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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이름 : ㅋㅋㅋ
2005-07-28
◇ 공산혁명 지도부의 숙청작업   엄청난 민족 대 학살의 신호탄은 자기들간의 의견 조율 실패에서 일어 났다. 1976년 9월 소집된 공산당 중앙위원 회의에서의 캄보디아 공산당 창설기념일에 대한 이견에서 시작되었다. 첫번째 의견은 폴포트 자신이 1960년 서열 2위로 캄보디아 노동당 KWP을 창설 했을 때를 희망 했으나, 또 다른 의견은 1951년 베트맹 공산당의 지배적인 영향하에 창설된 크메르 인민 혁명당 KPRP을 창설 일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이에 노한 폴포트는 1951년 안에 동조했던 두 명의 고위 간부 케오 미아스( Keo Meas )와 논 수온(Non Suon)이 당 지도부를 배반 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혁명정권의 악명높은 심문센타 뚜올 슬랭(Tuol Sleng)으로 끌려가 처형 되었다. 폴포트는 두 명의 고위 당 간부를 숙청한 이후부터 미세균이 침투하여 당이 병들었다면서 악덕 세균 색출을 지시했다. 악덕 세균으로 간주되는 자들은 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 당내 반 혁명분자, 전 정권의 관리와 군인들, 전직 교수 및 교사, 지식인, 의사와 약사, 중산층 등이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베트맹이 주도할 때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당원들, 그리고 베트남 국경지대인 동부지역에 연관된 관리나 그 지역 사령관이나 군인들등이 숙청되었고, 그리고 중국의 '문화혁명'에 자극을 받은 폴포트가 공무원, 교사, 영어를 하는자, 교육을 받은적이 있는 학생, 안경을 쓴 사람, 손에 못이 안 박힌 사람, 외국서적을 가진 사람, 양담배를 피웠던 사람 등은 부르주아로 분류되어 처형하였으며, 국내에 있던 외국인들과 월남인들도 간첩의 협의로 모두 처형되었다. 이 심문센터에 끌려온 사람은 거의 무고한 사람이었다. 심문을 받은 사람은 다른 3명의 이름을 자술서에 적었고, 또 들어오는 사람은 다시 3명을 불러야 했고 심문 받은 모든 사람은 반 혁명의 죄를 뒤집어 쓰고 처형 되었다. 당시 이 심문센터 한 곳에서 약 2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심문센터 근처에 있는 노동자들은 이곳은 "들어가지만 나오지는 못 하는 곳" 이라고 이야기 하고있다. 이곳에 들어가 살아남은 사람은 약 10여명으로 추정될 뿐이다. ◇ 도시민의 추방과 4년계획   크메르 루즈 공산 게릴라의 프놈펜 입성으로 내전은 끝나고 도시민들은 새로운 점령군의 활동에 큰 기대를 걸어 평온한 가운데 기쁨에 들떠 있었다. 베트남 스타일의 군복에 근엄하면서도 진지한 그들의 모습에 프놈펜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환영으로 그들을 맞아 주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15세 이하의 어린 소년들이었다. 그러나 그 환희도 잠시, 도시민들은 그날 오후부터 혁명군이 짜놓은 각본대로 농경지대와 시골지역으로 추방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2개월간 전국적으로 2~3백만 명의 인구가 농부로 신분이 바뀌어 시골지역으로 이동되었다. 그들의 긴 이동행군은 정말 힘들었고 이동 중 노약자와 환자 그리고 어린이들은 말라리아와 풍토병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서 죽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냉정하게도 대열에서 이탈한 사람들에게는 짐승보다도 더 차갑게 대했다. 추방길을 인솔한 부대원은 대부분 시아누크 정부와 논놀 정권시대의 가난한 하층민들로 1970 ~ 1975년 사이에 캄보디아 공산당에 가입하여 무산계급의 혁명을 교육 받으며 착취계급에 대한 증오를 키웠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도시민 추방 정책은 프놈펜 점령 수 개월 전에 당지도부에 의하여 결정 되었는데, 그 배후엔 몇 가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첫째는 당시 프놈펜의 인구는 각 지방에서 몰려던 피난민으로 2백만이 넘어 식량이 절대 부족 하였고 , 혁명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중산층 이상 도시민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가 없었다. 