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인도네시아)=조현숙 기자】지난 12일 오전 6시께(현지 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에 위치한 노동부 청사앞. 울상인 청년 몇몇이 정문 근처에 무리지어 서 있다.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인 청사에는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정문 앞을 지나가는 공무원 을 붙잡고 하소연할 `지푸라기 같은`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모두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터무니 없이 비싼 급행료를 치렀지만 한국행이 불가능해진 이들이다. `모든걸 다 잃고도` 공무원에대한 경직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항의도 한번 크게 못하고 있다..직접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아지즈(30) 씨가 친구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다. 그는 "한국에서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이후 모든 걸 다 잃고 노동부 앞에서 가슴졸이며 서성이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이제 흔한 풍경이 됐다"고 말했다.
▶살인적인 급행료=한국행 희망 인도네시아인들이 현지에서 입은 피해 사례는 다양하다. 친구 둘과 함께 13시간 버스를 타고 자카르타로 올라온 이브노 이쓰따띠(32) 씨가 먼저 답답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한국의 고용허자제에따라 근로자로 취업하기 위해 여기 노동부 공무원 S모 씨에게 5명 송출비용으로 지난해 두번에 걸쳐 총 1억3000만 루피아(한화 약 1460만원)를 냈습니다. 그 공무원 개인 계좌라는 게 미심쩍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우리들 중 2명은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남은 세 명 가운데 한 명만 겨우 돈을 돌려받았습니다. 제가 낸 돈은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꼬박 4년 동안 일해 모은 돈입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그나마 자기 돈을 돌려 받은 아흐맛 고나시스(30) 씨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한국에 가지도 못했는데 225만 루피아(한화 약 25만원)를 진행 비용이라며 떼고 받았다"면서 "여기서 먹지 않고 두 달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에서 온 라트모노 라띠쁘(29) 씨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그는 "한 달이면 한국에 갈 수 있다는 노동부 공무원 말만 믿고 3명이서 1억1000만 루피아(한화 약 1230만원)을 냈다"면서 "친구 두 명은 모든 절차를 마치고 한국에서 일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인 교육을 받고 있지만 나의 경우 한국에 가지 못하게 됐는데도 돈 한 푼 돌려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 했다. 그는 또 "항의하기 위해 은행에서 영수증을 끊으려고 하지만 은행에서 이유 없이 거부하고 있어 은행과 노동부 공무원과의 결탁까지 의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트모노 씨는 한국행 비용 마련을 위해 고향 땅, 오토바이 등을 팔고 고리의 빚도 냈다.
왈루요 란얀(35) 씨는 금전적 피해는 없지만 절차상 문제로 곤혹을 겪고 있다. "지난해 9월 30일 처음 접수하고 기다린 끝에 지난 5월 10일 표준 근로 계약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법 체류자였다며 입국사증(VISA) 발급을 거부 당했습니다. 불법 체류자 단속 기간에 자진 신고하고, 출국 기한 이전에 한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고용허가제를 통해 다시 들어올 수 있다는 한국 정부측 얘기만 믿고 있었는데……. 1년 간 기다린 시간은 어떻게 하냐"며 왈루요 씨는 문제가 무엇인지 답답해 했다.
▶신규 고용허가 중단이 능사인가=고용허가제는 당초 정부대 정부로 계약을 맺으면 민간의 인력 송출업체의 비리를 막을 수 있다고 공언했다.그러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전형적인 탁상행정이었다. 현지 공무원들의 비리가 워낙 뿌리 깊어서 현지 근로자들의 피해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취업하는데 드는 비용은 항공권비, 수속료 등 모두 합해 950만?1050만 루피아(한화 100만?110만원) 정도. 물론 이는`공식적` 수치다. 높은 경쟁률을 뚫기 위한 마음에 현지 한국행 희망자들이 내는 돈은 공식 비용의 2?3배, 많게는 9?10배로 치솟고 있는 게 현지 근로자들의 하소연이다. 한국 노동부는 지난 6월 인도네시아인에 대한 신규 고용허가를 중단했다. 사증을 발급했지만 입국이 3개월 이상 늦어졌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발표일뿐 실제로는 송출비리가 걷잡을수없는 수준에 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지에서의 분석이다. 에디 쁘로안띠(30) 씨는 "우리처럼 중간에 돈을 떼이고, 표준 근로 계약서까지 받았는데 급행료 부족으로 한국에 가지 못하는 사례가 정말 많다"면서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어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피해를 막기위한 조치가 없겠느냐"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