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 거주 재일교포는 80만 정도 이고 이중 17만은 일본으로 귀화 했으며, 나머지는 한국국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총련계는 요즘 거의 나락으로 빠지는 중이고, 그나마 8%도 안됩니다.
최근에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로 인해 여론도 나빠지고 있고, 가끔 해꼬지도 당하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제일교포는 일본내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아 왔습니다.
또한 조선족 처럼 집단군락을 이루어 살지도 않았으며, 일본인들 틈에서 살았고, 조선학교에 보낼 생활패턴이 안되다 보니 2세 3세등은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본은 재일교포들의 귀화 종용을 위해 지문날인, 각종 입사 시험 거부등등을 만들어 재일교포를 귀화 시키기 위해서 각종 차별을 취해 왔으나 대부분의 재일교포는 일본 귀화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하고, 개인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일부 귀화한 동포들은 2세들이 일본에서 차별받는것이 안타까워 먹고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귀화를 했으나, 현재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재일동포 3세 4세들이 한국인이라는것을 자랑스러워 한다는것을 최근 조사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3세 4세들은 한국고유의 전통문화 부흥운동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일교포가 얼마나 한국인으로서, 한국민으로 자랑스러워 하는지는 아래의 예를 보면 알수있습니다.
1970년 박종석 사건입니다. 히타치 입사에 합격했으나 한국인이라고 합격취소 당하고, 히다치로 부터 일본으로 귀화하면 합격시켜주겠다는 요구를 물리치고, 당당히 한국인 임을 주장하고 소송을 하여 승소했습니다.
1976년 김경득 은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한다음, 일본정부로 부터 일본으로 귀화하면 최종합격시켜 주겠다는 제의를 뿌리치고, 소송해서 승소 하고 결국 일본법을 고쳐서 재일교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년 고창중군이 일본 전력회사(이 일본 회사는 공기업이며 준공무원임)에 합격했으나, 한국인이라고 합격취소 하고, 귀화 하면 합격시켜주겠다는 것을 뿌리치고, 결국 소송에서 승소하여 재일 교포가 일본의 준공무원의 최초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지문날인도 거부하여 결국은 지문날인도 폐지 시켰습니다.
재일 교포는 세계에 보기 드문 편견과 차별 속에서 재일 교포들은 조금도 굴하지 안이하고 꿋꿋이 자기의 정체성을 유지하여 왔으며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워온 참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한국교포인 것입니다.
MK택시회사 윤봉식, 재팬야후 손정의, 롯데 등등 많은 성공한 기업가가 있으며, 그들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합니다.
적어도 재일교포들은 중국 조선족 처럼 자랑스런 중국공민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재일교포의 이러한 한국인 정체성을 이해할 조선족은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