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의 글은 지도자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박정희라는 지도자가 질적으로
김대중, 김영삼(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박정희의 국부 건설 프로젝트에 사사건건 반대) 등과 본질적으로 차원이 달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리가 최고 일까요? 13억 중국인이 토론해도 이창호 하나를 이기지 못합니다. 사실 박정희 대통령을 좀 아는 사람들은 다른 정치인들이 대부분 쓰레기 들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 잘났다고 떠들어도 그런 자들 천명 만명을 모아 놓아도 박대통령 하나만 못하지요.
혹 그가 너무 권위주의적이여서 90년대나 2000년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이지요. 박정희 대통령은 각 시대적 상황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했던 사람입니다. 아니, 시대를 한발 앞서 나갔지요.
예를 들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때 김대중씨가 우리나라에 무슨 고속도로가 필요해서, 자동차 있는 몇사람 팔도유람하기 좋겠하느냐며 비난했고, 박대통령은 우리나라도 대망의 80년대엔 각 가정마다 자동차를 가지게 되는 날이 올것이라고 했죠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것이 분명했지요. 모든 돌아가는 상황을 꽤뚫고 있었고, 언제나 현황을 점검했기에 국민들은 국가경영에 대해 지금처럼 염려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죠. 믿음직한 대통령 하나가 모든것을 알아서 잘 했기 때문에 아직 국민 다수가 가난에 허덕이며 글자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문맹자가 많은 시대에 국민의 역량이 부족했지만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지금처럼 대부분이 잘배우고 똑똑한 시대, 국민 하나하나의 수준이 발전한 시대에 정체에 가까운 수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아직도 국민들은 '지도자'가 무엇인지 모르고, '지도자의 중요성'을 도외시 하고 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죽자 60~80년대의 성장이 자신들의 노력 때문이라고 오만하게 굴었고, 지도자가 누가 되건 발전이 될 줄 알았죠. 결국 그들이 자신들의 손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염려했던 김영삼씨와 김대중씨를 선택했고, 그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까지 3번 연속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선택했습니다.(물론 그 사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감히 이 나라 국민들의 '지도자'-그들에겐 지도자라는 숭고한 단어를 쓰기 거북하다. 그들로 인해 '대통령'이라는 단어는 가장 형편없는 인간 중 한명의 의미가 된다- 가 되겠다고 후보로 나섰던 자들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고 거의가 형편없는 인간들 이였지만)
당연 박대통령이 집권했다면 97년 이전의 국민들 처럼 대다수는 IMF라는 말을 듣지 않고 이 세상을 살다 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극심한 양극화도 없었을 것입니다. 박정희 시대에는 전국에 마땅히 들어갈 만한 공장도 없고, 남녀 노소,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까지 인구의 대부분은 시골에서 무위도식하며 지내야 했지요. 수백만의 희망없던 실업자들은 박정희 시대를 거치며 완전고용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염려대로 김영삼 김대중씨가 집권했고, 지난 10여년 사이 극심한 양극화가 이뤄져 수만명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한 것은 제하고 라도, 이제는 서민들의 경우 거의 계층 이동이 어려운 희망없는 시대에 살게 됐습니다. 만약 이게 인권이라고 한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이 나라에 아사를 몰아내고 매우 높았던 이 나라의 유아 사망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수백만명의 생명을 살려낸 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몇 일전 미국 신문에서 한국의 돌잔치를 세계적으로 특이한 한국만의 풍습이고, 그것은 과거 한국의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기사가 있더군요) 또 한국의 빈둥거리던 남자들을 모두 일터로 가서 일하게 만들어서 여성의 인권을 신장한 사람이지요. 과거 못살았던 시대에는 여성들이 가장 비참한 시절을 보내야 했지만(현재도 마찬가지이고 미래에도 마찬가지 이며, 전세계 모든 나라에 시대를 초월하여 적용되는) 그의 집권 이후 여성은 떠 받들어집니다.(결코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모를 해서, 또 민주화 시위를 해서 여성들의 삶이 이렇게 좋아지지는 않았던 것인데....이 문제를 소홀이 하거나 문제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이라서 싫다는 여성들이 있지만...분명히 말하지만 여성부가 생기고 여성 정치인에 대한 비례의석이 생겨서 여성의 인권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며, 박정희 시대를 거치면서 여성의 인권은 획기적으로 변했고, 당시 이미 잘 살았던 여자들은 이미 당시부터 지금과 같이 떠받들어졌고 반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더욱 나라가 더 살게 된다고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은 있게 마련이며 그런 집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여성들은 결코 평균적인 수준의 인권이나 여권 신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죠....따라서 특별히 박대통령이 여권이나 인권을 신장시켰다기 보다, 그의 시대를 거치면서 국가가 잘 살아졌기 때문에 이후에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반면 민주화 민주화 입으로만 떠들었던 자들은 실질적으로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하는데,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고 국민의 인권이 신장되는데 전혀 기여한 것이 없지요. 그런 자들을 이런 숭고한 의미에 대비시킬려고 하니 구역질이 납니다.)
박대통령이 집권하던때 한국은 100위권의 국가였다가 박대통령이 18년간 집권하는 사이 세계 18위 국가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80년대 말 3저 현상과 함께 경제력에 있어서 세계 12위 권의 국가가 됐지요. 왜냐하면 그 3저 현상이라는 것도 박대통령 시절에 엄청난 중화학 시설을 지어놓지 않았다면 우리가 혜택을 보기는 커녕 일본이 대부분의 혜택을 가져갔을 것이기 때문이죠.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고, 80년대의 호황은 70년대 궁핍속에서도 선진국도 부럽지 않은 대규모 중화학 시설을 건설했기 때문이죠. 사실은 지금도 경제가 그 나마 돌아가는게 거의 수출 때문인데 그때 지어놓은 시설과 그 시설들이 더 발달하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 결과지요. 그러나 지난 90년대 이후 15년간 한국은 거의 그 자리에 맴돌고 있습니다.
