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파룬궁의 높은 도덕적 표준을 중공은 감당하지 못해
1989년 ‘6.4’이후, 중공의 의식형태는 철저히 무너졌다.
특히 1991년 8월 소련공산당이 와해된 것과
잇따른 동유럽의 거대한 변화는 중공에게 극도의 공포와 압력을 주었다.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형세는 공산당 통치의 합법성과
전에 없던 생존의 도전을 받게 하였다.
이때 중공은 이미 마르크스-레닌-마오쩌둥주의의
원래 교지(敎旨)로는 당원들을 단속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전면적으로 부패를 통해 당원들의 충성심을 얻는 데로 방향을 바꾸었다.
다시 말하면, 누구나 당을 따라가기만 하면
당은 탐오(貪汚) 등의 방식을 통해
당원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이익을 얻게 허용하였다.
특히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南巡) 이후,
중국은 관청 브로커에서부터 부동산과 주식 투기까지 횡행하였고,
첩을 얻으며, 도처에서 밀수를 하고,
음란물ㆍ도박ㆍ마약이 만연하였다.
비록 ‘훙둥현(洪洞縣) 안에는 좋은 사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민중들은 중공의 반(反)부패 운동을 믿지 않으며
중간, 고급간부의 부패비율이 절반이상을 차지한다고 여긴다.
이때 파룬궁 수련생들이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면서 펼쳐보인 도덕적인 풍모는
민중들에게 아직까지 남아있던 내심의 선량함을 움직였으며
억만 민중들이 존경하고 수련에 참여하게 하였다.
파룬궁이라는 이 도덕적인 거울은
중공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비추었던 것이다.
---------------------------------------------9평 다섯번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