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은 당성(黨性)에 의거하며
도의(道義)적으로 결합한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최고 지도자에 대한 당원 및 당 고급간부들의 충성심이 어떠한가가 문제로 된다.
그러므로 당내에서도 살인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최고 독재자가 누구를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 사람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공산당의 내부 투쟁은 아주 유명하다.
러시아 공산당의 경우 처음 두 차례 공산당 정치국 위원을 지낸 사람들은
레닌이 병으로 죽은 후, 스탈린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형되거나 자살했다.
또 당시 5명의 군(軍) 원수(元帥) 중에서 3명이 총살되었으며,
5명의 최고 군사령관 중 3명이 총살당했고,
2급 군사령관 10명은 전원이 총살당했다.
85명의 군단장 중 57명이 총살당했고 195명의 사단장 중에서 110명이 총살당했다.
중국 공산당도 일관적으로
‘참혹한 투쟁, 무정(無情)한 타격’을 주장해 왔다.
이런 투쟁과 살인은 단순히 당외(黨外)를 겨냥한 것만이 아니다.
일찍이 장시(江西)에 있을 때,
중국 공산당은 AB단(團)을 죽이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에는 전투를 할 만한 사람이 몇 남지 않았다.
옌안(延安) 시기 정풍(整風)활동,
정권을 잡은 후 가오강(高崗), 라오수스(饒漱石),
후펑(胡風), 펑더화이(彭德懷)를 숙청했으며,
줄곧 문화대혁명에 이르기까지 공산당 내부의
원로 당원들은 남은 사람이 거의 없다.
심지어 중국 공산당 역대 총서기들도 뒤끝이 모두 좋지 않았다.
류샤오치(劉少奇) 전(前) 국가주석은
일찍이 마오쩌둥에 이어 중국의 제2인자로 군림했으나
아주 비참하게 일생을 마쳐야 했다.
그의 70세 생일 날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周恩來)는
특별히 왕둥싱(汪東興)을 시켜 류샤오치에게 생일 선물로 라디오를 주었다.
목적은 그에게 공산당 제8기 12중 전회(全會)의
다음과 같은 공식보고[公報]를 듣게 하려는 것이었다.
“반역자, 내부 간첩, 노동자의 적 류샤오치를 영원히 출당시키고 계속해서
류샤오치와 그 동료들의 반당(反黨), 반국가(反國家) 죄행을 청산하자!”
류샤오치는 당시 정신적인 충격으로 단번에 무너졌다.
그날부터 그의 병은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장기간 침대에 고정적으로 묶여 있어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목, 등, 엉덩이, 발뒤꿈치 부위에는 고름이 흐르는
욕창(팂瘡)이 생겨 통증을 참기 힘들었다.
그가 통증이 너무 심하면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으므로,
그를 지키던 자들이 그의 손에 단단한 플라스틱 병을 쥐여주었다.
그가 죽을 때 양손에 쥐고 있던 두 개의 플라스틱 병은
마치 조롱박처럼 가운데가 움푹 패여 있었다고 한다.
1969년 10월 류샤오치의 온몸은 썩어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고
장작처럼 말라 약간의 숨만 붙어 있었다.
당에서 특파한 요원이 목욕은 커녕 몸조차 움직이지도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옷도 갈아입지 못하게 했다.
도리어 그를 발가 벗겨서 이불에 둘둘 말아 비행기에 태워
베이징에서 카이펑(開封)까지 싣고 가서는
견고한 토치카 형태의 지하실에 가두어 놓았다.
그가 고열로 괴로워할 때면 약을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사는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죽을 때, 류샤오치는 이미 사람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으며,
헝클어진 백발머리는 두 자나 자라있었다.
이튿날 밤 열성 전염병 환자라고 화장하면서
그의 이불, 옷들을 몽땅 불에 태워버렸다.
류의 사망기록카드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성명 : 류웨이황(劉韋黃), 직업:무직, 사인:병사(病死)
공산당은 이렇게 당당한 국가 주석마저도 박해하여 죽일 수 있으며,
게다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죽일 수 있다.
-------------------------------------------9평 일곱번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