본인이 대략 판단하더라도 박대통령이 15년만 더 집권했다면 2005년 현 시점에서는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다음의 세계 5강 이였을 것이며(박통의 집권기간의 역량으로 여전히 그 중에서 가장 발전 속도가 빠른), 10년을 더 집권했다면 우리 앞에는 영국이 추가됐을 것입니다. 5년을 집권했다면 이태리와 중국이 추가 됐을 것이고, 만약 더 집권하지 않고 1026때 돌아가셨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캐나다나 스페인정도에 뒤쳐져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세계 7~8위권 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김영삼씨와 김대중씨 같은 부류가 집권하지 않고 1026으로 박대통령이 죽었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현재 한국은 경제력에 있어서 지난 15년 가까이 11~13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박대통령께서 친히 김영삼씨와 김대중씨가 집권하여 어떻게 국가적, 국민적 손해가 발생한다고 염려를 많이했지요. 무엇보다 그런 싸구려 찌질이들을 정치 실력자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못 마땅했는지 "차라리 자신의 경쟁자는 김일성"이라고까지 말합니다.)
516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던 1961년 한국은 기술도 자본도 자원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필리핀 국민소득 1인당 170 달러, 태국 220 달러 등 일때, 한국은 76달러이었다. 한국 밑에는 인도만 있었다.
61년의 고작 몇 천만 달러에서 이윽고 2004년 우리나라 수출이 2,500억 달러를 돌파했다.
2,500억 달러란 남미 38개국의 2003년도 총수출 2,119억 달러및 아프리카 전체의 1,725억 달러보다 많은 규모다. 1인당 수출 실적으로 환산하면 5,200달러로 중국의 400달러보다 13배, 러시아의 1000달러보다 5배에 달한다. 또 일본의 1인당 3,300달러, 미국의 2,600달러보다도 훨씬 많다. 이로써 1964년 1억 달러 달성 이후 40년간 연평균 21%라는 경이적인 수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이건 남한 만의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 우리 국민 자체가 훌륭해서라면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북한에서도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어야 했다. 사실은 본래 훌륭한 국민이였다면 과거서 부터 식민지 일 필요도 없이 잘 살았을 것 이므로 애초에 기적일 필요도 없다.
그들은 60년대 까지는 식민지 시절 부터의 여러 시설들로 인해 월등히 앞서 있었고 더욱이 70년대 초 까지 1인당 소득에서 한국을 앞서있던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한국에 10배 이상 차이가 나도록 뒤쳐졌고 심지어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고속 성장을 하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90년대 중반 이후 어이없게도 300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해 인간으로써 가장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일찍이 어떤 참혹한 시대에도 없었고, 민족 역사적으로 일제 식민지 시절보다 더 비참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만약에 한국이 여전히 가난한 나라였다면, 그리해서 516 이전의 변변한 시설 하나 없는 혼란속의 가난한 한국이였다면 세계 사람들은
"한민족은 본래 과거서부터 능력이 부족하고 게으러서 나라가 가난하였는데 나라가 둘로 갈려도 어쩔수 없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이구나" 하고 민족 전체가 조롱을 당했을 것이다.
현재 한국은 6~70년대 기적을 이루던 세대의 후손이지만 기적은 고사하고 10여년 전부터 서서히 성장률이 떨어지더니 이제는 돌이킬수 없이 경제적 침체를 거듭하고 있다. 성장률에서 미국에도 뒤지고 심지어 일본에게도 큰 격차로 뒤 쳐졌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김영삼씨와 김대중씨와 노무현씨까지 이들은 과거 박정희 정부의 하는 일에 온갖 불만을 가지고 하지 말라 반대했던 부류들 아닌가? 그리고 그들 정부 밑에서 실세를 하고 고위직에 오른 자들이 대부분 그들과 함께 투쟁이랍시고 시위에 참가했던 자들이 아닌가? 6,7,80년대 묵묵히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 정부 정책을 총괄하는 실무자가 된 것이 아니고 그때 배우기 보다는 거리로 뛰쳐나간 투쟁가들이 됐다는 것은 그들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고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다. 투쟁가들은 투쟁가로 끝나야 했다. 그들의 임무는 거기서 끝이였다. 그리고 대신 묵묵히 배우고 실력을 기른 자들이 정책 당국자가 되어야 했다. 투쟁가들은 그 때의 행동 만으로 나름대로 평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 전면에 나서고 그들 자신들에게 매우 불행하게도 정권을 연거푸 잡게 됨으로써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그 형편없는 모습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어떻게 머리가 비고 국정운영에 대한 기본인식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아직 자신들이 힘이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당시에 그들의 시위와 투쟁등의 행동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단정적으로 평가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반 대중의 머리로 판단하기에는 명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 일부중에 그들을 지지하고 당시 정권에 반대했던 자들의 의견이 옳은 것이라고 말 하는 것은 당시로써는 용인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결과가 나온 마당에 박정희 정부의 정책들은 일본의 경제 성장을 뛰어 넘어 세계 최고의 경제적 성공을 이루는 결과를 보여줬다.
(혹시 '한류열풍'이 한국 배우들이 특별히 잘생기고 특별히 연기를 잘해서라는 생각을 한다면 이 생각도 고칠것을 당부한다.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솔찍한 말로는 국민 전체로는 잘 모르겠지만 순수하게 배우만을 비교한다면 동남아나 중남미가 더 잘 생기고 예쁜 경우가 많다. 한류열풍은 한국의 경제기적에 큰 감명을 받은 가난한 나라사람이 한국에 호감을 차차 가지게 되고, 가장 쉽게 드라마나 노래를 접하고, 또 월드컵의 응원열기등도 더해져서 폭발한 것이다. 난 사실 일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문화라는 것을 잘 사는 나라에서 수입하고 열광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동남아 그리고 중남미와 현재는 아프리카와 중동까지는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였다. 그들은 어떻게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가 세계 최고의 산업경쟁력을 지닌 일본과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쟁하는지 신기하고 감명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남이 하면 따라하는 국민성이 있다. 유행을 따라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이탈한다는 그런 심리가 있는 것 같다. 과거 90년대 초 쭈쭈빵빵의 여성들이 흑인을 하나 끼고 다니는 것이 유행이였으니 말 다 했지뭐..남이 하면 별걸 다 따라한다.그러나 일본에서의 한류는 오래 갈수 없다. 그건 잘 사는 나라로써 자존심의 문제로 잘 사는 나라에서 못 사는 나라의 문화를 매우 우수하고 좋다며 오랫동안 동경하거나 사랑한 경우는 없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현재 상황에서 베트남이나 필리핀의 문화를 매우 동경하고 좋아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는 한류 마케팅을 잘 못해서라거나 판권을 많이 요구해서라거나 갑자기 작품 수준이 떨어져서 라기 보다 그냥 서서히 거품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여타 동남아나 중국 중남미는 한국은 계속 관심의 대상이고 한국문화의 경우에도 접하고 싶은 동경의 대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국이 그 나라들보다 월등히 앞서 있거나 강대국과 여러분야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때의 일이다. 중국이 어느 정도 더 발전을 하여 이제 경제적으로 한국을 따돌렸다고 판단이 되면 중국 국민들은 과거 한국문화를 동경했던 것에 대해서 수치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아울러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고 배우가 잘생기고 노래와 율동이 좋아도 유럽 잘 사는 나라들에서 한국 문화가 대대적으로 사랑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나라들이 국민소득 3만달러일때 한국은 4만달러가 된다면 그때부터 그들도 역시 한류열풍에 합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한류열풍'이라고 하는 것은 자체적인 실력을 쌓아 세계무대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단계에 오른 한국경제의 혜택으로 나타난 부수적인 현상이다. 물론 그 것이 선작용을 일으켜 그 문화를 접한 사람들이 다시 한국에 더 관심을 가지고 한국 제품을 구입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분명히 말할수 있는 건 '박찬욱' 감독은 동남아 중국 일본은 물론 유럽이나 미국까지도 좋아할 만한 훌륭한 감독이기는 하다.)