둘째는 혁명 지도부 인사들의 안정성이 고려되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지하활동과 산악생활에 익숙 하면서 노출된 도시 생활을 불안해 하였다. 세째는 혁명 지도부가 도시를 반 혁명의 토양과 혁명의 장애물로 인식 하면서 반 혁명의 온상을 갈아 업고 혁명정권의 기반을 다지려 했던 것이다. 4개 년 계획은 원래 모든 분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 하기위한 계획이었다. 이 계획에 의하면 모든 캄보디아의 농토를 집단 농장화 하여 농업 생산량을 증대 시키고 잉여 생산물을 수출하여 얻은 이익금으로 1차 경공업을 육성시키고 2차로 중공업을 발전시켜 세상에서 하나뿐인 완전한 자립국가를 만들어 1980년까지는 모든 사람이 매일 휴식을 즐기게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계획은 구 소련의 "집단 농장제도" 와 중국의 "대약진 운동" 그리고 북한의 "주체사상" 을 혼합한 공산혁명 정권의 야심찬 계획이었는데, 결국 환상으로 끝나고 말았다. ◇ 폴포트( Pol Pot:1928~1998))는 누구인가?   캄보디아 공산혁명의 지도자 폴포트는 1928년 5월 25일 프놈펜 북부에서 90여 마일 떨어진 캄퐁 톰 (Kompong Thom )주 프랙 스바우브(Prek Sbauv) 마을에서 양부모가 크메르족인 아버지 팬 살로쓰(Pen Saloth)와 어머니 속 넴(Sok Nen) 사이에서 9남매중 여덟번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부농으로 마을의 유지였고 어머니는 자비심이 많아 마을에선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의 본래 이름은 살로쓰 사 (Saloth Sar)이며, 폴포트 라는 이름은 공산혁명 이후 1976년 "민주 캄푸치아" 국 선포와 함께 만든 이름이다. 그의 어린시절은 궁중의 무용수로 일하고 있는 누나의 자취 집으로 옮겨 생활하다 왕궁 근처에 있는 불교사원에 행자승으로 들어가 캄보디아 글과 불교 경전을 공부했다. (당시는 초등학교 과정을 사원에서 거의 담당) 초등학교 시절은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조용하고 착한 학생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초등학교를 맞이고 캄퐁참주에 있는 새로개교한 노르돔 시아누크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훗날 자기의 공산혁명 동반자인 동창생 후님(Hu Nim:폴포트 정권시절 공보부 장관)과 일년 후배인 키우삼판(Khieu Siphan :폴포트 정권의 상징적 국가원수)을 만났다. 또 그는 1948년 에꼴떼끄니끄 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프랑스의 싸뜨 대학(Cite University) 전파전기학과에 입학, 첫 학기를 충실히 끝내고 1950년 그는 사회주의 서클조직에 매료되어 유고슬로비아를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집단노동력의 힘을 느끼고, 20년이 지난 뒤 정권을 잡았을 때 전인민을 동원하여 식량증산운동을 벌였던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살로쓰 사는 공산주의 사상에 깊숙이 빠져들면서 1952년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하였고, 학업 성적 불량으로 장학금이 취소되어 파리의 인도차이나 공산당클럽과 프랑스 공산당 사이를 배해하다가 1952년 12월 공산주의자가 되어 학위도 없이 캄보디아로 돌아왔다. 그는 1953년 8월 프랑스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인도차이나 공산당에 가입 본격적인 캄보디아 공산당 활동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공산주의 사상의 캄보디아 최고의 이론가이며 캄보디아의 호지민 (Ho Chi Minh)에 비견되는 토우 사모쓰( Tou Samouth )를 만난다. 살로쓰 사는 토우 사모쓰를 통해서 공산주의 사상에 한층 정통하게 되고 그가 살해된 후 공산당의 지휘부를 물려 받게된다. 그는 본부에서 정치 학습을 마치고 프놈펜의 좌경단체와 협조하기위해 프놈펜으로 돌아와 가명을 사용하며 활동. 1955년 총선이후 사아누크가 좌경 및 공산주의자 강경탄압을 하자 프놈펜의 사립고등학교 참라온 비치아(Chamraon Vichea)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때가 1956년 초였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와 존경을 받았던 교사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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