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파룬궁의 발전과 관리방식이 중공의 질투 자아내
파룬궁의 발전방식은 사람이 사람에게 전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였으며
취한 관리방식은 오고 가는 것이 자유롭고 느슨한 관리였다.
이는 중공의 엄밀한 조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중공의 매주 한 차례나 여러 차례 정치학습과 조직생활은 유명무실하였다.
공산당의 의식형태에 대한 당원들의 일체감은 거의 영(零)에 가까웠지만
파룬궁 수련자들은 자각적으로 ‘진선인’을 실천하였다.
동시에 파룬궁의 심신건강 개선효과는
수련인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했고,
수련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리훙즈(李洪志) 선생의 저작을 학습하게 했으며,
자비(自費)를 들여 파룬궁을 널리 전하게 하였다.
불과 7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파룬궁은 무(無)에서부터 시작하여 1억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중국의 거의 모든 공원에서는 아침마다 파룬궁 연공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공산당은 파룬궁이 중공과 군중을 놓고 ‘다툰다’고 여겨 ‘종교’라고 하는데,
사실 파룬궁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일종의 문화이며
중국사람들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조상들의 문화와 전통의 뿌리였다.
장쩌민과 공산당이 파룬궁을 이렇게 무서워하는 이유는,
이런 전통적인 도덕이 일단 군중과 하나로 융합하는 날이면
어떠한 힘도 그 신속한 확장추세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산당은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 백성들의 이런 타고난 전통을
수십 년 동안 억지로 단절시키거나 왜곡시켜 왔다.
하지만 다시 새롭게 전통을 만회하는 자체는
바로 역사의 선택이자 광대한 군중들이 고난을 겪은 후 스스로 선택한 회귀였다.
이런 필연적인 선택의 결과는 바로 시비를 똑똑히 가리고 사악함을 버리는 것인데,
다시 말하자면 공산당이라는 한 세트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과 버림이었다.
이것은 중공의 사혈(死穴)을 찍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특히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 수가 중국 공산당 당원 수를 초과했을 때
중공의 마음속 공포와 질투는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중공은 사회에 대해서는 끝까지 통제해 왔다.
농촌에는 ‘마을마다’ 공산당 당지부가 있고,
도시에서는 당지부가 가도(街道) 판사처까지 깊이 들어와 있으며,
군대와 정부, 기업의 가장 뿌리층까지 모두 당조직이 있다.
이런 절대적인 독점성과 배타성은 중공이 정권을 유지하는 주요수단이며
『헌법』에서는 ‘당의 가르침을 확고하게 따른다’는 미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자는 분명하게 공산당의 가르침보다는
‘진선인’을 표준으로 할 것을 더 원했다.
중공이 볼 때는 이는 절대로 접수할 수 없는 것이며
바로 ‘당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9평 다섯번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