더구나 일본이나 독일의 경제기적은 엄밀하게 기적이 아니다. 그들은 단순히 부활한 것이다. 이미 19세기 말부터 강대국의 반열에 올랐고 20세기 초에는 강대국 중에서도 한발 앞선 강대국이였던 그들, 더구나 50년대 한국이 지원 받은 이상으로 일본은 한국전쟁에 의해 큰 혜택을 입었으며 독일 역시 마샬플랜의 큰 도움을 받았다. 이렇다할 아무런 기반도 없이 그저 과거의 영광이나 회상할 꺼리도 없이 어느 순간 기적이 일어난 것은 한국 뿐이다.
그럼 이같은 경제기적이 일어나는 동안 이에 반대했던 자(김영삼, 김대중 등 경부고속도로 건설 때 그 위에 드러누워서 반대한 민주투사들, 김영삼은 IMF를 불렀고, 김대중은 붕괴직전의 북한을 수조원으로 되살려놓고, 국민을 신용불량자로 만듦)들은 이후 확고 부동하고 명확한 결과가 나타났을 때 뭘 했어야 할까? 국민과 역사에 반성하고 사과 했어야 옳았다. 어차피 그들은 박정희 대통령으로 부터 철처하게 무시됐으므로 그들이 반대를 하면 할 수록 박 대통령은 그 필요성을 더 절감했지만, 만약 그들이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면 더욱 월등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들의 지독한 그 모든 비방과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 정부, 박정희 정부는 기여코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것이다.
그들은 그 시절 어느 때도 정책에 대해서 기획하거나 또는 심도있게 논의하거나, 확인 감독하거나 작은 일 하나라도 협조한 일이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반대에 반대를 거듭했을 뿐이였다.
그러한 반대는 당시엔 할 수도 있는 것이였다. 만약 너무나 일을 크게 벌린 나머지 박정희 대통령이 사업들을 몇 개만 이라도 실패하는 것만으로 자연스럽게 그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 되는 것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뭐 하나 한것 없이 거리에 나가 성난 얼굴로 고함을 지르고 오른 손을 불끈쥐고 들었다 내렸다를 하는 것 만으로 비록 실패를 했건 어찌 됐건 열심히 일을 추진하고 실행에 옮겼던 사람을 폄하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행사 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런 시위는 매일 같이 하는 것도 아니였다. 고작 한 달이면 한 두번이 고작이였다. 정말 수지 맞는 장사였다. 그러나, 아뿔사!
박대통령은 그들(김영삼, 김대중 등)이 제발 실패 하길 바랬던 모든 사업을 계획보다 월등한 성과를 올리며 성공시켜 버렸고 각종 현대 산업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일본을 여러 분야에서 앞서 버렸다.(혹 일본에게 청구권 자금으로 8억달러만 받은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도 단념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고작 3억달러의 무상 자금을 받았고 이 만큼 발전시켰다. 그 이상 줬을리도 없었지만 대충 30억 달러라도 줬다고 한다면 녀석들은 한국의 그 위대한 발전이 자신들이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한국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거금을 선뜻 내준것이 훗날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낳아서 과거 식민지배를 하며 한수 지도했던 나라로써 매우 뿌듯하다 하며 미국이나 구미 선진국에 선전을 하고 마치 그것이 진실인양 떠들었을 것이다. 정말 이지 그건 그럴수 있는 내용이고, 받아들여지면 영원히 가는 것이다. 후손 대대로 일본넘들에게 자신들이 많은 돈을 지원해 주어서 한국 너희들이 발전하게 됐다는 조롱을 받는 지독하게 민족 자존심을 깔아 뭉개는 망발을 계속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전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이걸 비난하는 한심한 인간들이 있다. 만약에 그 때 받은 돈이 모래사장에 물 붇는 격으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실체가 없이 한국의 국가 경제나 국민의 삶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인다면 그때 왜 그리 적게 받았느냐고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형편없이 작은 돈을 받아서 이 만큼 훌륭하게 발전 시킨 판국에는 그 때 돈을 그 정도만 받은 것이 천만 다행 인것이다. 물론 그 정부가 아니였다면 몇 배의 돈을 받았다고 해도 돈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 주기 바란다. 한국은 광복이후 516 이전 십 수년 동안 30억불의 원조를 받았었으나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나라는 형편없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은 상상도 못할 일을 불과 수 십년 전 식민지였던 한국이 해 낸 것이다. 이러한 일은 과거에 살았던 국민들은 워낙에 한심해서 식민지가 됐고 현재에 사는 국민들은 갑자기 일본인들의 능력을 앞서는 우수한 사람들이여서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니다.
이 모든 것의 해답은 '지도자가 누구였느냐'에 있는 것이다.
