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의 전력 평가...
중국의 전력평가 차원에서 올립니다.
이전쟁에서 중공은 사실상 패하게 됩니다.
중소, 중인,중월등의 무력분쟁등은 모두 중국과 해당국가간에 밀월관계가 유지
되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중국인들 스스로 보기에도 중국이 말하는
우호의 개념은 상대방이 완전히 중국에게 완전히 굴복했을 때라더군요.
그 이전의 어정쩡한 관계는 오히려 위험하다는 소리입니다.
베트남을 침공했는데 결국 중국군은 근대전에 익숙한 베트남을 당해낼 수 없어
자진 철수하게되었습니다. (양국합계 30만의 병력동원 수만의 사상자를 냄).
중공-베트남전쟁
요약
1979년 2월 17일 중공 국경수비대가 국경을 넘어 베트남령에 침공함으로써 일어난 전쟁.
언제 1979년 2월 17일
어디서 베트남 북서부
누가 중공, 베트남
무엇을 중공군의 베트남령 침공
어떻게 베트남 군사시설 파괴, 지방도시 제압
왜 베트남거주 화교의 대량추방
본문
중·월전쟁이라고도 한다. 1978년 초부터 베트남과 캄보디아 국경분쟁이 일어난 데 이어 5월에는 베트남에 거주하는 중국계 주민과 화교의 대량 추방을 둘러싸고 중공·베트남 공산정권이 대립하였으며, 1978년 말에는 중국 윈난성[雲南省] 및 광시성[廣西省]의 국경지대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하였다. 중공측은 이에 제재를 가하겠다고 예고하고 있었는데, 1979년 2월 17일 중공군은 베트남을 전면 침공하였다. 중공 당국은 이것을 자위반격(自衛反擊)의 한정전쟁(限定戰爭)이라고 발표하였다.
캄보디아에 많은 병력을 보내고 있는 베트남도 이에 응전, 베트남 북서부의 지방도시 및 요충지대는 격전장으로 변했다. 원래 중공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에 반대하고, 그것을 소련의 지원에 의한 것이라 비난하며, 소련·베트남의 ‘대소패권주의(大小覇權主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서, 중공-베트남 전쟁은 중·소 대립의 축도(縮圖)라고도 일컬어졌다.
중공군은 상당한 고전을 겪었으나 국경 부근의 베트남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지방도시를 제압한 다음, 3월 5일 자위반격의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명분으로 철수를 개시, 3월 6일 철수를 완료하였다. 같은 해 4월 18일부터 중공 ·베트남은 교섭을 개시하였으나,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철수를 주장하는 중공과 이것을 거부하는 베트남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려, 교섭의 주목적인 국경선 확정은 난항을 거듭하였다.
공산국 사이에 최초로 일어난 이 전쟁 이후 베트남 난민이 대량으로 발생하여 국제문제화하였다. 양국은 1988년 1월 국경전쟁 종식에 합의하였으나 상호 영유권을 주장하는 난사군도[南沙群島]에서 다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양국 분쟁은 1989년 9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철군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중국군은 패한 전쟁을 보복으로 베트남인들의 민간인 학살과 일부 몇개의 베트남군 진지를 포격했다
실제 베트남전에서 중공군은 베트남군에 의해 학살당하다시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