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체류자 처리의 이중잣대
[경향신문 2005.02.23 17:53:08]
같은 불법체류자라도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출신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반면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출신들은 강제출국 등으로 엄격하게 처리하는 이중잣대 실태가 정부 공식자료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인종이나 국적을 살펴 사람을 차별대우하고 있는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법무부는 “개도국 출신들은 출국권고를 해도 잘 지키지 않고 도주하는 경우가 많아 강제출국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외국인 당사자들의 인권문제는 고려할 것도 없이 업무 효율만 추구하면 된다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도 엿보인다.
태국 여성노동자 8명이 액정 모니터 부품 제조공장에서 근무하다 노말헥산에 중독돼 속칭 ‘앉은뱅이병’에 걸린 사실이 밝혀져 사회문제가 된 것이 불과 한달 남짓 전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착취해도 예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는 언제라도 터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실제로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체불임금이 있어도 진정서를 내지 못하고, 산재를 입어도 산재보상을 신청할 수조차 없다고 한다. 진정·신청과 동시에 관계당국에 통보되고 이는 곧 강제추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들과는 달리 선진국 출신들은 이 땅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가. 이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불법체류 신분의 적지 않은 백인들이 버젓이 학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어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터이다.
미국에 입국하는 데 한국인들이 차별을 받는다거나, 재일교포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이내 흥분을 참지 못하는 것이 우리 한국인이다. 그런 한국인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매몰차게 대하기 일쑤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같은 ‘두 얼굴’의 추한 모습을 갖고 있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