참 우수운건 당시 반대를 하던 세력을 주축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때 이렇게 훌륭한 성장 기반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착실히 쌓아가던 때에 반대에 또 반대 밖에 한 게 없었던 자들이 국민들로 부터 멸시를 당하거나 손까락질을 당하기 보다는 용케도 뒤늦게 나마 정권을 잡았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되고 나서는 온통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했고 또 언제나 고독했던 위대한 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배은망덕한 국민들이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역사적 심판을 위해서 정말 다행스런 일 이였다. 비록 국민들이 그들의 형편없는 삽질로 인한 고통을 고스란히 당하게 됐지만, 어차피 그 국민들이 선출한 그들이였다. 준엄한 역사를 위해서는 그들의 아직까지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고 드러낸 적이 없는 그들의 감춰진 국정운영 능력을 여실히 보여줘야만 했다.
문제는 그들이 잘 나가던 나라들 완전하게 말아 먹음 으로써 자신들의 감춰진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그들 자신을 위한다면 70년대 투자의 결실이 분명하게 성과를 보였던 80년대 이후 그들은 숨어 살아야 했다. 혹 80년도에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과 70년대 말에 높은 물가 상승으로 국민들의 원성이 높았다는 것을 어렵풋이 듣거나 그것에 큰 비중을 두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오일 쑈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오일쇼크. 그렇다. 오일쇼크는 2번 모두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70년대에 찾아든다.
73년1월 2.59달러이던 원유값이 73년 말 1년 사이에 11.5달러까지 4~5배가 뛰어 버린 것이다. 지금가격으로 보면 작년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평균 35달러이니 1년 사이 140~150달러로 뛴것이다. 당시의 시위대 정부에서 이제 55달러 수준에 올라선 것을 가지고 경제성장이 원유값의 상승에 따라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 한다면 당시의 상황을 아는 사람에게는 코메디이다. 더구나 90년대 상당기간 20달러대였고 2000년대에 되고서도 작년까지 20~30달러를 오가는 수준이였는데 그것은 79년 시작된 제 2차 오일 쇼크때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왜냐하면 당시 78년 12월 12.7달러 였던 것이 80년 10월 37달러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원유값을 당시의 수준에서 세계적으로 평균적인 일반적인 물가상승에 맞춰 상승했다고만 하더라도 지금쯤 100달러 이상에서 가격이 형성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2차 오일쇼크이후 더구나 배럴당 20달러대에서 형성된 9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15년은 역사적인 저유가시대에 해당하는 것이다.
분명 유가 상승은 한국과 같이 원유를 절대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는 치명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막 50달러에 진입한 유가는 70년대에 비교한다면 지극히 낮은 수준이다. 70년대 오일쇼크가 박정희 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정권을 잡은 가운데에서 이러 났다고 하면 과장을 좀 보태 그 즉시 한국은 파산이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과의 숨막히는 대치와 사회의 이념분쟁, 국제정세의 급박한 변화와 오일쇼크까지....이 모든 것을 해치고 한국은 일본의 경제 성장을 앞서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을 이룩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움은 김영삼과 김대중 같은 싸구려들이 정권을 독재니 뭐니 아무런 능력도 없이 헐뜻었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정권을 넘겨줘야 하는 대통령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대통령은 선거에 들어가는 막대한 정치자금을 아껴(당시로써는 정말 막대한) 한푼이라도 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공장을 건설하고 도로를 딱고 발전소와 댐을 건설하는데 쓰고자 했지 결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분명히 나라경제를 망치고 국민의 삶을 다시 빈곤으로 몰고갈것이 분명한 야당의 무능한 쓰레기들에게 정권을 넘기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과 같이 민중앞에서 한표를 호소하는 것도 매우 못마땅했다.(난 분명히 말 할 수 있는것이 만약 그때 김영삼 김대중씨가 아니라 박 대통령 자신의 1/100만이라도 따라오는 사람이였다면 분명히 선거를 불필요한 것으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100만분의 1도 못되는 사람들 이였고 그것이 박대통령은 매우 못 마땅했다. 이것을 생각하면 '유신'이야 말로 실제적인 성과에 있어서 박대통령의 가장 위대한 결정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그 유신에 의해 고도 산업사회의 국가를 비로서 맞이한다. 유신을 단행할때 야당이나 반정부 투쟁가들이 '독재'니 '장기집권'이니 비난을 했지만 박대통령은 이에 흔들리지 않았고, 자신이 이후 어떻게 나라를 발전시키고 어떻게 사리사욕없이 국가민족을 위해 헌신하는지를 보면, 일부 비난이 있더라도 분명히 후대에 가면 자신의 진의를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유신은 정치투쟁을 하지 않고 권력투쟁을 하지 않았던 보통의 대다수 일반 국민에게는 유신이야말로 이 나라를 보다 튼튼히 만들고 부강하게 한 원동력이였다. 물론 김영삼씨와 김대중씨 같은 사람들이 90년대에 연달아 대통령이 됐다는 것은 세계 10대 불가사의의 하나이지만, 70년대에 됐다고 한다면 그들의 그 형편없는 싸구려 언행을 90년대에 사회가 발전되고 국민의 의식이 높아진 상태에서 매우 불쾌하게 보는 것보다는 그 불쾌감이 덜 했을 것이다. 그들의 수준이라는 것이 6~70년의 사회상에는 어느 정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였을 것이다. 자체적인 기업들은 태생하지 못하고, 겨우 중국이나 동남아와 같이 외국 대기업들에 공장을 지어달라며 애걸하는 수준이거나 국민의 다수가 그러한 공장에서 하청일을 하는 상태에 머물렀을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박대통령이 이 나라를 거의 완벽하게(핵무기와 각종 유도탄만 개발했었도 완벽한 것인데....)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뒤 늦게 90년대에 정권을 잡았기에 그들의 어떠한 삽질이 있더라도 이 나라는 여차한 어려움을 해쳐나갈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시로 보자면 그저 반대에 반대밖에 한게 없었다. 그들은 이 나라의 발전에 어떠한 공헌도 한게 없었다. 정권으로 부터 철저히 배제됐고, 감옥에 갇히거나 도망다니며 숨어지냈다. 그러는 사이 나라가 매우 우람하게 발전을 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더 없이 튼튼하게 발전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본인이 판단하기에 그들은 역사라는 것을 쉽게 생각하거나 아예 역사를 모르고 사는 부류들이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려고 감히 나서길 나서나?
