河南 위례성
백제의 시조 온조가 하남(河南)위례성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것이 지금의 몽촌토성이니 아차산성이니 합니다. 하지만, 역시 위의 사실과 같이 이상합니다.
우선 고대의 하(河)와 강(江)은 고유명사입니다. 즉 아무곳에나 하(河)이니 강(江)이니 한 것이 아닙니다. "하(河)"란 "황하(黃河)"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이고, "강(江)"이란 "양자강"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남(河南)위례성"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요? 당연히 지금의 대륙의 하남성(河南省)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고대에 한강을 하(河)라고 지칭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하남위례성을 한강이남에서 찾아야 하는가요? 물론, 하남위례성을 대륙의 하남성에서 찾아야하는 이유는 단순히 지명 때문이 아니라, 여러 역사적인 사실에 의해서 나타나는 사실임을 앞의 글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이해가 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河는 지금의 황하"이고, 고조선의 주 무대는 "황하"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것입니다. 못 믿으시겠다고요.. 그러면, 지금까지의 천문학적, 지질학적 근거와 사료적 분석을 다시 보십시요.. 또한, 고조선이 대륙에 있으면 자연히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무대도 대륙이 되는 것이고, 고려또한 대륙에 존재하게 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더군다나 역사스페셜등 각종 역사관련 방송을 보면 역사학자들이 발굴을 하면서 여러 절터가 나왔으니 여기가 위례성이 틀림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절이 많았다고 서울이 됩니까? 하지만, 가장 중요한 왕궁의 주춧돌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절은 있어도 왕궁은 짓지 않았다는 것인가요?
KBS역사스페셜의 어느 PD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 ...앞으로 왕궁터도 발견될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요? 상식적으로 절보다는 왕궁의 규모가 훨씬 더 크고 웅장하였으므로, 발견이 더 쉬어야 하는데, 수십년을 뒤져도 아직도 못찾고, 발굴유물을 가지고 억지로 끼워맞춰지고 있는 역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또한, 개로왕은 하(河)가 자주 범람하자 벽돌을 구워서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제방은 없습니다. 물론 수 천년이 지난 지금 남아 있을수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스페셜 방송분을 보니. 그럼에도 60년대 항공사진을 분석한 결과 그 당시는 제방이 일부 남아 있었는데, 현재는 없어졌다고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실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수 천년간 견뎌온 제방이 불과 몇 십년사이에 없어졌다는 말인가요?
이러한 사실에 대한 KBS역사스페셜 담당자의 대답은 걸작이었습니다.
"...중국사에서의 河와 江이 황하와 장강(양자강)을 의미하는 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역사에서는 아니다" 라고 합니다. 어디까지가 우리역사이고, 어디까지가 중국사인지 참 우습습니다. 전투가 河나 江에서 벌어진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들은 발견된 유물이 가지고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하지만,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반도에서 유물이 안 나온다는 것이 아니라, 반도는 삼국의 중심이 아닌 지방일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이 틀렸다면 하루빨리 왕궁을 모두 발견하고 사서에 기록된 것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면 되는 것입니다.
백제는 대륙에서 건립된 왕조이고 대륙 산동반도에서 멸망한 왕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