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대해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하나하나 생각을 해보면 모두 타당성이 있는 이론들이다.
하나의 중국론, 대만독립론, 대만정통주의론, 선부론, 중국분열론,
서구식개혁론, 중국식개혁론등등 많은 이들이 떠들지만
다들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구인의 시각은 냉정하고 과학적인 면이 돋보이지만 중국인에 대한
애정같은게 부족하다. 중국인의 시각은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면이 돋보이지만
인정에 끌리기때문에 과학적인 면이 많이 부족하다.
이 두가지 시선을 비판한다면 전자의 시선은 합리적인 방안들이지만 중국인의
자존심과 자부심에 상처를 주게된다. 후자는 중국인의 자존심과 자부심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질적인 방안이 아니다.
중국의 양무운동의 예를 보듯이 중국적인 사고방식으로 중국을 바꿀 수는 없다고 본다.
현재 중국의 혼란은 중국의 아름다운 고유사상이 없어져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
바로 중국인들이 그동안 쌓아왔고, 진행중인 왜곡된 사고방식의 결과물이자 잔재들이다.
물론 중국공산당이 악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중국공산당은 이에 편승했고, 정권유지를 위해 이용했을 뿐이다.
언제인가 이러한 악순환은 끝내야 한다.
물론 중국 고유의 아름다운 미덕은 부활시켜야겠지만
이광요식의 아시아 고유사상을 이용해서 독재를 미화시켜서는 안된다.
전에 내가 올린 글에 나와있듯이 박정희와 이광요의 절대적인 차이점은
이광요는 서구민주주의를 부정했고, 아시아적 정치체제가 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고,
박정희는 서구민주주의를 인정하지만 잠시 미룬다는 입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게 박정희가 이광요보다 뛰어난 점이다.
둘다 경제발전을 이룩한 지도자지만, 이광요는 편견에 사로잡혀 강압적인 통치방식과
지리적, 정치적인 이점을 본 상태에서 쉽게쉽게 나아갔다면 박정희는
여론의 자유를 허용할 수 있는한 최대한 허용하는 선에서
내부반발을 진압하기보다는 싸워가면서 앞으로 전진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탄압도 존재했지만, 지금의 중국같은 나라를 보면 알겠지만
박정희가 마음만 먹었다면 작금의 중국처럼 내부에서 아무소리도 하지못했다.
민주화를 추구하는 정치인이 외국을 들락날락거렸지만,
주활동 근거지는 어디까지나 국내였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요즘들어 일부 중국인들이 서구민주주의를 인정하는 분위기이지만, 아직도
그들 내부에는 중국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틀렸다.
아마 과거의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이 *같은 상황이지만
과거에는 틀렸다.
이런 황당한 생각이 도대체 몇천년을 내려오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이다.
이광요식 방법은 싱가폴같은 도시국가에서나 통하는거지, 중국은 고사하고 대만에서도
통하지않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그 노인네가 중국의 독재를 지지한다.
독재가 없었으면 중국은 망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얼마나 한심한 노인네인가?
이 노인네 생각대로하면 평생을 중국인은 독재속에서 살아야한다.
이제 새로운 중국인들은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새로운 대안을 항상 모색해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