그들은 할 말이 없으면 '민주화, 민주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아직껏 민중의 생활이 형편없던 나라를 부강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어준 정부에게서 오직 '끈질긴 시위'를 한 것으로 민주화를 이루냈다고 하는 경우는 아직 한국만이 유일 할 듯 싶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시정이 되겠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한국에서 계속 되어진다면 아마도 영원히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북한에서 '대단한' 민주화 인사가 나타나서 단식을 하고 시위를 한다고 해서 민주화가 될 일도 없거니와, 오히려 현재의 가난하고 헐벗은 북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혼란에 휩싸여 더욱 민중의 삶을 악화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한다면 어떨까? 나라가 잘 발전하고 있으니 그런 일이 일어날 일도 만무하거니와 사회 발전의 양상이 아직은 7~80년의 한국과 같이 반정부 시위를 드러내 놓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물론 지금은 천안문 사태와 같이 그 정도 소요에 탱크를 앞세워 진압하는 일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에는 그동안 중국이 월등히 발전했고 발전된 풍요속에서 국민들의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시위 수준이라는 건, 또 어떤 시위에 의한 쟁취 수준이라는 건, 그 사회 발전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사회 발전이란 결국 경제적 발전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투쟁가가 정부를 압박하는 전투적 시위를 한다고 해서 이른바 '민주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당연한 이야기 이지만 시위를 한다고 해서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부유해 지지 않으면 자유란 의미가 퇴색하며 가난한 속에서는 어느 순간 갑자기 자유를 도난 당하기 일쑤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에서도 부자들은 있고 우리 누구도 그들이 인권을 무시 당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 일 수록 부자들은 더 행복한 것이다. 오직 자유와 민주라는 것은 경제적 풍요로써 판가름이 나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목숨을 바쳐 시위를 한 것으로 민주화가 됐다고 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소위 '민주화'라고 하는 것은 있지도 않으며, 그 속에 포함된 뜻을 푼다면 결국 '국민들이 자유롭고 풍요롭게' 산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경제적 풍요를 뜻하기 때문이다. 잘 사는 나라치고 독재정부는 없고 못 사는 나라치고 '위대한 민주적 지도자'는 없는 것이다.
결코 몇 년을 집권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이광요 수상을 30년 넘게 수상 자리에 있었고, 다시 그 아들이 정계 높은 자리를 차지하며 차기 총리로써 거명 된다고 하여 그를 악날하고 지독한 독재자라고 하지 않는다. 역사란 어찌나 오묘한지?
정말이지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전투를 매번 승리로 이끈 이순신과 언제나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순신을 헐뜻었던 선조와 조정과 원균을 다시 보는 기분이다.(역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위대한 한 사람의 영웅에게는 여러 고만고만한 날파리들이 지저분하게 달려들어 귀찮게 하는 것이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과거엔 큰 승리로써 조선을 구한 이순신을 왕인 선조가 감옥에 가두고 죽이려까지 하였지만 이번에는 국민들이 스스로 이순신을 시기하고 모함했던 '원균'을 총 사령관에 임명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당시 살아 생전에는 이와같이 아무런 성과도 내리지 못한 원균이였지만 일시나마 이순신 이상의 대우를 받았으며 아직 민중이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물인지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다수는 그저 큰 장수 정도로만 생각하고 때로 '장군님 장군님' 떠 받들기도 하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균은 나름대로 목에 힘을 주며 호령했다. 설마 한낫 인간으로써 역사에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존재로 기록될지 죽기 전에야 어찌 알았으랴?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현재 강조하고 있는 '지도자'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이순신이 지휘 할 때는 어떤 일본의 훌륭한 무사들도 월등한 전력을 가지고서도 매번 대패를 당하였지만 원균이 지휘 하고서는 변변한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전멸한 것이야 말로 지도자의 의미 말고 그 어떤 핑계가 또 내세워 져야만 한단 말인가?
원균의 칠천량에서의 생각지도 못한 막강 조선 수군의 전멸과 같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막강한 경제력으로 솟구쳐 올라가던 한국 경제는 모욕적인 외환위기를 당하고 뒤 이어 다른 동남아 국가들 과는 달리 국민 세금 150조원을 '공적자금'이라는 미명하에 잔뜩 겁에 질려 정신못차리는 국민이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처럼 집행이 됐고, 무엇보다 막강한 산업 자산이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다르게 가장 헛값 일 때 외국인들에게 빗장을 열고 내던져줌으로써 지난 5년간 50조원을 투자해 현재로써만 150조원을 벌어들이는 그야말로 일확천금의 단꿈을 꾸게 만들었다. 물론 다른 동남아 국가들은 그렇게 외국인들에게 국부를 넘기지도 않았고, 국민들에게 '공적자금'이라며 세금의 부담을 지우지 않고서도 훌륭하게 위기를 극복했다. 만약 그러한 국부를 그들이 손수 키웠던 것이였다면, 최소한 그러한 우량한 자산이 성장하는데 자신이 조금이라도 힘을 쏫았다면 그렇게 남의 물건 떠넘기듯 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 자신들이 이 나라의 국부가 이렇게 까지 커지는데 일조했다면 그들의 손으로 다소 헐값에 우량 자산을 넘겨 외국인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게 한데도 꾹 참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데 아무런 기여도 한게 없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생각있는 지도자라면 그렇게 형편없는 정책들을 정책이랍시고 시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비싼 물건들을 갑자기 떨이에 가져가라며 가계문을 활짝 연것이 정책이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리 우량한 수출산업이 널려 있었다. 김영삼 정부에서 환율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을 막지만 않았다고 해도 외환위기는 올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한국은 바로 다음 해 400억불의 무역흑자를 기록해 외환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70년대 이후 무리해서 투자했던 공장들에서 나온 수출품 덕분이였다. 김영삼 정부에서 엉터리 삽질을 해서 위기를 만들었고 그것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지었던 대규모 공장에서 수출품이 쏫아지며 위기를 극복했고, 그 사이 김대중 정부는 또 다른 엉터리 삽질을 한 것이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 발생한다. 97년의 경제 환란이 박정희 정부의 잘못이 누적되서 나타난 것이라는 박정희 덮어 씌우기가 당시 시위를 했던 자들에게서 주장이 계속된다. 