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은 줄곧 공산당이 전국 인민을 지도하여
일본인을 물리쳤다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대량의 역사자료에 의하면 중국 공산당은
의도적으로 당시 항일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고,
국민당이 항전하는 틈을 타서 역량을 축적하고 항일전쟁을 방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이 유일하게 참여한 대형 전투는
‘핑싱관(平型關) 전투’와 ‘백퇀(百團)대전’ 뿐이다.
’핑싱관 전투’를 말한다면 중국 공산당은 ‘이 전투를 지휘하거나
주력부대로 참여한 것이 전혀 아니며,
다만 적을 매복 습격하는 보충부대였을 뿐이다.
‘백퇀대전’은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도
당 중앙의 전략방침을 위반했다고 인정한다.
그 후 마오쩌둥과 그가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그럴듯한 전투를 한번도 치르지 않았다.
둥춘루이(董存瑞), 황지광(黃繼光)과 같은
항일 영웅이 나오지 않았으며
다만 소수 고위 군관이 항일 전쟁터에서 사망하였을 뿐이다.
그리하여 중공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기본적인 사망자수 마저 공표하지 못하며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그럴듯한 중공의 항일열사기념비를 찾기도 힘들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항일의 후방에서 이른바
‘산간닝(陝甘寧)경계지역 정부’라는 정권을 건립했는데
지금 말로 한다면 ‘일국양제’에 해당한다.
즉, 국민당 국토 안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 ‘두 개의 중국’을 만든 것이다.
물론 항일전쟁에 열정이 있는 군인, 장교들도 적지 않았지만
공산당 고위층은 항일의 성의가 없었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실력을 보존하였으며
항일 전쟁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발전하고 키워나갔다.
중일(中日) 수교 당시, 마오쩌둥은
당시 일본수상인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중국 공산당은 일본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만일 그 전쟁이 없었다면 중국 공산당은 천하를 얻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자칭
'전국 인민을 지도하여 8년간의 항쟁으로 최후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기극의 진상이다.
반세기가 지난 후 미국에서 9.11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반(反)테러는 세계적인 물결을 이루었다.
중국 공산당은 또 한번 기만술책을 사용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반 테러를 구실로
많은 종교 신앙과, 의견이 다른 인사, 지역, 민족분규 등의 단체를
테러주의로 몰아세웠고, 국제적인 반테러 무드에 편승하여
폭력적인 탄압을 마음대로 행사하였다.
2004년 9월 27일 신화사는 중국 각 성시(省市) 중
첫 번째로 베이징에 반 테러국(局)을 세울 것이라는
『신경보(新京報)』의 소식을 전재하였다.
해외의 일부 친중공 매체들은
“6 10사무실이 반 테러에 가담하다”라는 제목으로
‘6.10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기구’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반 테러국은 파룬궁 등을 포함한 테러조직을
중점적으로 공격하게 될 것이라고 크게 선전했다.
중공은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평화적으로 청원하는 군중들을 테러분자로 규정하고
이것을 빌미로 ‘반테러 특별기동대’라는 무장부대를 동원하여
중국에서 세력이 약한 군중 단체 및 선량한 민중들을 신속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반테러주의’란 명분으로 외부세계의 비난과 관심을 피해 갔다.
마치 예전에 거짓 항일하던 기만수법을 확장했던 것처럼
국제사회의 반 테러주의 노력에 거대한 치욕을 안겨주었다.
-------------------------------------9평 아홉번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