 참여키로 했다. …… 또 원불교 여성회도 교육 혼인 소비 등 모든 문화를 바로잡고 나라를 살리기 위해 에너지 절약운동, 금모으기 운동, 북한 동포 돕기 운동, 환경 운동에 적극 참여키로 했다.
<자료 3> 민별철 생활영어, Every little bit helps, 티끌모아 태산! (조선일보, 1998년 1월 9일) 우리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장롱속의 금은 약 2천톤이며, 이를 국제 금시세로 따지면 2백억 달러로 추산되며, 이 금이 해외로 수출된다면 우리 경제에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십시일반(十匙一飯)'이다. 즉 조그만 정성도 도움이 된다고 하게 되는데, 영어로는 Every little bit helps라고 한다.
<자료 4> 한국의 금모으기 중국 조선족들도 참가 (조선일보, 1998년 2월 2일)
베이징에 있는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요즘 한국의 외환위기 극복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는 2건의 연락을 받고 감격에 젖어 있다. 중경의 대한임시 정부 청사를 관리하는 중국인 직원 16명은 지난달 27일 북경 우리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작은 정성이지만 한국의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면서 1천 달러를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이들은 중경시 문화국 소속 공무원들로, 한국 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 이들이 모금한 1천달러는 중국 화폐로 8,200여 위안으로 일반 근로자들의 약 1년치 봉급에 해당한다. 대사관 관계자들은 '중경임시정부 청사는 한국인 방문객이 적어 입장료 수입도 거의 없는 편'이라며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적지 않은 돈을 모금해 내놓겠다는 것이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흑룡강성 하얼빈의 조선족 성인 직업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이 학교 최영철 교장은 '금모으기 운동에서 우리 민족의 강한 단결력을 보았다'며 학생들과 함께 모은 4백 달러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우리를 돕겠다는 중국인과 조선족들의 뜻은 너무나 고맙지만, 이런 상황으로까지 경제를 망친 우리 자신의 무능력과 책임감을 다시 한번 통감하게 된다'며 착찹한 표정을 지었다.
<자료 5> 금모으기 숙제 (조선일보, 1998년 2월 5일)
서울의 초중고교에서 개학과 함께 학부모들에게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해 낸 증서 복사본을 학생들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아직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가정에서는 자녀를 동반하고 가까운 농협에 가서 자녀들의 이름으로 금을 내며 교육감 명의로 참여증서를 배부할 예정입니다'라는 가정 통신문을 보냈다. 이는 지난 달 13일 서울시 교육청이 각 학교에 '경제 살리기 금모으기 운동 실시'라는 공문을 보내 '1월 12일부터 2월 10일까지 교사와 학생(학부모)들이 금모으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고, 그 실적을 1일까지 시교육청에 보고하라'고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이 공문은 학교를 거쳐 학부모들에게 전달되면서 엉뚱한 결과를 빚었다. 학교에서는 '실적 보고'를 위해 학부모가 금을 내고 증서 사본을 가져 오는 것을 숙제 검사하듯 했다. 시교육청은 증서 사본 제출에 대해 학교에서 말썽이 일자 '학생들에게 참여 증서는 내지 말고 학부모가 금을 낸 학생들 숫자만 보고하라'고 다시 공문을 보내 소동을 빚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좋은 취지가 왜곡되면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은 이 뿐이 아니다. 부산의 모 중학교에서는 교장이 교사들에게 '학생들이 외제 학용품을 쓰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 학생들이 멀쩡한 학용품을 두고 새로 국산 학용품을 사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 어린 학생들을 동원하고 때로는 학생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교육계의 잘못된 관행이 경제 살리기 운동을 맞아 되살아 나고 있는 듯한 안타까운 풍경이다.
<자료 6> 대구 새 국채보상운동 사업 본격화 (한겨레신문, 1998년 2월 21일)
지난해 대구에서 출범한 국채보상운동 기념 사업회가 첫 상임위원회를 열고 외채위기 극복을 위한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친다. 국채보상운동 기념사업회는 21일 오전 대구시청 2층 상황실에서 학계와 언론계, 사회 단체 대표 등 28명의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상임위원회를 열고 올해 사업 방향을 정한다. 기념사업회는 전국 순회강연회와 연극제, 국채보상물산전 등의 사업을 편다.