거의 20여년 전에 죽은 사람에게 원인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우수운 거냐 하면 김영삼 정부에서는 95년 머지않아 신경제의 효과가 나타나 영국을 앞설것이라는 오만한 주장을 했었다. 그게 단 2년 만에 국가 파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영국은 그때 그 주장을 매우 못 마땅해했고, 한국의 위기를 고소하게 생각했다. 김영삼은 그렇다 치고 김대중 정부하면 그들 정부만의 특징으로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의약분업과 카드 사태와 양극화, 중산층 몰락, 부동산 폭등-김영삼때는 부동산 하나는 안정적이였던 것인데-...뭐 그런 것들이 있는데....돈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카드를 만들어 소비를 촉진시킴으로써 경제를 살릴수 있다는 발상이 세상 어느적에 시도 됐는지 모르겠지만....아무튼 이것만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잘 못되서 뒤 늦게 나타난 것이라는 주장이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은 우량한 수출 산업이 있었기 때문에 앞 정부 관료들이 한국의 외환위기를 크게 걱정하지 않은 것도 위기를 키운 하나의 이유가 됐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다 우량 자산을 헐값에 떠넘기더라도 한국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겨낼 좋은 수단을 가지고 있었는데 새로운 삽질이 계속된 것이다.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리 현재 한국은 이미 국가의 훌륭한 우량 자산들이 어느 틈에 대부분 외국인 소유가 되어있다. 또한 공적자금은 공적자금 대로 남겨졌다. 물론 그것은 국민들이 오손도손 사이 좋게 나누어서 내야하는 세금이다. 공기업 직원들의 초임이 선진국 어느 나라도 국민 소득을 넘는 나라가 없음에도 한국만이 2배 이상 받아가고 있는 것은 결코 자랑거리 일수 없고, 정부의 무책임이며 결국 그것은 국민들이 부담해야 한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정부가 수십년 만의 정권교체로 인해 공직 사회에 호감을 사기 위해서 경제적 위기 상황을 격고 있는 시절에 대다수 일반 서민들은 임금이 깍이거나 구조조정을 당하는 극심한 어려움과 국가 전체의 침체는 무시하고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로 정부에서 알아서 5년 동안 공무원 임금을 40%올리거나 -이거 외환위기 상황에서 나온 공약이였다. 이런게 공약으로 나오는 나라가 있을까? 그것을 찍는 국민들은 또 뭐람? 공무원들의 재산축적을 위해 세금 내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들인가?- 이런 저런 이유로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그것도 역시 세금이다. 세금은 당장 올려서 현세 사람들에게 받아내는 방법과 채권이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부채로 남기는 것과 기업들에 떠 넘기는 방법이 있는데 결국 채권도 걷어가는 시간적 차이만 있을뿐 세금의 형태는 같은 것이고, 기업들의 세금이 높아진다면 그들은 그 만큼 상품 값에 떠 넘기고 올려 받을 것이므로 결국 이것도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게 되는 돈이다. 지난 7년간 약 200만명의 기득권은 태평천하와 같은 시절이였다. 다소라도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을 받던 자들은 더욱 임금이 급상승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서민들은 삶이 날로 어려워졌다. 그들의 임금만큼 상품값이 올랐고 또 그 만큼 세금이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하는 사업이나 물품 조달도 더 높아진 가격으로 사야한다.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일부에 돈이 쏠리니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서민들은 차라리 모두가 낮은 임금으로 생활했던, 임금 상승도 크게 이뤄지지 않았던 전두환 정권 시절이 그립다고 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사실은 당시 물가 안정은 이미 박 대통령 시절 지나치게 많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감행한 것이 이유가 됐고 그러한 성과물에 의한 여유 때문이였는데-90년대 이 후엔 그때 제대로 투자가 않돼 많은 비용 낭비를 초해한다-...정권을 위해 핵무기를 포기하고 각종 무기개발의 자주국방의 싹을 잘라버린 시위대와 함께 민족 대대로의 대역적이지만)
정말이지 그런 시대가 서민들이 살기에는 더욱 편안하다. 지금과 같이 일부 계층에만 소득의 증가가 이뤄지는 사회 속에서는 그들에 의해 돈의 가치에 거품이 생기고 서민들은 서민들 대로 생활이 어려우니 그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민중이 경제활동에 소극적임에 따라 경제는 날로 침체되고, 그렇게 되는 악영향으로써 돈의 가치는 나날이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럼 다시 국가는 경기를 부양한다며 삽질을 하고, 그 돈은 결국 나날이 가난해 지고 있는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게 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양극화는 경제환란이후 극심해 졌고, 분명히 말하지만 9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의 빈부격차는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평등하고 건전한 나라였다. 이것도 역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공이다. 왜냐하면 516이 일어나고 그 이후에 혁명과도 같은 근대화와 산업화에 따라 산업자본이 발달하기 전 한국의 계층 자본 구조라는 것은 약 2~5% 대지주가 땅을 대부분 가지고 있고 80%는 그들의 땅에 빌붙어 사는 소작농으로 계층이동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의 경제적 실정은 어떻게든 국민의 세금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추경을 편성해도, 돈을 쏟아 부어도, 이들 집권자들의 행태로는 경제가 살아날 수가 없다. 돈을 쏟아 부어서 경제가 살아날 것 같으면 어느나라가 고도 성장을 못할 것인가? 그러나 능력없는 자가 그렇게 해서는 잘 못하다가는 되려 돈의 가치를 떨어뜨려 경제를 더 어렵게 하고, 그 투입된 돈이 온전히 국민의 부채로 남아 나날이 경제적 침체를 계속하는 것이다. 일본이 지난 15년 사이 그렇게 돈을 쏟아 부어서 1000조의 돈을 쏟아붙고 경제가 살아났던가? 돈을 쏟아부어서 경제가 살아났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능력이 아니며 국민과 후손에게 짐을 지게해서 자신들의 정부 일을 편하게 해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놀라운 것은 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기 전 34조원이던 국가 부채는 97년 60조원을 넘고 05년 200조원을 넘어 08년 300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93년까지 34조원의 부채 일 때의 한국에 비해 현재 6~7배가 더 좋아지거나 그 만큼의 엄청난 시설물들이 생기거나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그 이후에는 이자만 나날이 1년이면 10조 이상이 늘어나게 된다. 15년만에 9배가 늘어난 것이다.(이것을 보다 쉽게 몸에 와닫게 설명을 하면 79~80년 30달러대의 유가가 15년 만에 9배가 뛰어서 95년 270달러가 됐고, 또 15년이 흐른 2010년으로 계산하면 배럴당 2400달러가 된 것이다-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되는 돈이라는 소리다) 이것은 물론 이렇게 사태를 악화시킨 자들은 꽁무니를 뺄 것이므로 결국 국민들이 다 짊어져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예견되는 경기 침체와 서민 생활의 어려움은, 애석하게도 과거와 달리 온전하게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국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맞이하게된 문제이며, 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민중에 대한 준엄한 역사적 심판이다.
