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출장중이라 눈팅 오늘에야 하였습니다.
광주 박람회좀 보고 현재는 심양에 있습니다.
중국에서 로바이싱(서민)으로 살아가는것이 얼마나 힘든지른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서 보면 많은 한국인과 조선족이 서로 싸운다. 아주 격렬하다 못해
k1 격투기 저로 가라다.
그래 그래 싸워야 한다. 박터지게 싸우고 또 싸워야 한다.
몇십년간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민족이 교류된지 얼마 되었다고 통합이 되나.
절대 아니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쌍욕 하면서, 박터지게 싸우는 과정에
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날이 올것이다. 산고의 고통없이 새생명의 탄생은 있을수
없다.
조선족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1800년대 후반에 간도땅에 정착한 조선족은 못먹고 못사는 한반도를 등지
고 그곳에서 갖은 핍박을 받아가며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왔다.
허허벌판 황무지의 만주벌판에서 마적단에 굽신거리며 땅을 조차해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것이 중국 동북 3성에서의 최초의 벼농사였다.
벼농사를 최초로 전수해준 민족인 것이다.
한족(만주족)들은 주로 옥수수농사를 했다. 옥수수농사는 가뭄과 병충해에 잘견디며
척박한 땅에서도 잘자라고 특별한 관리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족은 입쌀밥을 먹어야 했다.
하루 한끼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입안이 허했다.
그래서 그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하고 몸으로 때워 벼농사를 지으며 그렇게 간도땅에
뿌리를 내려갔다.
어떤 마을은 경상도 사람만 몰려사는 촌이 탄생되고 어떤 마을은 같은 성씨 사람만
사는 집성촌도 탄생되었다. 젊은 조선족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길...
그리고 모택동 시절이 왔고 6.25 동란이 왔고,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을 겪어
왔다. 그중 기재가 뛰어난 조선족은 도시로 나오고 당 간부 혹은 보다 나은 계급으로
격상 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족은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많은 이들이 아시다시피 문화 대혁명은 중국 전체를 문맹으로 만들었다.
대학교수등 수많은 지식인이 농촌을 배우자, 혁명정신을 키우자는 명목으로
지방으로 공장으로 농촌으로 하방되었고, 아들이 아버지를 공개비판하였다.
오로지 당의 영도만 있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그런 그들이 민족을 보존하고 살길은 숨을 죽이는 것이었다.
입 다물고 안그래도 그런척 붉은 홍기를 흔들어야 했다.
이때만 해도 못배운 사람이라도 고향 생각과 한반도 생각을 하곤 했었다.
아직도 40대 이후의 조선족들은 '땟놈의 새끼들' 이라 말한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면서 지금까지 이어온 조선족이다.
중국의 교육은 공산당 교육이다.
각 소학교 중학교를 가보면 마르크스. 엥겔스, 스탈린, 레닌의 초상화가 즐비하다.
어떤 경우에는 유물론의 선구자로 불리는 포이에르바하의 초상화도 간혹보인다.
조선족 초등학교 수학교과서를 본적이 있다.
책 말미에 기술한 수학공부의 목적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유물사관에 기초한 어쩌고 저저고....'
수학이라는 학문마저 공산당 이론을 바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이후 중.고중 대학은 말할 필요가 없다.
대학의 정치학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 강령등 외워야 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실생활에서의 중국화는 더 말할 것 없다.
중국내 구복을 원하는 민간 풍속이 스며들어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조선족은 뛰어난 기재와 특유의 근성으로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나
름대로 자부심을 가질만큼 성장하였다.
북경대 중문과 교수도 있어며. 군대 최고위직에도 조선족이 오를 만큼 성장한 것이
다. 그리고 조선족 2세와 3세들은 정통 중국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런 그들과 한국인은 만난지 불과 10여년 지났다.
본격적인 접촉은 6-7년도 채 안된다.
어슬프나마 그들과 말이 통했고, 다급한 기업가나 무역업자는
때로는 통역으로 때로는 사무관리로 고용하여 중국 사업을 시작하였다.
자본주의에 대한 훈련이 안된 그들과의 생활은 한국인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
역이었다. 조선족도 마찬가지 였다. 어찌어찌 말은 통하는데 한국인이 하는말의 의미
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돌아오는 것은 '그것 밖에 못하냐, 그것도 하나
제대로 처리 못하냐' 는 핀잔이었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한족들의 시기와 모략이었다.
대체적으로 한국회사는 한국인 사장 -- 조선족 관리 -- 현장 한족 의 형태로 이루어
졌다. 그러다 보니 한족은 자신의 능력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말이 통한다는 이유
로 조선족의 지시를 받으려니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한족의 시기와
질투는 끝이 없다. 조선족은 양쪽에서 샌드위치가 되는 것이다.
사석에서 한국사람들은 끝없이 '한국에는 이런데..본이 어데냐 몇대손이냐 같은 민족
인데 ...' 하며 얘기한다.
또 다른 한편에선 한족들이 ' 너는 중국사람 아니냐? 한국사람은 외국인 아니냐?
우리 중국사람끼리 이득이 되는 쪽으로 가자'고 얘기한다.
중간에선 조선족은 고민한다...뜬금없이 정체성 문제가 튀어 나온다.
대만 , 홍콩 기업들도 우리와 똑같다.
그들도 규모 있는 기업은 대만. 홍콩 본사에서 직원이 다 파견된다.
중국애들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일도 못하고 , 대가리에 뭐가 들었는지'
하면서 말이다.
과장이 아니다. 대만과 홍콩과 거래가 있어 친구들이 제법 있다.
그들 공장을 방문하려면 데려갈려 하질 않는다.
'일하는 꼴 보기 싫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중국 본토사람은 3원-5원짜리 밥 먹으러 가고, 대만 홍콩애들은
대만 홍콩애들이 만든 식당으로 달려간다..
같은 한족끼리 서로 질시한다.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를 그들도 안고 있는 것이다.
조선족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이 지금 현재 성장한 과정을 한국인은 알아야 한다.
위에서 서술했듯이 우리완 전혀 다른 체계와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체계가 우리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갖고 있는 모순적인 이중성 - 한편으로는 동포요 또다른 한편으로는
중화 사상에 젖어 있는 이중성 - 을 깨뜨려야 한다.
그들을 무지하다고 비난하기 보다는 논리적 객관적 비판을 하자.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성장하였고, 왜 우리가 중국내 모순을 그리고
조선족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을 하는 이유를 알려주자.
시간은 짧은데 가야할 길은 아직 멀었다는 것을 제발좀 인식하길.....조선족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