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화대혁명, 6.4부터 파룬궁까지
문화대혁명은 1966년 5월 16일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이 기간을 중국 공산당도 ‘10년 대재앙[浩劫]’ 이라고 부른다.
후야오방(胡耀邦)은 나중에 유고슬라비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약 1억 명이 연루되었는데 중국 인구의 10분의 일을 차지합니다.’라고 말했다.
중공(中共) 중앙 당사연구실 등에서 편집한
『건국이후 역사정치 운동 사실』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84년 5월 중국 공산당 중앙이 2년 7개월간의 전면적인 조사와
사실 확인 및 새로 통계한데 따르면
문화대혁명 당시에 420만 명이 체포되어 심사 받았으며,
172만8천여 명이 비정상적으로 사망했고,
13만5천여 명이 현행 반혁명 죄로 사형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무장투쟁에서 23만7천여 명이 사망했고 703만여 명이 불구가 되었으며
7만천2백여 가정이 완전히 훼멸되었다.”
사람을 때려죽인 것 외에도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국에서는 자살 열조가 나타났다.
많은 저명한 지식인, 예를 들면 라오서(老舍), 보레이(傅雷),
젠버짠(翦伯贊), 우커우(吳口), 추안핑(儲安平) 등은
모두 문화대혁명 초기에 자살의 길을 걸었다.
문화대혁명 시기는 중국 역사상 ‘좌경’이 가장 광분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살인은 대개 혁명성을 과시하는 표현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계급의 적’에 대한 살인은 지극히 참혹하고 야만적이었다.
그러나 ‘개혁 개방’은 정보 전달에 거대한 발전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해외의 많은 기자들이 베이징에서
직접 1989년의 6.4 유혈사건을 보았으며
탱크가 학생을 쫓아가 몸을 짓뭉개고 피투성이로 만든
도살 장면을 녹화하여 해외 텔레비전에서 방송하였다.
10년 후, 장쩌민은 1999년 7월 20일 파룬궁 탄압을 시작하였다.
2002년 연말 대륙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7천여 명이 각지 구류소, 노교소,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참혹하게 치사 당했다고 한다. 하루 평균 7명의 수련생을 학살한 셈이다.
지금 중국 공산당이 살인하는 숫자만 본다면,
걸핏하면 백만 내지 천만 명을 죽였던 과거보다 심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는 사실상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다.
하나는 인민들이 중국 공산당의 당문화에 이질감을 느껴
더욱 냉소적으로 되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 가지는 중국 공산당의 거대한 횡령과
국고 도용으로 이미 중국 경제가 수혈(輸血)형 경제로 되어
외래 자본이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사회 안정을 보증하는 중요한 지주(支柱)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6.4 이후에
서방국가들이 취한 경제제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 시기에 공개적으로 살인을 한다면
외국 자본이 겁에 질려 철수할 것이며
결국 공산당 통치에도 위협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암암리에 하는 살인은 멈추지 않았으며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피의 흔적을 극력 은폐하고 있을 따름이다.
-------------------------------------------9평 일곱번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