혹 단순히 박정희 대통령을 폄하기 위해서 "원체 가난했기 때문에 당시 성장하는건 당연한 것이고 또 노동자들이 그만큼 열심히 했기 때문이지 박정희 대통령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에 속지 말길 바란다. 그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며, 과거에 반대에 반대만 했던 자들로써는 역사에 어떻게 형편없이 매도될 것은 우선 뒤로 하고, 당장 보아서는 기쁘게 받아들일 내용이겠지만, 그때 한국의 위대한 성장에 딴지만을 걸었던 죄인들이 정신적 만족감을 느끼는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잡소리 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에 살고 있는 세대는 지독히 게으른 탓에 과거부터 이어오던 그 위대한 성장세를 뒤로 하고 침체의 늪으로 빠졌다는 결론 밖에 나올 수 없다. 60년대 이전 한민족은 지독하게 게으르고 한심 했다는 결론 밖에 나올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한민족은 민중들의 경우 고대로 부터 가장 국력이 쇄약했던 조선조 말까지 그 민중들은 언제나 부지런했고 근본이 우수한 민족이였다. 물론 현재의 북한 민중도 마찬가지다. 가난하기 때문에 '당연히'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면 모든 나라가 발전할 수 밖에 없을테니 특별히 한국만이 발전할 필요도 없고, 우리는 여전히 필리핀이나 태국은 물론 남미나 아프리카 나라들에 뒤져야 한다. 또 북한도 최소한 한국보다는 잘 살았어야 했다. 또는 그들이 지금 매우 가난하기 때문에 앞으로 2~30년 동안 발전을 발전을 거듭하여 한국보다 더 잘 살게 될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말을 엄정하게 파고들고 풀어보면 대부분이 정말 코메디인 것이다. 그들은 북한은 공산체제라서 어쩔수 없었다고 말 할지 모르지만, 내 기준으로 보자면 사회주의건 시장경제건 이념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지도자였는지에 따라서 사회주의 내에서도 얼마든지 시장 경제 국가 이상으로 발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박 대통령에게 공이 돌아가는 것을 막기위한 그러한 억지는 모든 역사적 문제에 있어서 잔머리를 굴려서 꺼리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당장이라도 북한에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20년 내에 한국과 비슷한 수준에 올라설 것이고, 만약 지금 보아서는 특이한 기운도 없고 별 볼 일 없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가 어느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20년 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면, 어느 순간 갑자기 그 민족이 훌륭해져서가 아니라 그 나라에 십 수년년 전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적을 완성하는 것은 민중이지만 그 단초를 제공하고 과거의 형편없던 민중을 위대한 국민으로 만드는 조련자는 훌륭한 지도자이며, 아무리 뻗어나가던 나라도 그 훌륭한 지도자와 정반대의 인간들이 아무런 능력도 없이 지도자가 된다면 외환위기나 중산층 붕괴, 서민경제 몰락, 극심한 양극화와 계속적인 경기침체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판단력이 빈약한 일반 대중마져도 지도자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 역사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몇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지도자라 말 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그런 사람이 국민 전체에 나올 확률이 몇 백년에 한번이고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국가를 이끌 확률은 수 만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다. 과연 나의 이 같은 생각은 지나친 비약일까?
[네이버 지식인에서 펌]
'독재'라.....님께서 독재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본인이 잘 모르니..... 님께서 현재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님의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니가 박정희 시대에 얼마나 핍박을 당했다고 합니까? 대통령 욕을 맘대로 못한 것이 그렇게 원통하기라도 했다고 합니까? 나라를 발전시켜 5천년동안 헐벗고 궁핍속에 살던 나라에 경제적 기적을 일궈 풍요를 가져오고 이후 대대로 물질적 풍요속에서 세계 어떤 나라에도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게 만든 그 위대한 업적을 '독재'라 말 하기에 앞서 실제로 독재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며 똑 같이 재능있는 한민족을 50년 분단된 사이 전혀 남한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만들고 90년대 중반에는 300만명을 아사(굶어 죽는 것 만큼 비참한게 세상 천지에 또 있을까? 더구나 세상 사람 모두가 풍요의 혜택을 누리던 1990년대에...이건 민족으로써 일제시대 이상의 최악의 수치)로 죽게 만든 북한의 독재정권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두심이 어떨런지?
싱가폴의 이광요가 30년을 넘게 집권했다고 하여 그를 독재자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독재란 단순히 오래 집권한다는 뜻이 아니며 1년을 집권해도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채우고 국민들의 삶을 궁핍으로 몰아가면 그게 독재입니다. 독재가 무서운건 아무 국정운영 능력도 없는 쓰레기 구더지 같은 자가 어떻게 어떻게 정권을 잡고 민중의 삶이 어떻게 처참해지건 말건 호위호식 하며 살때 입니다. 박 대통령은 정 반대였죠. 뛰어난 지도력과 사명감과 앞을 내다보는 선견지명과 불굴의 의지를 지닌 지도자가 오랜 집권하는 것은 민중에게는 축복이며 그것은 단순히 민족에게 축복된 '장기집권'입니다. 단, 권력 투쟁을 하는 자들에게만은 그런 훌륭한 지도자의 장기집권도 별로 환영받지 못하지요. 그러나 권력이나 정치와 관련없는 일반 대중에게는 그것 만큼 좋은 것은 없지요. 왜냐하면 훌륭한 지도자가 그렇게 쉽게 나올수 있는것이 아닐 뿐더러, 당장 한국의 역사만 보더라도 역대 대통령이였던 자들이 박대통령을 제하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만 봐도 잘 알것 입니다. 하는게 형편없다고 바꿔봤자 그 넘(?)이 그 넘이죠.
