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즈신(張志新)
장즈신의 딸 린린(林林)은 1975년 초봄에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선양(瀋陽)법원의 사람이 큰소리로 말하기를
“당신의 모친은 매우 반동적이고 개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위대한 지도자 마오(毛) 주석을 완고하게 반대하며,
백전백승의 마오쩌둥 사상을 반대하고,
마오 주석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노선을 반대하여, 수많은 죄를 지었다.
정부에서는 형벌을 가할 생각인데
만약 극형으로 처리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
나는 놀라서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진정하면서 눈물을 참았다.
전에 아버지가
“남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어머니와 경계선을 잘 가르지 못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나를 대신해서 대답하셨다.
“만약 확실히 그런 정황이라면 정부가 어떻게 처리해도 상관없습니다.”
법원 사람이 또 묻기를
“극형으로 처리하면 시체를 가져갈 것인가?
장즈신의 옥중 물건들은 당신들이 가져갈 것인가?”
내가 고개를 숙이고 말을 하지 않자 아버지가 대신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현(縣) 초대소에서 나오자마자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하여 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으며 간신히 집으로 오셨다.
밥도 하지 않고 집에 남은 옥수수 떡 하나를 두 조각내서
나와 동생에게 주시면서 “먹고 빨리 자거라”라고 하셨다.
내가 조용히 바닥에 누워있자 아버지는 혼자 작은 의자에 앉아
등불 아래에서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셨다.
이윽고 아버지는 우리가 잠이 들었다고 여기셨는지 천천히 일어서서
선양에서 가지고 온 상자를 여시고는 어머니 사진을 꺼내 보셨다.
사진을 보시던 아버지는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단번에 아버지 품에 안겨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나를 다독거리시면서 “이러지 말거라. 옆집에서 들으면 안 된다.”
울음소리에 동생도 깨어나자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품에 힘껏 끌어 안으셨다.
이날 저녁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지만, 마음껏 소리 내어 울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