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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부모를 잃은 재중동포 아이들의 부모로 살고 있는 남상희 원장(50)과 이현자(46)씨 부부. 이들은 중국 룽징(龍井)에 ‘희망원’을 세우고 고아들의 마음에 사랑의 씨앗을 뿌려가며 큰 행복감을 맛본다.
엄마 아빠의 생일을 기억하고 폐품으로 만든 인형과 열쇠고리,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을 수줍게 내미는 아이들,살그머니 다가와 먹을 것을 엄마 아빠의 입에 쏙 밀어넣고 도망가는 곰살궂은 아이들,육체적인 노동으로 지쳐 있을 때 품에 안기며 미소 짓는 사랑스런 아이들…. 이젠 모두 피붙이다. 희망원엔 남 원장 부부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54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남 원장 부부가 룽징에 온 것은 1998년 가을이었다. 인생의 후반전을 또 다른 사명을 위해 살고 싶었던 이들에게 한국의 동양복지재단이 룽징에 세우는 보육원 운영을 맡겨온 것.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온 가족이 흩어져 살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남 원장에겐 더없이 의미 있는 일이었다. 부부는 망설이지 않고 중학생이었던 딸 요한나와 룽징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룽징시가 제공한 부지 위에 건축되는 복지원 건물을 바라보며 룽징시 민정국의 협조를 얻어 지역 학교를 순회하며 부모를 잃은 재중동포 아이들을 찾아냈다.먼저 9명의 아이들을 아파트로 데려왔다.
평소 먹는 밥상에 수저 몇 개만 더 놓으면 될 것 같았지만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 무작정 데려왔지만 제대로 먹이지 못할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 또 추운 겨울에 난방을 제대로 할 수 없어 한방에 모여 자면서 눈물을 흘릴 때도 많았다.
그러나 “하늘을 처다보렴. 너를 보고 웃고 있잖니. 네가 웃으면 하늘도 웃는단다.”라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다행히 그늘졌던 아이들의 표정이 점차 밝아져 갔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9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가족은 금세 34명으로 늘었다. 더 이상 큰집을 구할 수 얻는 지경에 이르렀다.
희망원은 2001년 봄에 완공됐다. 남 원장 부부는 ‘꿈이 있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꿈이 있으면 역경을 이겨낼 힘이 생기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시설 명칭도 희망원이라고 지었다.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이들의 소망대로 희망원은 5채의 가정집으로 지어졌다. 이들 집에는 방 주방 거실 목욕실이 갖춰져 있다. 남 원장 부부는 부모 사랑이 가장 필요한 취학전 유아들과 함께 산다. 주말에는 나머지 4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교대로 남 원장 부부와 지내며 엄마 아빠의 사랑을 차지한다.
남 원장은 3년 동안 룽징시 정부와 줄다리기 끝에 아이들이 초등?중등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고아들의 교육을 책임질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권리를 찾아주고 정부의 인식을 개선시키고 싶었어요. 교사 교장 시장 당서기 등을 만나서 개선을 요구했어요.”
그는 몇해 동안 학교에 학비를 내지 않고 개선을 요구했지만 사실 학비보다 더 많은 돈을 학교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결국 그의 끈질긴 노력에 정부는 고아들의 학비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또 남 원장은 요한나(청하대 영문과4)양을 키우면서 한번도 찾지 않았던 학교를 희망원 아이들을 위해선 수시로 찾아 간다. 아이들이 혹시 ‘고아’란 말에 상처를 입을까봐 학기초에 담임교사를 찾아가 ‘고아’란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또 아이들이 학교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그냥 넘기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잘못했는데 우리 아이들만 부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판단될 경우 담임교사는 물론 교장 선생님까지 만나서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그래도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사과를 받아냅니다.”
하지만 이런 세심한 배려는 정작 요한나에게는 베풀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나 친딸 맞아요?”라고 물었던 요한나는 불평 한 마디 없다. 오히려 방학 때마다 희망원에서 엄마 아빠의 일을 돕는다. 올 여름에도 주방일을 도맡았다. 남 원장은 후원금으로 희망원을 어렵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딸의 학비를 대줄 수 없었다. 요한나가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있어 늘 미안한 마음이다.
남 원장 부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로 불리기 때문이란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저희가 아니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로 불린다는 게 이일을 멈출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아이들에게 다시는 버림 받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요.”
중국 지린성 룽징시 언덕위에 자리한 희망원 마당에 서면 옛 선구자들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독립군들의 연락장소였던 일송정이 보이고 그 밑으로 해란강이 흐르는 이곳에서 재중동포 고아들에게 한국인이란 정체성과 꿈을 심어주는 남 원장 부부. 이들은 아이들의 꿈이 이 땅에서 좋은 열매를 맺길 바랄 뿐이다.
“꿈이 있다는 것은 삶의 희망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곳은 아이들의 꿈터랍니다.”
이지현기자
국민일보 200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