당시는 지금처럼 대통령 욕을 마음대로 못했는데 지금은 얼마나 좋아졌냐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당시 가난하던 시절에 혼란을 막고 일사 분란하게 경제를 일으키기 위함이지요. 일종의 그 시대의 사회현상이지요. 예를들어 50년전에
"여인네들이 더러워지 옷가지를 들고 멀리 개울에 나가 차디찬 시린 물에 손을 적시며 빨래를 했는데, 지금 얼마나 좋으냐, 버튼만 누르면 되고...그런데 그때가 좋으냐"
하는 것과 같은 거죠.
최고의 천재의 판단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수준을 언제나 능가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때때로 이건 잘못된것 같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니까 이게 더 낳지 않았느냐 하는 식으로 나중에 판단하는 것이지, 그 당시의 여러 정세를 종합하여 한 판단으로는 가장 뛰어난 것이죠. 언제나 일반 대중은 그저 영웅이 만들어 놓은 현상을 보고 그것을 가지고 이러쿵 저렇쿵 떠들 뿐이죠.
마지막으로 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했을까....
그 시위대들은 국가나 민족에 대한 책임감 보다는 사회가 혼란하건 말건 한 개인으로써의 자유로써 통행금지도 없고 자유롭게 당장에 편하게 사는 걸 바랬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그 자신이 누누이 대국민 연설에서 말했던 것처럼
"후손들이 우리시대에 자신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때 우리는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하고 또 일했다고 말하도록 하자"
이렇게 당시의 세대는 좀 고생스럽고 더 편하게 살고 싶더라도 당시 세대가 바짝 피땀을 흘려서 부강한 조국을 한번 만들어 놓으면 그 속에서 후손들은 보다 편리하게(한번 부강해 지면 어지간 해서는 그 상태가 유지 되니까) 생활할 것이고, 그런 터전을 당시 세대들에게 만들자고 누누이 말을 했지요.(선거를 해야 하는 대통령이 이렇게 국민들에게 후손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또 일하자라고 누누이 강조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아마 유일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런 차이죠. 학생 시위대들은 당장에 사회 안정이니 뭐니 하는 것 보다는 자신들과 개개인들이 자유롭고 편하게 사는것을 원했고, 박 대통령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먼저 생각했죠.
6~70년대의 경우 시위를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생 (혹은 간혹 고등학생) 이였는데 그 나이때는 혈기 넘치는 시절이고, 술도 먹고 싶고, 밤에 마음대로 거리를 활보 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구속되고 싶지도 않고....그런데 박대통령은 사회를 일사분란하게 통치하고 하루빨리 일정한 성과를 올려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 통행금지나 사회혼란을 일으킬수 있는 정부 비방(당시는 공산주의와 이념 대립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념한다면 당시 정부 비방은 공산주의 신봉으로 비춰질수도 있었는데...물론 순수하게 그냥 정부 싫어한 사람도 있겠지만, 정부 책임자로써는 공산주의와 이념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전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죠)을 통제했던 것이죠.
또 당시 정권에 대한 시위는 그 반대에는 언제나 김영삼씨와 김대중씨가 있었는데 그 무능한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보면 그 당시에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시위를 했던 대학생들의 경우 그들을 '선생님 선생님' 따랐던 사람들도 있으니까....그 당시엔 그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국정 운영능력이 없는지 몰랐던 거죠. 묘하게도 국민들 다수는 정말 똑똑한데 그들로 부터 그런 형편 없는 사람들이 존경을 받는 다는게 신기할 뿐더러, 그들이 워낙 무능하고 형편없기 때문에 무능한 원균이 이순신장군에 비교되어 이순신 장군이 더욱 빛나는 것과 같이 그들로 인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오래 집권한 것이 역설적으로 천만 다행이 되는 것이죠. 그들을 거치면서 격게된 극심한 양극화는.....앞으로 보세요. 세금은 계속 오르고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상품값은 올라가고 서민들의 삶은 나날이 힘들어 지고....양극화가 뭐라는 것을 서민들은 오랫동안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양극화를 일으켜서 서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는 김영삼 김대중씨가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하고 있다며 비난하는 최선봉이였죠.
-이렇게 말하면 밥먹 먹여주고 경제만 좋아지면 독재를 해도 좋으냐고 매우 그 유명한 '민주화 인사'들의 언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힘들어 하는 서민들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거지요. 사실 공산사회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는 이념 투쟁이라는 것도 어떤게 더 민중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게 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의 대립이죠. 자유민주주의는 절대선이 결코 아니며 언제라도 이 체제가 민중을 굼기고 힘들게 한다면 민중 스스로의 요구에 의해서 봉기가 일어나는 것이죠. 50년대 이전에는 막 태동한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명망있고 순수한 좌파들이 많았죠. 그때는 사회주의의 허구를 깨닫지 못했으니요. 인간이 살아가는 것, 인류 역사에서의 모든 정치적 투쟁과 사회 변혁...이 모든 것은 풍요롭게 잘 살고자 하는 민중의 욕구죠. 더구나 공정하고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했던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이 장기 집권할 것을 생각한다면 국민들로써는 이 보다 더 안심이 없죠-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그가 어떻게 사리사욕 없이 오직 나라와 민족과 국민의 발전을 위해 힘썼고, 그로 인해 어떻게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던 국민들이 잘 살아 졌는지....그것을 본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이 집권하고 있는 사이 바짝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통제를 행하였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박대통령이, 모든 것을 꽤 뚫고 있는 천재 이창호가 실착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다 꿍꿍이가 있어서 하는 것임으로, 박대통령이 그렇게 했던 것은 일시 '독재'로 오해를 받더라도 결국 자신의 진의를 모든 것이 밣혀지는(자신이 얼마나 깨끗했는지, 김대중 김영삼이 얼마나 무능하고 국민들의 삶과 국가 경영에 위험한지) 후대에는 분명하고 확고하게 밣혀질 것이고, 그 진의를 알아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혀 동요없이 그렇게 완강하게 끝까지 밀어 붙인 것이지요.
(보통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오해를 하거나 아니면 무슨 이유로 조금만 비난이 가해져도 의기 소침해 져서 자신의 의기를 꺽어버리고 신념이 있었다고 해도 포기하기 일쑤지만....)
일세기를 두고 보면 다 알것 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충무공을 능가하는 성웅으로 추앙받을 것입니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