<자료 7> 북한, 금모으기 운동 물거품 될 것이라고 주장 (경향신문, 1998년 2월 19일)
북한은 18일 한국에서 IMF 난국에 따른 경제회생을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결국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한국민들에게 국채보상운동을 반정부투쟁 통일투쟁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선동했다. 평양방송은 이날 지금 남조선 각지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주민들이 어려운 처지에서도 돈과 금반지를 비롯한 금품들을 바치고 있다면서 '그러나 외세(미국)가 남조선에서 판치고 매국 반역 집단이 권력의 자리에 틀고 앉아 있는 한 국채보상운동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료 8> 김입삼 칼럼 (한국 경제, 1998년 3월 30일)
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면서 '한강의 기적'은 세계 앞에 산산조각이 났다. ……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으뜸이라던 우리 나라가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압축성장'으로 특징지워지는 경제 발전과정에서 꼭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우선 들고 싶다. 외환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우리가 외화 부족에 시달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8·15 이후 …… 그 많은 세월 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IMF에 달려가게 된 것 아닌가? 돌반지까지 걷는 '금모으기 운동'으로 전국이 떠들썩하기까지 했다. 외국 매스컴은 위기 극복을 위한 우리의 애국심과 단결력에 경탄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자.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다른게 뭔가. 일본에 진 빚을 갚으려고 아낙네들은 금비녀를 바쳤다. 노인들도 담배를 끊었다. 한번으로 족하지 않은가?……
<자료 9> '국산품 애용 운동' 무역 장벽 등 초래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31일)
최근 경제 위기가 닥치자 소비자 단체들이 국산품 애용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소비자 단체들은 이 운동이 구한말 국채보상운동과 비슷한 애국운동이라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외환 사정이 어려운 지금 외제품을 마구 사용하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외환 사정이 악화되고 수출 증대를 위한 원료의 수입도 어려운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을 획일적으로 전개하는 것은 경제에 득보다 실이 크다. 우선 우리 나라는 무역을 통해 성장해 온 나라다. 이러한 나라에서 국산품의 구입만을 고입하는 캠페인을 하면 외국에서 우리 상품의 구매를 꺼리거나 무역장벽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자료 10> 국채보상운동, 금모으기 본질 문제 외면에 공통 (조선일보, 1998년 6월 3일)
IMF 관리체제로 돌입하면서 국민운동으로 확산되었던 금모으기 운동을 강하게 비판하는 글이 <역사비평>이라는 잡지에 실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이상찬씨인데, <국채보상운동과 IMF 금모으기 운동의 허구성>이라는 글에서 최근의 금모으기 운동이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을 폈다.
두 운동의 공통점은 ▲ 운동 자체만으로 부채를 갚을 수도,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도 없으며, ▲ 외채를 도입하거나 혜택을 받은 세력들이 처벌받고 책임을 져야 하는 본질적 문제를 외면한 채 아무런 잘못이 없는 국민들이 운동에 열심히 참가했다는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은 국민들이 내놓은 담배 값으로는 부채의 이자를 갚는데도 역부족이었고, 외채를 갚더라도 국권을 회복하기란 불가능했으며, 들여온 빚으로 조금이나마 혜택을 받았던 상층민, 귀족, 명문 집안 사람들, 부자들의 참여는 저조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글쓴이는 부채 도입 책임자가 처벌받고 그 돈을 사용한 사람이 빚을 갚아야 하는 당연한 문제가 외면된 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왜 거액의 부채를 갚을 능력이 없는지, 부채를 들여온 지 1년 밖에 안된 시점에서 갚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은 어떻게 된 것이며, 도대체 누가 잘못한 것인지 등을 따졌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글쓴이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최근의 금모으기 운동과 관련, '외채문제는 경제정책이나 금융정책의 변화에 의한 산업구조 안정, 우리 나라 부의 증가 등으로 해결되는 것이지, 금을 달러로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외국 돈을 들여와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누구이며, 얼마나 혜택을 받았는지를 밝혀 내고 그들이 현재의 위기를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료 11> 금오으기로 20억불 벌어 들여 (조선일보, 1998년 10월 19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범국민적으로 전개되었던 금모으기 운동을 통해 수집된 금을 팔아 번 외화는 20억 달러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19일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22일부터 4월 24일까지 주택은행, 외환은행, 국민은행, 농협 등이 금을 팔아 모은 외화를 한국은행이 사들인 실적은 약 19억 6천만 달러에 달했다.
<자료 12> '금모으기' 악용 세금 속이기 (동아일보, 1999년 3월 9일)
19개 금 수집 및 판매업체가 국민들의 금모으기 운동을 악용하여 가짜 세금 계산서를 발급하는 수법 등으로 무려 9백12억원의 세금을 안낸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8일 금 수집 및 판매상을 대상으로 특별 세무조사를 벌여 이들에게 (세금을 빼돌린 벌로) 2천 190억원의 세금을 내도록 했다고 밝혔다. 금 수집상들은 위장 세금 계산서를 발급하거나 부가가치세 신고 기간이 되면 문을 닫고 폐업하는 등의 수법으로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