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반(反)’과 ’5반(反)‘
진반과 토지개혁이 주로 농촌 기층을 상대로 했다면
연이은 ‘3반’, ‘5반’ 운동은 곧 도시에서 벌어진 학살 운동이다.
‘3반(反)’은 1951년 12월 중공 내부의 부패간부를 겨냥하고 전개한 것으로,
‘반(反) 탐오(貪汚), 반 낭비, 반 관료주의’ 운동이었다.
당시 부패한 간부들을 처치했을 뿐만 아니라
잇따라 간부들을 부패하게 만든 것은
모두 자본가들이 유혹한 결과라고 여긴 공산당은
그 다음 해 일월부터 ‘5반’을 시작하였다.
즉, ‘반 뇌물증여, 반 탈세(脫稅), 반 국가재산절도, 반 부실공사,
반 국가경제정보절취’ 등 5가지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5반’은 실질적으로 자본가의 돈을 약탈한 것으로
심지어 재산을 빼앗기 위해 목숨까지 해친 것이다.
당시 상하이 시장 천이(陳毅)는
매일 저녁 소파에 앉아 찻잔을 들고는 한가하게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고 한다.
‘오늘 낙하산은 몇명이지?’ 이 질문의 실질적인 의미는
얼마나 많은 상인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렸는가 하는 것이다.
‘5반’ 운동에서 거의 모든 자본가들은 액운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른바 ‘반 탈세’의 경우 광서(光緖)연간 상하이 개항 때부터 계산을 하니
자본가들은 재산을 몽땅 바쳐도 ‘세금’을 다 갚을 수 없었다.
죽고 싶어서 황포강(黃浦江)에 뛰어들려고 해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신을 찾지 못하면 홍콩으로 도망갔다고 하여
가족들에게 계속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건물에서 뛰어 내려 죽을 수 밖에 없었는데
공산당이 시체를 보고 더 이상 박해하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당시 상하이시에서는
고층 건물 양쪽 길로는 누구도 다니지 못했다고 한다.
갑자기 위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에게 압사(壓死)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6년 중국 공산당 중앙 당사(黨史) 연구실 등
4개 부문이 연합하여 편집한 『건국이후 역사정치 운동 사실』
보고에 의하면 ‘3반’, ‘5반’ 중에
32만3천1백여 명이 체포되어 280여 명이 자살 혹은 실종되었다고 한다.
1955년 반후펑(反胡風) 운동 중에는
5천여 명이 연루되어 5백여 명이 체포되고 60여명이 자살했으며
12명은 비정상적으로 사망하였다.
그 후 ‘숙반(潚反)’ 운동 중에 2만천여 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고
4천3백여 명이 자살 혹은 실종되었다.
----------------------------------------------9평 일곱번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