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체 그라비티 4000억원에 매각
[경향신문 2005-09-01 20:09]
동남아 지역에 한류붐을 일으킨 온라인게임 업체 그라비티가 일본 소프트뱅크에 팔렸다.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가 외국 자본에 팔린 것은 지난해 액토즈소프트가 중국 샨다에 매각된 데 이어 두번째다.
그라비티는 31일 대주주 김정률 회장(사진)이 자신과 가족의 지분 52.4%(3백64만주)를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의 투자회사인 EXER에 전량 매각했다고 밝혔다. 매각가격은 주당 98.25달러로 매각대금은 약 4천억원이다.
그라비티는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로 지난해 2월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회사다. EXER는 테크노그루브 등이 참여하는 정보기술(IT) 투자펀드다. 테크노그루브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동생인 손태장 사장이 소유한 아시안그루브의 자회사다. 소프트뱅크는 계열사인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라그나로크를 일본에서 서비스해왔다.
김회장은 이번 매각으로 오는 21일로 예정된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사직을 사임할 예정이지만 윤웅진 현 대표 체제는 유지된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김회장은 이번 지분매각으로 4천억원을 챙겨 국내 최고의 벤처갑부로 꼽히는 김정주 넥슨 사장(주식평가액 3천5백50억원)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그라비티 매각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액토즈소프트가 중국 업체로 넘어간 데 이어 그라비티마저 일본 업체로 넘어가면서 세계 정상급의 한국 온라인게임 업체의 개발·서비스 노하우가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라비티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매각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주수익원인 라그나로크가 성장 한계에 부딪쳐 고육지책으로 매각을 선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회장은 라그나로크를 개발한 김학규 현 IMC게임즈 사장과 경영권 다툼끝에 경영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김사장이 빠진 라그나로크가 성장 한계에 부딪치고 돌파구로 추진한 게임배급도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이 때문에 그라비티에 관심을 보인 소프트뱅크에 회사를 넘겼다는 해석이다.
한편 김회장은 매각대금을 바탕으로 제2의 그라비티를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김회장은 1982년 직원 2명으로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게임기판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한 게입업계의 ‘1세대’다. 97년 외환위기때 부도위기까지 몰렸으나 음악반주기 사업으로 위기를 넘긴 뒤 2000년 그라비티를 설립해 운영해왔다.
<초점> 그라비티 전격매각 배경
[연합뉴스 2005-08-31 16:07]
실적저하, 소프트뱅크 4배 거액 베팅에 '빅딜' 기술유출, 국내업체 해외매각 가속화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대형 게임업체 그라비티(gravity.co.kr)가 31일 4천억원이라는 국내 인터넷ㆍ게임산업 사상 최대 금액으로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에 전격 매각되면서 매각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라비티의 급격한 실적 저하.
그라비티는 다중온라인롤플레잉게임(MMORPG)인 '라그나로크 온라인' 게임 하나에 사실상 의존해 왔으나 서비스 시작 5년째인 라그나로크가 최근 뚜렷한 성장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분기 그라비티는 매출액이 1천330만달러(한화 약 137억원), 세전 이익 280만달러(약 28억원), 순이익 190만달러(약 19억원)로 전분기보다 각각 15%, 61%, 65% 가량 감소했다.
특히 라그나로크 진출 국가가 39개국에 이르는 등 웬만한 국가는 거의 다 진출하면서 매출액의 71%를 차지하는 라그나로크 해외 수출 로열티, 라이선스 사용비 매출액이 950만달러로 14% 감소했다.
라그나로크 요금 매출액도 지난 상반기 단행한 대규모 업데이트가 큰 효과를 내지 못하면서 270만달러로 전분기보다 30% 줄었다.
단일 게임, 그것도 국내외 가입자들이 지속적으로 내는 요금보다 1회성에 가까운 수출 로열티 등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업구조가 불안정성을 가져온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라비티도 '라그나로크 2', '레퀴엠' 등 차기 MMORPG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최근 국내외에서 MMORPG 장르의 경쟁이 날로 격심해지면서 이 또한 성공 여부를 확신하기 힘든 상황이다.
재미있는 점은 라그나로크의 일본 유통사인 소프트뱅크 계열 겅호온라인엔터테인먼트 또한 라그나로크에서 매출액의 90% 이상을 내는 단일 게임 의존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
라그나로크가 일본 MMORPG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면서 겅호도 동반 급성장했지만 올해말로 라그나로크 유통계약이 끝나면서 전망이 막막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라그나로크와 후속작인 '라그나로크 2' 등 확실한 '돈줄'을 계속 쥐기 위해서는 그라비티 자체를 인수하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소프트뱅크안에서 힘을 갖게 됐다.
그 결과 특유의 공격적 경영 스타일로 알려진 소프트뱅크가 4천억원에 대주주 김정률 회장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는 제안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매각이 표면화되기 이전 그라비티의 나스닥 주가가 주식예탁증권(ADS) 기준 6∼7달러(ADS 4주가 일반주 1주에 해당)대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매각의 일반주 1주당 매입가 98달러는 시가의 4배 가까운 파격적인 가격이다.
결국 그라비티의 불투명한 장래와 시가의 4배라는 거액을 제시한 소프트뱅크의 과감한 결단이 맞물려 이번 '빅딜'을 낳은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이번 매각이 국내 게임산업 전반에 미칠 파장이다.
지난해 중국 게임유통사 샨다(盛大)가 국내 게임업체 액토즈소프트[052790]를 인수한 데 이어 게임업계 5위안에 드는 대형 업체인 그라비티까지 소프트뱅크에 넘어감에 따라 온라인게임 산업의 기술유출이 가속화되리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게임업체 경영이 힘들어지는 시점에서 4천억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쥐는 사례가 생기면서 다른 업체 대주주들도 같은 '유혹'에 점차 취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그라비티의 사례가 국내 게임업체의 해외 매각 '도미노'로 이어지지 않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