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이 출현하기 이전에는
아시아는 환웅이 다스리는 시대였다.
환웅은 나라의 샤먼이면서 왕이었다.
신농 염제 역시 환웅시대의 한 지역의 지배세력의 왕이였고 샤먼이었다.
한족의 시조인 황제헌원은 그러한 환웅통치이념에서 반기를 들고 독자적 노선을 걷기 시작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그 후손들은 후에 진나라가 망하자 어부지리로 커다란 중원대륙을 통째로 갇게된다. 한족이 중원을 통일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들의 역사서에는 진시왕는 절처히 한족이 아니라고 못밖고 있다.
그리고 이 한족들은 절처하게 한웅시대의 이념을 계승한 나라들과 자신을 차별하여 독자노선을 걷는다. 한족중심의 중화주의의 태동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한족중심의 중화주의이념이 태동하기 이전의 역사에 분명 한웅시대가 있었고, 그 통치이념을 계승한 나라는 고조선이었다. 단군신화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더불어, 바이칼 주면의 토착 부족 부리야트 부족의 신화 속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 중국 한족들이 신농 염제를 자기들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통치하던 곳에 신농의 유적과 후손이 살고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신농은 한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한족의 통치이념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북방계열의 샤먼이었다. 염제 신농은 한족적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배달민족에 가까운 것이다.
배달족이라는 말이 시작된 것은 바로, 환웅시대이다.
고로, 한족은 배달족에 대항한 새로운 정치집단이었던 것이다.
한족은 본류가 아니라, 곁가지에 불과하다.
아시아의 통치체계와 통치이념의 본류는 환웅시대와 고조선을 이은 몽고,한국인 것이다.
일본은 백제와의 관계역사를 부인하면서 단군을 잊었지만,
역사고증학을통해 일본은 백제(반도부여)의 후예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고
고조선 대가족의 일원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염제 신농은 중국 한족의 조상이 아니다.
염제 신농은 환웅시대 구리국 연맹체의 일원으로서 한 나라를 다르리던 샤먼이었다.
그런데 어찌 그가 한족의 조상이 될 수 있는가?